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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호쿠2023취재

[도호쿠2023취재] 48. 콘도 사치코 선생님

논문 발표 당일 아침 일찍 후쿠시마를 출발할 계획이었습니다. 후쿠시마-도쿄-코베는 신칸센으로 5시간 반쯤 걸리니까, 오전 중에 충분히 고베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구글은 5시간 걸린다고 하지만, 그것은 노조미 신칸센을 탈 경우입니다. JR패스는 노조미를 탈 수 없습니다. 히카리나 고다마를 타야 하는데, 정차하는 정거장이 많기 때문에, 노조미보다 30분 이상 더 걸립니다. 그래도 아침 6시쯤 출발하면 오전 중에 고베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호텔이 주는 아침 식사를 먹을 수 없기는 하지만, 중요한 약속에 늦을 수는 없으니까요.

 

 

후쿠시마 도서관 조사를 끝냈을 때 오후 5시가 조금 넘었습니다. 약간의 생각 끝에 바로 고베로 출발했습니다. 야마가타 재조사를 포기한 것인데, 그 재조사의 전망이 밝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도쿄 역에서는 거의 시간 간격 없이 오사카행 열차로 갈아탈 수 있었고, 신오사카 역에 도착하니 11시 반이었습니다. 호텔 예약은 기차 안에서 했습니다.

 

그러기를 잘했습니다. 발표 당일인 12일 오전이 한결 여유로워졌습니다. 아침 일찍 요도가와 공원을 산책할 수 있었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오사카 모닝세트로 아침식사도 할 수 있었습니다. (토요코인과는 달리 워싱턴 호텔은 아침 식사를 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뜻 깊었던 것은 콘도 선생님의 자택을 방문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정세화 선생님과의 통화에서, ‘어젯밤에 도착했어요했더니, ”오전에 사치코 상을 만나러 갈까요?“하시는 겁니다. 사치코 선생은 작년에 타계하신 콘도 도미오 선생님의 사모님이십니다.

 

그러잖아도 저는 콘도 선생님 댁에 돌려드릴 자료를 한 가방 가지고 있었고, 이는 원래 아드님이신 콘도 타쿠미씨에게 전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정세화 선생님은 아예 본가로 가서 사치코 상도 뵙고 자료도 반납하자는 말씀이었습니다.

 

정세화 선생을 다치바나 역에서 만나 함께 콘도 선생님 댁으로 갔습니다. 콘도 도미오 선생님의 유골은 납골함에 담겨 생전에 지내시던 방에 모셔져 있었습니다. 정 선생과 저는 절과 묵념으로 예를 갖추고, 자료도 돌려드린 다음, 사치코 상과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사치코상은 식민지 시기에 경북 합천에서 태어나신 어머니 이야기를 많이 하셨습니다. 소학교까지 다니시다가 조선이 해방되면서 효고현으로 이주해 오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고향인 합천을 잊지 못하시고 그때 말씀을 자주 하셨다고 합니다.

 

어머님은 연로하신 뒤에도 합천 소학교를 찾아가 과거의 흔적을 돌아보곤 하셨는데, 특히 어머님의 아버님, 그러니까 사치코 상의 할아버지께서 합천 초등학교의 교장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재학 기록과 함께 아버님의 재직 기록도 남아 있더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콘도 도미오 선생과 사치코 선생의 결혼 에피소드는 친구 분들 사이에 유명합니다. 고베 대학 재학시절에 만난 두 분은 졸업 후 결혼하시면서, “누구의 성을 따를 것인가를 놓고 가위바위보를 하셨다는 겁니다. 도미오 선생님이 졌기 때문에 자신의 성을 버리고, 사치코 상의 성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때부터 콘도 도미오가 공식 이름이 되었던 것이지요.

 

콘도 도미오 선생이 쓰시던 침대 맡의 설합장 위에는 전에 보지 못했던 사진이 몇 장 더 세워져 있었습니다. 곤도 도미오 선생이 스무 살도 되기 전의 대학생 시절의 사진입니다. 한 장은 독사진이고, 다른 한 장은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저 혼자 생각이었지만, 대학 시절 콘도 선생의 사진은 한때 인터넷에 회자되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특전사 시절의 사진을 연상시켰습니다. 제가 원래 콘도 도미오 선생님의 광팬이기는 하지만, 젊은 시절 외모까지 멋진 분이셨더군요.

 

콘도 선생의 마지막 3년 동안 그분과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제게 명예로운 기회였습니다.

 

 

사치코상을 만나 뵙고, 콘도 도미오 선생을 회고할 수 있게 되었으니, 새삼 고베에 일찍 도착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jc, 2023/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