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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호쿠2023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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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호쿠2023취재] 50. <팀아이> 후원금 의 저녁식사 모임은 후원금을 전달하시기 위한 모임이기도 했습니다. 정세화 선생께서 의 회원 분들의 성금을 전해 주시면서 취재를 위해 써달라고 하셨습니다. 저로서는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할지 모를 뿐입니다. 은퇴한 백수의 신분으로 장기간에 걸친 해외 취재를 계속해 온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유럽 취재는 차길진 회장님의 후원으로 진행되었는데, 저는 100회를 넘겨가며 연재한 취재기로 보답했고, 그 취재기 인터넷판은 많은 최승희 연구자들에게 인용되고 있습니다. 차길진 회장님이 타계하신 뒤에도 최승희 조사 연구는 계속되었는데, 이후 취재비는 제가 충당해 왔습니다. 긴축을 거듭했지만 국내 조사와 일본 취재가 길어지면서 올해 4월경에 자금이 마르고 말았습니다. 일산 사무실도 철수했고, 해외 취재를 대폭 줄여야..
[도호쿠2023취재] 49. 아운(阿吽) 고베에서 논문 발표를 마치고 에서 애프터도 가진 후에 저는 다시 이타미(伊丹)로 향했습니다. 선생님들과의 저녁식사 약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임이 길어지는 바람에 제가 조금 늦었는데, 정세화 선생님과 정희화 선생님, 그리고 다이꼬꾸 스미애 선생님이 먼저 오셔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한큐 이타미역 인근의 은 정세화 선생과 제가 일본에 갈 때마다 자주 만나서 밥도 먹고 나마비루도 마시면서 여러 가지 의논을 많이 하던 곳입니다. 재일동포 2세가 경영하시는 이자카야(居酒屋)인데, 이곳은 저는 물론 이곳 주민이신 정세화 선생도 아주 편안해 하시는 가게입니다. 식사와 안주도 아주 좋습니다. 아직도 실내 흡연이 가능한 신기한 집이죠. 저는 이라는 가게 이름이 궁금해서 찾아본 적이 있습니다. ‘소울음 음(吽)’자는 ..
[도호쿠2023취재] 48. 콘도 사치코 선생님 논문 발표 당일 아침 일찍 후쿠시마를 출발할 계획이었습니다. 후쿠시마-도쿄-코베는 신칸센으로 5시간 반쯤 걸리니까, 오전 중에 충분히 고베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구글은 5시간 걸린다고 하지만, 그것은 노조미 신칸센을 탈 경우입니다. JR패스는 노조미를 탈 수 없습니다. 히카리나 고다마를 타야 하는데, 정차하는 정거장이 많기 때문에, 노조미보다 30분 이상 더 걸립니다. 그래도 아침 6시쯤 출발하면 오전 중에 고베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호텔이 주는 아침 식사를 먹을 수 없기는 하지만, 중요한 약속에 늦을 수는 없으니까요. 후쿠시마 도서관 조사를 끝냈을 때 오후 5시가 조금 넘었습니다. 약간의 생각 끝에 바로 고베로 출발했습니다. 야마가타 재조사를 포기한 것인데, 그 재조사의 전망이 밝지 않다고 판단했습..
[도호쿠2023취재] 47. 도리키조쿠 도리키조쿠(鳥貴族)는 코베 역 인근의 야키도리(焼き鳥), 즉 닭구이 가게입니다. 한국처럼 통닭구이나 주먹만한 크기로 잘라서 구워내는 닭요리가 아니라, 한입 크기로 잘게 잘라서 꼬치에 꿰어 구운 닭고기입니다. 그리고 야키도리는 숯불에 굽는 것이 원칙이라는군요. 오사카와 고베, 교토 등의 간사이 지역에 체인점을 내고 있는 의 이름은 “닭 귀족”이라는 뜻이네요. 손님을 귀족으로 모시겠다는 영업방침을 담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귀족 제도가 남아 있는 일본에서는 이런 이름이 좋은 이미지를 주는지 모르겠으나, 대한제국 시기이건 일제강점기건, 조선의 귀족들이 개판을 쳤던 것 때문에, 저 같은 한국인에게는 ‘귀족’이라는 이름이 그다지 좋은 인상으로 다가오지는 않네요. 그런데 이집 닭고기는 무척 맛있습니다. 구울 때 어떤..
[도호쿠2023취재] 46. 최승희 탄생일 (11) 자료와 참고문헌과 표지 참고문헌 목록 강이향, 1993, 최승희-생명의춤 사람의춤, 지양사:서울 강준식, 2012, 최승희 평전, 눈빛출판사:서울 김찬정, 2003[2002], 춤꾼 최승희, 한국방송출판(주):서울 박진욱, 2007, 최승희론, 미출판 원고 배윤희, 2011, 태양의 품에서 영생하는 무용가, 문학예술출판사:평양 서만일, 1957a, "조선을 빛내고저(1),“ 조선예술 제14호, pp.64-75. 서만일, 1957b, "조선을 빛내고저(2),“ 조선예술 제15호, pp.114-121. 서만일, 1957c, "조선을 빛내고저(3),“ 조선예술 제16호, pp.90-95. 서만일, 1958a, "조선을 빛내고저(4),“ 조선예술 제17호, pp.88-93. 서만일, 1958b, "조선을 빛내고저(5),“ 조선예술 제..
[도호쿠2023취재] 45. 최승희 탄생일 (10) 결론 10. 결론 이상에서 22개의 문헌에 나타난 최승희의 생년월일에 대한 기록을 모두 검토했다. 결론은 최승희의 실제 생일은 음력으로는 1911년 12월24일, 양력으로는 1912년 2월11이었고, 이에 따르면 최승희의 부친 최준현 민적과 숙명여학교 학적부에 기반을 둔 생년월일은 오류로 판명되었다. 반면, 새로 발굴된 문헌에 나타난 기록들은 모두 사실임이 증명되었다. 즉, 오늘날 정설로 굳어진 최승희의 생일 1911년 11월24일은 잘못된 것인데, 그것은 부친 최준현의 민적의 기록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오류였다. 부친 최준현이 최승희의 음력생일을 양력인 것처럼 신고한데다가 민적계원의 실수까지 겹쳐서 발생한 잘못된 기록이었다. 이같은 민적상의 오류는, 처음에는 제대로 작성되었던 숙명여학교 학적부의 기록을..
[도호쿠2023취재] 44. 최승희 탄생일 (9) 22개 문헌 9. 22개 문헌 기록의 재검토 최승희의 생일이 음력으로는 1911년 12월24일, 양력으로는 1912년 2월11일이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렇다면 이 새로운 생년월일이 에 나타난 여러 문헌의 다양한 기록을 모두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연대순으로 정리된 이 기록들을 차례로 살펴보자. (1)번의 최준현의 민적 기록(1912년)은 민적 계원의 실수로 야기된 오류였다. 12월24일이 11월24일로 잘못 기록된 것이다. (2)번의 숙명여학교 학적부 기록(1922년)과 그것이 수정된 사정도 이해할 수 있다. 학적부 작성 당시 최승희의 생일은 12월24일로 옳게 기록됐지만, 민적의 날짜와 일치하지 않았으므로 후에 잘못된 민적의 날짜로 수정되었다. (3)의 남편 안막의 민적(1931년)은 필자가 직접 확인하지 못했지..
[도호쿠2023취재] 43. 최승희 탄생일 (8) 민적 수정 8. 최승희의 민적 입적과 수정 최승희의 민적기록은 최준현의 다른 가족들과 절차상 차이가 있었다. 최준현의 가족 중에서 일제 강점 이후, 특히 민적법이 시행되기 시작한 1909년 4월 이후에 태어난 것은 막내딸인 최승희가 유일했다. 따라서 최승희의 부모와 형제들의 생년월일은 조선 호적에서 일제 민적으로 번역된 음력날짜였지만, 최승희의 생년월일은 처음부터 양력으로 기입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바대로, 최승희의 민적상 생일도 음력날짜였다. 메이지44년(=1911년) 11월24일이라고 기록된 것은 진짜 생일 12월24일을 잘못 기입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날짜는 음력날짜였다. 즉 부친 최준현이 일본 민적에 등록하면서 최승희의 생일도 음력날짜로 등록했던 것이다. 일제 민적에는 양력으로 기재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