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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다 코레야] 4. NHK 교육방송(ETV) 증언 센다 코레야(千田是也)는 도쿄 대지진 다음날 밤의 경험을 직접 증언한 적도 있다. 2016년 9월3일 일본 NHK방송의 교육방송인 ETV의 특집 프로그램 에 출연한 센다 코레야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센다 코레야는 1994년에 사망했으므로, 아마도 그의 생전에 진행된 인터뷰를 편집한 영상이었을 것이다. “나의 예명 ‘센다 코레야’의 유래에 대해서 이야기할까 한다. 이 예명은 센다가야를 따서 ‘센다’, 그리고 조선인, 즉 코리안을 따라 ‘코레야’라고 지은 이름이다. 내가 센다가야에서 조선인으로 오해받아 살해당할 뻔한 사건이 일어난 것은 대지진 이틀째 되는 날 밤으로 기억한다. “마을마다 불길이 밤하늘을 시뻘겋게 물들이고 있었고, 이따금씩 휘발유와 화약이 터지는 섬뜩한 소리가 들리고, 여진이 반복되고, 들..
[千田是也] 3. 芸名で朝鮮人支持 千田是也という芸名·ペンネームの由来について、日本の百科事典は沈黙しているが、2017年9月に『アジアプレス(Asia Press)』ホームページに掲載された加藤直樹(1967-)の記事にはその理由が詳しく記されている。 発端は1923年の関東大震災直後の朝鮮人虐殺事件だった。 これについての記事を記事を転載してみよう。 「当時、彼(=千田是也)は19歳で、東京・千駄ヶ谷に住んでいた。震災の翌日(=9月2日)夜、朝鮮人の集団が日本人を襲っているという流言を信じた彼は、杖を手に街に飛び出したが、 反対に朝鮮人に間違えられ、竹やりやこん棒で武装した男たちにこづきまわされる。たまたま彼を知る者が通りかかったことで解放されたが、危ういところだった。 「だが4日後の9月6日には戒厳司令部が「朝鮮人暴動」の流言を明確に否定し、翌10月下旬には、報道規制の解除によって、関東各地で繰り広げられた朝鮮人..
[센다 코레야] 3. 예명으로 조선인 연대 센다 코레야라는 예명/필명의 유래에 대해서 일본의 백과사전들은 침묵하지만, 2017년 9월 홈페이지에 게재된 카토 나오키(加藤直樹, 1967-)의 기사에 그 이유가 상세히 서술되어 있다. 발단은 1923년의 간토대지진 직후의 조선인 학살 사건이었다. 이에 대한 의 기사를 번역해 보자. “당시 그(=센다 코레야)는 19세로 도쿄 센다가야(千田谷)에 살고 있었다. 지진 다음 날(=9월2일) 밤, 조선인 집단이 일본인을 습격하고 있다는 유언비어를 듣고 이를 사실로 믿은 그는, 몽둥이를 들고 거리로 뛰쳐나갔다. 그러나 그는 거꾸로 조선인으로 오해되어 죽창과 곤봉으로 무장한 남자들에게 붙잡혀 둘러싸였다. 우연히 그를 아는 사람이 지나가다가 보고 오해를 풀어주어서 풀려났지만, 목숨이 위태로울 뻔했던 것이다. “나흘..
[千田是也] 2. 芸術家の家系 千田是也は名門芸術家の家柄である。「日本大百科全書ニポニカ」は、舞踊家の伊藤道郎(ミチオ、1893-1961)と舞台美術家の伊藤熹朔(キサク、1899-1967)が兄だと紹介したが、父親の伊藤為吉(いとう ためきち、1864-1943)も建築家や発明家であり、彼の他の兄弟たちも画家、オペラ歌手、作曲家などの芸術家として活動した。 なかなかの家柄だ。 父親の伊藤為吉は三重県松阪出身で17歳で東京に上京、工部大学(=東京工科大学の前身)で機械工学を専攻し、22歳で米国に渡りサンフランシスコ近郊の修道会でキリスト教徒となった。 学費を賄うためにクリーニング店で働く一方、イタリア人建築家カペレッティ(Giovanni Vincenzo Cappelletti, 1843-1887)の建築設計事務所で製図工として働きながら建築学と物理学を学んだ。 1887年に帰国した伊藤為吉は、東京で日本初のク..
[센다 코레야] 2. 예술가 집안 센다 코레아는 명문 예술가 집안 출신이다. 는 무용가 이토 미치오(伊藤道郎, 1893-1961)와 무대 미술가 이토 키사쿠(伊藤熹朔, 1899-1967)가 그의 형이라고 소개했지만, 그의 부친 이토 타메키치(伊藤為吉, 1864-1943)도 건축가와 발명가였고, 그의 다른 형제들도 화가, 오페라 가수, 작곡가 등의 예술가로 활동했다. 대단한 집안이다. 부친 이토 타메키치는 미에(三重)현 마츠사카(松阪) 출신으로 17세에 도쿄에 상경, 고부(工部)대학교(=도쿄 공과대학의 전신)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고, 22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 인근 수도회에서 기독교인이 되었다. 학비 마련을 위해 세탁소에서 일하는 한편, 이탈리아인 건축가 카펠레티(Giovanni Vincenzo Cappelletti, 1843-..
[千田是也] 1.俳優/演出家 千田是也(せんだ これや, 1904-1994)という名前を聞いたことがあるか。日本人なら、特に劇芸術に関心のある人なら、彼を知らない人はいないだろうが、韓国人には馴染みのない名前だろう。 千田是也は俳優で演出家だった。 日本で最も権威のある『日本大百科全書ニポニカ(インターネット版)』には千田是也を次のように長く紹介している。 「演出家、俳優。本名伊藤圀夫(くにお)。東京に生まれる。舞踊家伊藤道郎(みちお,1893-1961)、舞台装置家伊藤熹朔(きさく,1899-1967)の実弟。東京府立一中卒業。早稲田(わせだ)大学独文科聴講生を経て、1924年(大正13)創立の築地(つきじ)小劇場に文芸部員兼演技研究生として参加、旗揚げ演目の一つ『海戦』の水兵役で初出演。 「1927年(昭和2)から4年間ドイツに留学をし、労働者の革命的演劇に参加。帰国直後、軽演劇人も含めた演劇人統一組織の東京..
[센다 코레야] 1. 배우/연출가 센다 코레야(千田是也, 1904-1994)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일본인이라면, 특히 극예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한국인에게는 낯선 이름일 것이다. 센다 코레야는 배우이자 연출가였다.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에는 센다 코레야를 다음과 같이 길게 소개하고 있다. “연출가, 배우. 본명 이토 쿠니오(伊藤圀夫). 도쿄에서 태어나다. 무용가 이토 미치오(伊藤道郎, 1893-1961), 무대 장치가 이토 키사쿠(伊藤熹朔, 1899-1967)의 친동생. 도쿄부립 제일중학교 졸업, 와세다 대학 독문과 청강생, 1924년에 창립된 쓰키지(築地) 소극장에 문예부원 겸 연기 연구생으로 참가, 창단 공연 레퍼토리였던 에 수병 역으로 첫 출연했다. “1927년부터 4년간 독일에 유학..
<무용신>이 <제24회 강릉인권영화제>를 후원합니다. 가 9월9-10일 강릉시 월화거리에서 열립니다. 이번 강릉인권영화제의 주제는 “노동자의 인권”입니다. 과 자매단체들은 제24회 강릉인권영화제를 후원합니다. 저희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 효고현 다카라즈카에서 조선인 노동자 5분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음을 알았고, 이들을 108년 동안 위령 제사하고, 2020년 이들을 위한 추도비를 세우신 분들이 계심을 알게 됐습니다. 저희는 희생자의 한 분인 김병순씨의 고향이 강릉이었음을 밝힌 후, 강릉시가 추도비 건립자들에게 감사패를 증정해 줄 것을 청원했습니다. 이 청원은 받아들여져서 2022년 4월 강릉시장 명의의 감사패가 6명의 일본인과 2명의 재일동포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이후 한국동포들과 재일동포들의 추도비 참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과정이 재일동포 사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