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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2023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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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陵2023講演] 15.後記2-参加者たち 本文で、金炳順氏の犠牲を発掘し、記録し、祭祀を行い、追悼碑を建てるまでに多くの人々の努力があったことを指摘しました。 しかし、疑問が生じました。江陵人である金炳順さんの犠牲を発掘して以来、参拝墓や追悼碑の建立を経て、ドキュメンタリーに至るまで、そして今後の江陵・宝塚の交流と協力を促進するために、どれだけの人々が努力してきたのか疑問に思いました。 そこで調べてみました。 まず、金炳順さんの死亡事件がありました。1914年のことです。 金炳順さんの犠牲を最初に発掘したのは、鄭鴻永、近藤富男先生です。 このお二人と、朝鮮史研究者の飛田雄一と堀内稔先生、そして1985年当時の宝塚市史編集担当の若林泰さんが重要な情報を提供してくれました。インタビューに応じた福本實二さん、松本文美さん、そして光国光さんの証言も重要な助けとなりました。 鄭鴻永先生の著書『歌劇の街のもう一つの歴史:宝塚と朝鮮人(19..
[강릉2023강연] 15. 후기2-참여자들 본문에서 김병순씨의 희생을 발굴하고, 기록하고, 제사하고, 추도비를 세우기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의문이 일었습니다. 강릉인 김병순씨의 희생을 발굴한 이래 참배묘와 추도비 건립을 거쳐, 다큐멘터리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향후 강릉-다카라즈카의 교류와 협력을 진작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력해 왔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한번 조사해 봤습니다. 우선 김병순씨의 사망사건이 있었습니다. 1914년의 일입니다. 김병순씨의 희생을 처음 발굴한 사람은 정홍영, 콘도 도미오 선생입니다. 이 두 사람은 조선사 연구자 히다 유이치, 호리우치 미노루 선생, 그리고 1985년 당시 다카라즈카 시사(市史) 편집담당 주사 와카바야시 야스시(若林泰)씨가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습니..
[江陵2023講演] 14.後記1-金炳順さんの故郷を探す 近藤富男先生の依頼で金炳順氏の韓国内のゆかりの地を調べ始めたとき、手がかりは兵庫県川辺郡西谷村役場が1914年8月3日に発行した埋葬認許證1枚だけでした。 当時の川辺郡は現在の宝塚市に編入されています。 この埋葬認許證には、金炳順氏の「本籍地」が「朝鮮江原道江陵部北一里大天洞」と流し漢字で書かれていました。斜体で書かれていたため、「江原道」と「江陵部」を調べるのにも苦労しましたし、北一(里)と大(川)洞にも誤解が生じていました。 調査を依頼する2-3年前、近藤富男先生は「江原道江陵部」を「京畿道江華府」と勘違いし、仁川広域市に属する江華郡江華邑を訪ねて問い合わせをしたこともあったそうです。 日本人でも見分けがつかないほどの流線型の漢字だったのです。 多くの方の助けを得た結果、私はこの漢字の住所が「江原道江陵府」と確定することができました。 その後も「北一里」と「大天洞」は難しさを増しま..
[강릉2023강연] 14. 후기1-김병순씨의 고향을 찾기 콘도 도미오 선생의 의뢰로 김병순씨의 한국내 연고를 조사하기 시작했을 때, 단서는 효고(兵庫)현 카와베(川邊)군 니시타니(西谷) 촌사무소가 1914년 8월3일에 발행한 매장인허증 한 장 뿐이었습니다. 당시의 카와베군은 오늘날 다카라즈카시에 편입되었습니다. 이 매장인허증에는 김병순씨의 “본적지”가 “조선 강원도 강릉부 북일리 대천동”이라고 흘림체 한자로 적혀 있었습니다. 흘림체로 쓰였기 때문에 ‘강원도’와 ‘강릉부’를 알아내는 데에도 애를 먹었고, 북일리(里)와 대천(天)동에도 오해가 끼게 있었습니다. 조사를 의뢰하기 2-3년 전 콘도 도미오 선생은 “강원도 강릉부”를 “경기도 강화부”로 오해, 인천광역시에 속한 강화군 강화읍을 찾아가 수소문을 한 적도 있으셨다고 합니다. 일본인도 알아보기 어려운 정도의 ..
[江陵2023講演] 13.まとめ 1914年から2023年までの110年間の江陵と宝塚のつながりを見てきました。 1985年、鄭鴻永・近藤富男先生は埋葬認許証を手がかりに金炳順さんの死を発掘しました。 彼が神戸の水道工事現場でトンネル落盤事故で亡くなってから71年ぶりのことでした。 鄭鴻永先生は、金炳順さんの埋葬墓の推定地を確認した後、自身の著書「歌劇の街のもう一つの歴史:宝塚の朝鮮人(1997)」に金炳順さんの犠牲を記録しました。 しかし、玉瀬の壇信会と婦人会が毎年8月に滿福寺の住職の執り行いで慰霊祭を行っていることまでは明らかにできませんでした。 2000年に鄭鴻永先生が亡くなられた後、近藤富男先生は追悼碑の建設を準備しました。 多くの時間がかかりました。最も理想的な過程を経て、最も理想的な追悼碑を建立するために手間をかけたからだと推測します。 2020年追悼碑の建立が間近に迫ったとき、滿福寺の足立泰教と足立智教先..
[강릉2023강연] 13. 결론 1914년부터 2023년까지 110년동안의 강릉과 다카라즈카의 인연을 살펴봤습니다. 1985년 정홍영-콘도 도미오 선생은 매장인허증을 실마리로 김병순씨의 사망을 발굴했습니다. 그가 고베 수도공사 현장에서 터널 낙반사고로 사망한지 71년만이었습니다. 정홍영 선생은 김병순씨의 매장묘 추정지를 확인한 후, 자신의 저서 에 김병순씨의 희생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타마세 마을의 단신회와 부녀회가 매년 8월 만푸쿠지의 주지 집전으로 위령 제사를 드리고 있다는 사실까지 밝혀내지는 못했습니다. 2000년 정홍영 선생이 타계하신 후 콘도 도미오 선생은 추도비 건설을 준비했습니다.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과정을 통해 가장 이상적인 추도비를 건립하기 위해서 공을 들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202..
[江陵2023講演] 12.江陵市議会懇談会 江陵人権映画祭の二日目である2023年9月10日の朝、ソウルと日本の訪問団は、金成洙烈士追悼碑を訪れ参拝しました。 追悼碑は金成洙の母校である江陵高校の校庭に建てられており、金成洙烈士記念事業会の洪眞善代表と姜承昊先生、そして金成洙の両親も参加しました。 この参拝は映画祭の公式行事でもなく、必ず参加しなければならない行事でもありませんでしたが、宝塚の訪問団と「大陸学校」と「ソウル大民主同窓会」のメンバーは喜んで参加しました。 日帝強占期、他国で過酷な労働中に事故で死亡した金炳順さんの追悼や、独裁時代の民主化運動中に当局によって死亡した金成洙さんの追悼は、脈絡が変わらないと認識されました。 そして、日帝の搾取と独裁の弾圧に若者が犠牲になったのは江陵だけのことではないでしょう。 昨年、宝塚の訪問団と会ったことのある金成洙の両親と記念事業会の洪眞善代表は再び江陵を訪れ、追悼碑を参拝した鄭世和..
[강릉2023강연] 12. 강릉시의회 간담회 강릉인권영화제 이틀째인 2023년 9월10일 아침, 서울과 일본의 방문단은 김성수열사 추도비를 방문해 참배했습니다. 추도비는 김성수의 모교 강릉고 교정에 세워져 있었고, 김성수열사기념사업회의 홍진선 대표와 강승호 선생, 그리고 김성수의 부모님도 참석하셨습니다. 이 참배는 영화제의 공식 행사도 아니었고,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행사가 아니었지만 다카라즈카의 방문단과 와 의 회원들이 기꺼이 참석했습니다. 일제강점기 타국에서 힘든 노동 중에 사고로 사망한 김병순씨의 추도나 독재시기 민주화운동 중에 당국에 의해 사망한 김성수의 추도는 맥락이 다르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리고 일제의 착취과 독재의 탄압에 젊은이가 희생된 것은 강릉만의 일은 아니었을 테이니까요. 지난해 다카라즈카의 방문단을 만난 적이 있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