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강릉 감상모임

(4)
[칼의 노래] 4. 이순신의 ‘자연사’ 임진왜란은, 일본 열도를 통일한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자신에게 충성하는 맹주들에게 땅을 나누어주기 위한 방편으로 시작되었다는 설이 있다. 역사적 사실에 부합되는 주장이라고 본다. 봉건시대의 백성은 땅에 묶여있었다. 백성의 농사 소출에서 세금을 거두는 것이 곧 지배자들의 소득이었다. 일본 열도의 소출로 나누어줄 세금이 마르자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을 침공해 거기서 거둘 세금을 지방 군주들에게 약속한 것이다. 조선 왕도 마찬가지였다. 공자니 맹자니, 유교니 불교니 떠들었지만, 조선 왕조가 탐했던 것은 백성의 세금이었을 뿐이다. 그 세금을 왜가 빼앗으려 하자 외세를 끌어들여서라도 그 세금을 지키고자 했다. 조선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출병한 명나라 군대는 조선을 지켜봐야 딱히 자기들에게 떨어질 세금이 새로 생기는..
[칼의 노래] 3. 펼치는 페이지마다 ‘죽음’ 죽음은 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임진왜란이 많은 조선인의 죽음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병사들의 전사와 민간인 학살에서부터 한산의 병영과 칠천량 함대의 붕괴에 이르기까지 죽음의 방식과 유형은 다양하고 광범위했다. 를 다시 읽으면서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다면 조선 백성이 엄청 죽었다는 사실이다. 얼마나 많은 민간인이 죽었는지 밝힌 정부 통계나 학계의 조사연구 결과도 없었다. 그러나 에는 숱한 죽음들이 서술되어 있었고 그 대부분은 의 인용이었다. 실제로 에 인용된 백성들이 죽어가는 모습은 간략하고도 담담하게 서술되어 있지만, 그 서술의 내용을 상상해 보면 끔찍하기 짝이 없다. 다음은 13쪽부터 시작되는 본문의 첫 세 장(30쪽까지)에 서술된 죽음의 기록이다. [14-15쪽, 인육 썩는 고린내; 16쪽, ..
[칼의 노래] 2. 칼의 울음과 노래 책 제목이 이므로 작품 속에 ‘칼’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16세기 조선의 무장, 그것도 전쟁 중의 장군 이야기라면 근접 살상무기로서의 칼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칼은 자주 중층적 의미로 등장한다. 칼이 사람을 죽이는 날선 도구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은 물론이다. 그래서 이순신은 자신의 칼을 “존망이 명멸하는 세(勢)의 마당(176쪽)”이라고 분명히 인식했다. 칼은 무력 뿐 아니라 영향력 일반을 가리키는 상징으로도 자주 사용되었다. 이순신의 거처를 가리키면서 저자는 “두 자루의 환도와 면사첩이 걸린 토방”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는데, 이순신은 이 “환도 두 자루는 나를 베는 임금의 칼(121쪽)”이라며 경계의 상징으로 삼았다. 제목은 칼의 ‘노래’지만, 작품 속에서..
[칼의 노래] 1. 두 번째 감상 모임 심범섭 선생과 두 번째 감상 모임을 가졌다. 강릉 에서였고, 첫 번째 이후 5개월만이었다. 을 같이 읽은 것은 작년 9월이었는데, 그때는 글로 옮길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른 일로 바빴고, ‘너무 좋다’는 느낌에 벅찼고, 마음 한 켠에 ‘이런 멋진 시간’은 둘만 간직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살짝 있었던 것 같다. 이번 감상은 몇 가지 적어놓고 싶은 게 생겼다. 첫 번째의 감상회도 좋았고, 그 때문에 같은 작가의 대표작 를 다음 감상의 책으로 정했던 것이었지만, 심선생과 나눈 가 너무 좋았다. 막상 글을 쓰려니까 그 시간을 뭐라고 불러야할지 망설여졌다. 감상(感想)은 약하고 사소했고, 비평(批評)은 건방지고 시답잖게 느껴졌다. 생각 끝에 감상(鑑賞)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글을 자세히 살피면서(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