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호쿠2023취재] 43. 최승희 탄생일 (8) 민적 수정

8. 최승희의 민적 입적과 수정

 

최승희의 민적기록은 최준현의 다른 가족들과 절차상 차이가 있었다. 최준현의 가족 중에서 일제 강점 이후, 특히 민적법이 시행되기 시작한 1909년 4월 이후에 태어난 것은 막내딸인 최승희가 유일했다. 따라서 최승희의 부모와 형제들의 생년월일은 조선 호적에서 일제 민적으로 번역된 음력날짜였지만, 최승희의 생년월일은 처음부터 양력으로 기입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바대로, 최승희의 민적상 생일도 음력날짜였다. 메이지44년(=1911년) 11월24일이라고 기록된 것은 진짜 생일 12월24일을 잘못 기입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날짜는 음력날짜였다. 즉 부친 최준현이 일본 민적에 등록하면서 최승희의 생일도 음력날짜로 등록했던 것이다. 일제 민적에는 양력으로 기재되는 것이 원칙이었으므로 이 음력날짜의 생일은 향후 양력날짜처럼 통용되었다.

 

 

일제 민적법에 따르면 출생과 사망을 포함한 15개 인적 사항을 신고하되, 사안이 발생한 날로부터 10일 이내에 본적지의 관할 헌병분견소에 신고해야 했다. 신고를 게을리 한 사람은 50대 이하의 태형, 혹은 5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되어 있었다. 특히 거짓 신고를 한 경우에는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100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최승희가 태어난 양력 날짜가 1912년 2월11일이고, 부친 최준현이 최승희의 출생일로 신고한 날짜가 1911년 12월24일이다. 최승희의 출생신고가 민적법에 정해진 신고기한을 한 달 이상 어긴 셈이었다. 그렇다면 부친이자 호주인 최준현은 <민적법>에 기록된 신고의무를 게을리 한 죄, 혹은 거짓 신고를 한 죄로 태형이나 벌금형을 받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최준현은 왜 그런 처벌 위험을 각오하면서까지 막 출생한 최승희의 생일을 굳이 음력날짜로 신고했던 것일까? 아마도 일제의 양력 제도 아래서도 막내딸 최승희의 조선식 음력 생일을 지켜주기 위한 배려였을 것이다. 다른 가족들의 민적상의 생일이 모두 음력날짜였던 만큼 막내딸의 생일도 음력날짜로 등재해서 가족 안에 통일성을 유지하려는 의도였을 수도 있다.

 

 

이는 조선인들이 일제의 양력 강요에 저항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개인의 생일은 가족의 제사일, 사회적 명절과 함께 조선식 역법인 음력을 고수하는 중요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민적상의 생일과 실제 생일이 달라지면 불편한 일이 많았다. 그러나 민적을 수정하는 일도 어려운 일이었다. 민적의 오류를 수정하려면 법원의 판결을 받아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웠다. 이에 대해 이희승 선생은 같은 칼럼에서 다음과 같은 극단적인 예를 제시했다.

 

“심지어 이런 기막히는 예까지도 있었다. 어느 시골에 모자 두 식구만 사는 집안이 있었는데, 민적을 경신한 후 몇 해 지나서 필요한 일이 생겨 헌병분견소에 가서 민적등본을 떼어 보았더니 그 가족관계가 모자가 아니라 부부로 되어 있었다. 연령은 물론 차이가 많았다. 이것은 이만저만한 망발이 아니다. 모자가 깜짝 놀라서 그 헌병분견소에 다시 가서 시정을 요구하였더니, 그 소장 일본인 헌병이 완강히 거절하면서 민적은 그렇게 함부로 고칠 수가 없으니 관할 재판소에 이혼소송을 제기하여 그 판결이 내려야 정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명백한 가족관계 수정마저 이렇게 까다로웠다면, 본인이나 가족의 증언 외에는 다른 증거가 없는 생일 오류를 쉽게 정정해 주었을 리 없다. 또 이 같은 생일 오류까지 정정해야 했다면 당시 일제 법원은 다른 업무를 수행하지 못할 정도로 이 일에 매여야 했을 지도 모른다.

 

이렇게 최승희의 민적상의 생년월일은 부친 최준현에 의해 음력날짜로 신고 되었지만, 민적계원의 실수로 12월24일이 11월24일로 잘못 기록되었고, 이 오류는 까다로운 수정절차 때문에 적어도 최승희의 결혼을 계기로 민적을 정리했던 1931년까지 계속되었다.

 

정병호가 1911년 11월24일을 최승희의 생년월일로 확정한 근거였던 최준현의 민적의 기록은 오류였다. 12월이 11월로 바뀐 것은 출생신고를 받아 민적에 기록한 담당자의 실수였다. 최승희의 실제 생년월일은 음력 1911년 12월24일, 혹은 양력 1912년 2월11일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