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ssays

(17)
[묵의2024사유] 6. 멍냥과 수묵담채 유준 화백의 [묵의 사유] 전시회가 끝났습니다. 2주 동안의 축제가 성황을 이룬 것은 작가의 노력과 관람자들의 찬탄 덕분이겠습니다만, 전시와 접대^^에 만전을 다하신 혜화아트센터의 노력도 돋보였습니다. 문외한인 저도 전시를 보면서 생각이 많이 일더군요. 대부분은 미친 범주에 들기 때문에 입 밖에 꺼내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그중 한 가지만 조심스럽게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작년 [화양연화] 때도 그랬고, 올해의 [묵의 사유] 전에서도 유준 화백은 개막식 인사말에서 “수묵화가 그리 인기 있는 장르가 아니”라는 말씀을 하시던데, 그 말이 맴돕니다. 저야 화단 사정을 모르고 현역 화가라야 유준 작가 밖에 모르니까, 그냥 ‘그렇구나’ 할 뿐이었습니다. 수묵화는 연원이 길죠. 한국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수묵화가 시작된..
[묵의사유2024] 5. 흐르는 강물처럼 유준 작가 전에 전시된 을 볼 때마다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들었습니다. 첫날 보았을 때는, 제목이 없어서 그랬는지, 데자뷔 느낌이 아주 강했지요. 제목이 인 것을 알고부터 약간 둔화되기는 했습니다. 어째서 오밤중에 고기를 잡는 거지? 하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림을 보면서 이야기가 떠오르려면 ‘이상한 점’이 없어야 하거든요. 그러나 첫 인상이 워낙 강해서인지 "어디서 봤더라?"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더군요. 그러다가 그게 헤밍웨이의 소설을 읽었을 때 받았던 느낌과 유사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라는 작품인데, 그리 긴 작품은 아닙니다. 미국식으로 단편이라고 하기에는 쫌 길고, 중편이라고 하기에는 짧은 작품인데, 이 작품의 2부에 주인공 닉이 플라이 낚시(Fly Fishing)하..
[묵의사유2024] 4. 미륵과 미르 유준 선생의 전에 전시된 작품들이 다 좋습니다. 그걸 대전제로 하고라도 "너는 어떤 그림이 가장 인상적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를 들고 싶습니다. 나름 이유를 든다면 수묵담채의 특장이 최고조로 발휘된 작품인 것 같고, 또 많은 생각을 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전시회에 갈 때마다 화폭을 한참씩 바라보곤 했는데, 돌아온 후에도 이 그림이 자꾸 생각납니다.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사유를 심하게 자극하는 작품인 것이지요. (묵의 '사유'가 맞습니다.^^) 용과 미륵보살을 함께 그린 작품은 드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저는 처음입니다. 게다가 제목이 라고 하니, '으잉? 뜬금없는 걸?'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어에서 '용'은 한자어이고 그 고유어가 '미르'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 순간 전율이..
[묵의사유2024] 3. 개보다 고양이 한국에서는 사람 성격을 부먹과 찍먹으로 나누더군요. 부먹자와 찍먹자의 상호작용으로 성리학의 계보나 한국 현대사를 설명하는 글도 인터넷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런 글들이 집단지성으로 회자되는 것을 알았다면, 움베르토 에코도 울고 갈 노릇이었을 겁니다. 이와 비슷하게 미국에서는 모든 사람을 개과(dog-type)와 고양이과(cat-type)로 분류합니다. 둘 사이의 차이점에 대한 농담도 한국의 부먹 vs 찍먹만큼 많습니다. 그리고 이 두 부류의 갈등과 투쟁은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결코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강하죠. 굳이 말하자면 유준 작가는 고양이 타입이네요. 고양이가 등장하는 작품이 개 작품보다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이번 전시회에서도 개 작품은 두세 점 밖에 없는데, 고양이 작품은 .... 음..
[묵의사유2024] 2. 여전히 혼자 유준 작가의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11시부터 개막인데 11시15분에 도착했습니다. 물론 그 시간에 아무도 없죠. 심지어 전시주인 유준 선생도 아직 안 나오셨습니다.^^ 데스크 지키시는 분이 방명록 사 가지고 들어오신다고 전해 주시네요. 이분이 바로 어제 저더러 "내일부터예욧!"하신 분입니다. 제가 워낙 평범하게 생겨 가지고^^ 저를 기억하기가 매우 어려우셨을 텐데, 그래도 기억하시더라고요. 어리버리한 태도와 표정 때문일 겁니다.ㅋ 유준 선생은 제가 1시간 반 동안 작품을 다 보고 나올 때까지 돌아오지 않으시네요. 틀림없이 "금요일 오전에 누가 오겠어?" 하면서 낮술 한잔 하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덕분에 저는 전시회 첫 관람자이면서도 방명록에 이름을 못썼습니다. 이번 전시회에 대한 제 “첫 인상”은 ..
[묵의사유2024] 1. 어쩌다 혜화동 지난 목요일(11일)에 치과에 다녀왔거든요. 서울 도봉구 창동의 는 독특한 진료 원칙을 지키는 듯합니다. 진료 효과를 바로바로 확인한다는 차원에서, 진료 직후 동태찌개 점심을 제공하네요. 이런 혜택이 의 모든 환자에게 적용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저처럼 불쌍한 환자들이 대상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의 제 진료는 스케일링에 불과했으나, 동태찌개에는 제 이빨이 만족스럽고 훌륭하게 작동한다는 점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따라 박인호 원장의 어머님과 고모님도 진료 받으시는 날이고, 제 이빨을 함께 책임져 주시는 기공사 박철호 선생도 합석하는 바람에, 원래 가족 점심이 되어야 하는 건데, 제가 끼어들게 된 거죠. 물론 뻔뻔한 저는 개의하지 않습니다. 사양은커녕 앞장서서 식당에 갔고, 함께 맛있게 먹습..
[자락길에서] 3. 총선과 과거 정리 과거 정리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챙길 것은 챙기고 잊을 것은 잊어야지요.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 반대가 트라우마입니다. 과거에 묶여서 앞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비극을 경험하고도 앞으로 쑥쑥 잘 나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은 과거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돌아갈 수 없고,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한국에는 “과거는 흘러갔다”는 유행가가 있고, 미국에도 “다리 밑의 물(water under the bridge)”이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니까요. ‘지나간 일’을 잘 정리한 사람들에게도 흉터는 있습니다. 보기가 좋지는 않죠. 하지만 흉터는 건강을 해치지 않습니다. 흉터는 상처를 이겨냈다는 뜻이니까요. 트라우마, 상처, 흉터 같은..
[On the Zarakgil] 2. The Path of Philosophy Walking along the Zarakgil, the footpath of Ansan, Seoul, I often think of other hiking trails I'd taken before. These include Camino de Santiago in Spain, Indian Ladder Trail in Upstate N.Y., and the Path of Philosophy in Kyoto. Camino de Santiago is the 800km walking trail from Saint-Jean-Pied-de-Port in southern France to Finisterra in western Spain, where I had restored my mental and phys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