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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호쿠2023취재

[도호쿠2023취재] 21. 아오모리 (7) 이시카와 다쿠보쿠

아오모리 현에도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 1886-1912)의 흔적이 많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고향 모리오카 현에 인접해 있는데다가, 자주 홋카이도를 유랑했던 다쿠보쿠는 아오모리를 지나다니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시카와 다쿠보쿠에게 있어서 아오모리는 그냥 지나치는 경유지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가난과 외로움에 시달리던 다쿠보쿠가 자주 바다로 나가 마음을 달랬던 곳이 아오모리의 해변이었습니다. 그의 시집 <한줌의 모래(一握, 1910)>의 첫 시 나를 좋아하는 노래(する)”의 첫 연에는 동해의 작은 섬이 등장합니다.

 

동해의 작은 섬 갯바위의 백사장에/ 나는 눈물에 젖어/ 게와 장난을 한다.”

(東海小島白砂/ われきぬれて/ とたはむる.)

 

 

이 동해의 작은 섬은 홋카이도 하코다테의 오모리하마(大森浜)라는 주장도 있고, 아오모리현 시모키타군 오마곶에서 내다보이는 작은 등대섬 섬 벤텐지마(弁天島)라고도 합니다. 저는 후자가 맞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모리하마 해변에는 내다보이는 작은 섬이 없기 때문이지요.

 

어떤 사람들은 이 동해의 작은 섬이 일본 열도 전체를 가리킨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석하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 말릴 수는 없지만, 이시카와 다쿠보쿠와 아오모리의 관련성을 찾아보려는 이 글에서는 채택하기 어려운 견해이겠습니다.

 

 

실제로 아오모리 오마곶에는 이 시가 새겨진 다쿠보쿠의 가비(歌碑)가 세워져 있습니다. 가비는 모두 3개로 2개의 시가 더 새겨져 있습니다.

 

큰 바다를 향해 혼자서/ 7일이든 8일이든/ 실컷 울려고 집을 나섰네.

(大海にむかひて一人 七八日 泣きなむとすとでにき.)

커다란 글자를 백 개나/ 모래에 쓰니/ 죽을 생각을 버리고 돌아오네.

(といふあまり ぬことをやめてれり)

 

 

울기 위해 집을 나선 노래는 <나를 사랑하는 노래>의 세 번째 노래입니다. 그리고 죽을 생각을 버리고 돌아오는 노래는 10번째 노래지요. , 8수의 노래는 집을 나서 바닷가 모래산(砂山)에 갔다가 돌아오는 내용입니다.

 

다쿠보쿠의 시작 일기에 따르면 이 시들은 1908624일 새벽에 쓰여 졌습니다. 이날은 이 노래들을 포함해서 113수의 노래를 지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25일 밤부터 26일 오전2시까지 머리가 맑아진다. 무엇을 보아도, 무엇을 들어도 모두 노래라는 서술과 함께 총 141수의 노래를 더 지었습니다. 23일 동안 254수의 노래를 지은 것인데, 한 마디로 다쿠보쿠가 노래의 빅뱅을 경험한 날입니다. 그리고 이 시들은 <한 줌의 모래>에 실려 있습니다.

 

 

다쿠보쿠는 일제의 조선합병을 비판하는 노래도 지은 바 있습니다. 19010829조선병합조약이 일본에 발표되고 일본 전역이 환희로 들끓었을 때, 그로부터 일주일 후(99일 밤), 이시카와 다쿠보쿠는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습니다.

 

지도 위 조선국에 검디검은 먹을 칠하니 쓸쓸한 추풍이 들린다

(地図上朝鮮国にくろぐろとをぬりつつ秋風.)

 

 

“9월 밤의 불평(九月不平)”이라는 제목으로 1910111일 문예잡지 <창작(創作)>에 발표된 이 시는 일제의 조선 병합을 비판한 노래로 유명해졌습니다. 일 년 전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을 때도 다쿠보쿠는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습니다.

 

누가 내게 저 피스톨이라도 쏘아줬으면/이토처럼/죽어나 보여줄 것을.

(にピストルにてもてよかし/ 伊藤/ にてせな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