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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호쿠2023취재

[도호쿠2023취재] 18. 아오모리 (4) 히라사와 키요코

193653일 아오모리 공연을 가졌던 최승희는 1122일 다시 한 번 아오모리 시를 방문, 가부키자에서 공연을 가졌습니다. 무용가가 공연하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도쿄나 오사카처럼 대도시가 아니라면, 아오모리 같은 중소도시에서 한 해에 두 번의 공연을 갖는 것이 일반적인 일은 아닙니다. 관객이 현저하게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과연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최승희에게는 히라사와 키요코(平澤喜代子)라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최승희의 53일 아오모리 공연을 보고 최승희 문하에 입문한 학생입니다. 히로사키(弘前)의 와요재봉여학교(和洋裁縫女学校)에 재학 중이던 그녀는 최승희를 따라 도쿄로 올라왔고, 최승희무용연구소의 입소해 제자가 됐습니다.

 

 

재능과 노력 덕분에 빠르게 성장한 히라사와 키요코는 반년 만인 19361122일 아오모리 공연, 1123일의 히로사키 공연에 참가했습니다. 최승희가 수제자 수준으로 성장한 히라사와 키요코를 그의 고향에서 데뷔시킨 것이었습니다.

 

이는 10년전 최승희 자신의 경험을 반복한 조치이기도 합니다. 1926323일 이시이 바쿠의 경성 공연을 관람하고 무용에 입문했던 최승희는 이시이 무용단에 입단해 도쿄에서 무용 수업을 받기 시작했었습니다. 빠르게 성장한 최승희를 데리고 19279월 재차 경성 공연을 단행한 스승 이시이 바쿠는, 이 고향 무대에서 최승희를 데뷔시킨 바 있었습니다.

 

히라사와 키요코는 무용에 입문한지 반 년 만에 고향 무대에 올랐던 것은 대단히 이례적입니다. 최승희 자신도 고향 무대에서 데뷔한 것이 무용수업을 시작한 지 1년 반만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히라사와 기요코가 그만큼 탁월했다는 뜻이겠습니다.

 

 

경성의 관객들이 최승희를 훌륭한 무용가로 키워준 이시이 바쿠에게 감사와 존경을 보냈듯이, 아오모리와 히로사키의 관객들은 히라사와 키요코를 어엿한 무용가로 성장시킨 최승희에게 존경과 감사를 보냈을 것입니다.

 

히라사와 키요코의 가족배경도 최승희와 유사합니다. 그녀는 아버지 히라사와 미타로(平澤三太郞)는 아오모리에서 양품점을 경영하던 부유한 상인이었고, 둘째인 딸 키요코를 여학교에 진학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녀가 일본식()과 서양식()을 모두 가르치는 재봉여학교에 입학한 것은 아마도 양품점을 경영하는 아버지를 돕기 위해 선택했던 진로였던 것 같습니다.

 

한편, 히라사와 키요코의 오빠 히라사와 테츠오(平澤鐵男)는 연극인이었습니다. 최승희의 큰 오빠 최승일이 문인이자 연극인이었던 것과 유사합니다. 키요코는 소학교 시절부터 오빠를 따라서 자주 연극 구경을 했고, 무대 활동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아오모리에서 태어나 자란 히라사와 키요코가 히로사키의 여학교에 입학했을 때에는 음악과 체조에 뛰어난 자질을 보였다고 합니다. 여학교 4학년 시절이었던 19365, 최승희의 공연을 보고 감명을 받은 히라사와 키요코는 도쿄로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히라사와 키요코는 자신의 결심을 사토(佐藤) 체육교사와 시바타(柴田) 교장선생에게 알렸고, 그의 굳은 결심을 본 두 교사는 졸업 전에라도 최승희무용연구소에 입소하도록 허락, 부모를 설득하여 도쿄로 보냈다는 일화가 서술되어 있습니다.

 

히라사와 키요코는 193772일 후쿠시마의 신카이자(新開座)에서 공연했을 때도 최승희 무용단의 일원으로 5작품에 출연한 바 있었습니다. 이때 히라사와 키요코는 <비가(悲歌)>라는 작품을 독무 공연했고, <봄노래()><시골처녀(田舎娘)> 등의 4작품에도 중무로 참여했습니다.

 

 

히라사와 키요코는 최승희가 세계 순회공연을 떠난 1937년 말에 독립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1937년과 그 이후의 <토오연감>에 히라사와 키요코가 아오모리현 출신의 무용가로 등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고향의 자랑스런 무용인으로 꼽히기 시작했고, 이후에도 상당한 기간 동안 고향에서 무용 활동을 계속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jc, 2023/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