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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2025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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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2025보성] 17. 답사기를 마치면서 5월16-18일 은하수의 보성 답사는 아주 인상 깊은 여행이었다. 그래서 박한용 선생의 지나가듯 슬쩍 던진 권유를 넙죽 받아서 답사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내게는 난관이자 행운이었다. 새로 알게 된 사실이 많아 공부가 필요했기 때문에 힘은 좀 들었지만, 답사를 통해 느낀 점을 정리된 글로 남길 수 있어서 뜻있는 일이 되었다. 게다가 개인적인 소감이나마 많은 분들과 나눌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한반도 어느 한 곳 역사의 입김이 서리지 않은 곳이 없지만, 이번에 알게 된 보성의 역사는 아주 인상적이었다. 파면 팔수록 흥미있는 사실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따라 올라오곤 했는데, 봉강리의 가계사뿐 아니라, 나철 선생의 독립운동과 소록도의 1백년 역사, 그리고 임진왜란 시기에 보성과 보선인들의 기여에 대한 것도 ..
[은하수2025보성] 16. 삼의당과 대한다원 3일째이자 마지막날 아침, 일행은 삼의당(三宜堂)을 방문했다. 첫 날 종일 내린 비로 마을을 휘돌아가는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시끄러울 만큼 불었고, 일행은 조심스레 징검다리를 건너 일림산 기슭의 삼의당에 도착했다. 삼의당은 봉강 정해룡 선생의 조부 정각수 선생이 지은 고택이다. 그 집에 ‘삼의당’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자손들에게 내린 3가지 교훈을 기억시키기 위함이었다. 그 세 교훈은 “부정부패를 멀리할 것,” “선영을 지킬 것,” 그리고 “후세의 교육에 힘쓸 것”이라고 한다. 정각수 선생이 후손에게 이 같은 교훈을 내린 것은 자신의 경험 때문이다. 그는 과거를 위해 한양에 올라갔으나 매관매직이 성행하고 백성이 도탄에 빠진 것을 목격했다. 더러운 세상에 발을 담그기 싫었던 그는 과거를 포기하고 고향..
[은하수2025보성] 15. 칠언절구 <회소헌> 둘째날, 벌교-소록도-득량만으로 긴 동선을 소화했지만, 분주하거나 빡빡한 느낌은 없었다. 벌교 방문은 유익했고, 소록도는 자극적이었고, 득량만 장군쟁이 해변은 느긋했기 때문이다. 회소헌에 도착한 후, 내가 거북정의 저녁 정원을 다시 한 번 맛보고 있는 동안 몇 사람은 쉴 틈도 없이 저녁식사 준비에 돌입했다. 차일을 치고, 밥과 반찬, 채소를 준비하면서 워낙 소리소문 없이 일해 주신 바람에, 일주일쯤 지나고 나니까 식사준비를 해 주신 분들이 누구였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뒤늦게나마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 저녁식사의 주 메뉴는 김용대-김수산나 선생 부부가 논산에서 공수한 삼겹살이었다. 태안 엠티 때에 맛보고 감탄했던 삼겹살이었기에, 이 고기는 이름을 따로 붙여야 하지 않을까요, 제안했더니, ..
[은하수2025보성] 14. 득량만의 장군쟁이 소록도에서 봉강리로 돌아가는 길에 일행은 845번 도로변의 장군쟁이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10번 고속도로 대신 지방도로를 선택한 것은 득량만의 아름다운 해변을 감상하기 위해서였다. 이어지는 바다와 갯벌을 보자 맨발걷기 매니아 이원영 선생은 차를 세우고 쉬었다 가자고 제안했다. 한 달이면 몇 차례씩 인천 무의도 하나개 해수욕장 갯벌을 찾는 이원영 선생으로서는 득량만의 깨끗하고 넓은 갯벌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노릇이었을 것이다. 일행이 버스를 내린 곳에는 야영과 차박 시설이 마련되어 있는 장군쟁이 휴게소였는데, 부드럽게 휘어들어온 해변이 아름답고 깨끗했다. 이원영 선생은 당장 맨발로 모래갯벌을 즐기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나는 ‘장군쟁이’라는 휴게소 이름이 궁금했다. 지명인지 상호명인지 확실치 ..
[은하수2025보성] 13. 당신들의 천국 소록도라는 이름은 “작은 사슴”모양 때문에 붙은 것이라지만, 녹동항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그다지 사슴 모양으로 보이지 않는다. 지도를 보면 게임기 콘트롤러 모양에 가깝다. 소록도는 아름다운 섬이다. 넓이 150만평(약 4.4Km2), 해안선 길이가 14킬로미터라고 하니까 한번 산책에 도보로 4시간쯤 걸린다. 소록도의 절반은 주민 622명의 주거지역으로 방문자가 접근할 수 없지만, 소록대교를 건너면서 시작되는 데크길을 따라 박물관 건물까지 걸으면서 보이는 해변과 바다, 그리고 군데군데 뜬 섬들이 무척 아름답다. 박한용 선생은 소록도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당신들의 천국(1976)>을 읽기를 권했기 때문에, 주말에 그 소설을 읽었다. 이 소설은 조선일보 이규태 기자의 르포르타주 소록도의 반란(1966)>으로..
[은하수2025보성] 12. 소록도와 한센병 다음 목적지가 소록도라는 말을 들었을 때 “거기는 왜지?”하는 생각이 들였다. 이번 은하수 소풍의 주제가 굴곡진 한국 현대사의 맥락에서 봉강 정해룡 선생과 그의 가족의 수난사를 살피는 것이라면, 소록도도 그 주제와 어떤 접점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녹도(鹿島)가 소록도(小鹿島)가 된 사연도 궁금했다. 조선 시기에 제작된 대조선국전도(1892)>에는 ‘소록도’가 없고 ‘녹도’가 있을 뿐이다. 일제강점기에 발행된 조선전도(1925)>에도 이 섬은 ‘녹도’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이 섬은 언제, 그리고 왜 ‘소록도’로 개명되었을까? 녹도-소록도 의문은 쉽게 풀렸다. 소록도가 건너다보이는 고흥반도의 끝부분의 이름이 녹도였고, 지금은 녹동(鹿洞)이라고 불린다. 조선시대에 녹도는 중죄인의 유배지였기 ..
[은하수2025보성] 11. 최승희 벌교공연 벌교 꼬막정식으로 점심을 마친 후에 일행은 소록도로 향했다. 소록도는 고흥반도를 남으로 가로질러 60킬로미터쯤 떨어져 있으므로 버스로는 약 1시간 남짓의 거리였다. 버스로 이동하면서 채동선 생가 앞에서 시작한 최승희 선생의 1931년 벌교공연 강연을 계속했다. 벌교극장>의 설립자 채중현 선생과 최승희 공연을 주선했을 것으로 추정된 채동선 선생의 이야기를 요약한 다음, 벌교공연이 어떤 모습으로 진행되었을 것인지 설명했다. 최승희 공연이라고는 하지만, 그녀가 혼자 벌교에 온 것은 아니다. 최승희 무용단은 10여명의 무용수들과 조명, 음악, 무대장치를 담당한 5-6명의 스탭, 그리고 단장인 부친 최재현 선생, 매니저 역할을 맡은 오빠 최승일과 남편 안막 등을 포함해 20여명의 규모였다. 전날(1931년 1..
[은하수2025보성] 10. 나철과 대종교 벌교를 출발하면서 박한용 선생은 벌교가 대종교 창시자이며 독립운동가 나철(羅喆, 1863-1916) 선생의 고향이기도 하다고 알려 주셨다. 원래는 나철 선생의 탄생지를 방문할 계획이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시간이 모자라서 건너뛴 것 같았다. 이런 유드리는 참 좋다. 그 대신 박한용 선생은 자신이 정리하신 나철 선생과 대종교에 대한 발제문을 추천하셨는데 나는 벌교를 떠나는 버스 안에서 읽어볼 수 있었다. 이하는 박한용 선생의 발제문 요약이다. 나철 선생은 1863년 12월2일 전남 보성군 벌교읍 칠동리 금곡마을에서 출생했다. 1891년 식년문과 병과에 급제했고, 1894년 홍문관의 부정자(副正字), 1895년 가주서(假注書), 1896년 탁지부의 징세서장(徵稅署長)에 제수됐다. 1898년 사직하고 귀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