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부터 2023년까지 110년동안의 강릉과 다카라즈카의 인연을 살펴봤습니다.
1985년 정홍영-콘도 도미오 선생은 매장인허증을 실마리로 김병순씨의 사망을 발굴했습니다. 그가 고베 수도공사 현장에서 터널 낙반사고로 사망한지 71년만이었습니다.
정홍영 선생은 김병순씨의 매장묘 추정지를 확인한 후, 자신의 저서 <가극의 도시의 또 하나의 역사: 다카라즈카의 조선인(1997)>에 김병순씨의 희생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타마세 마을의 단신회와 부녀회가 매년 8월 만푸쿠지의 주지 집전으로 위령 제사를 드리고 있다는 사실까지 밝혀내지는 못했습니다.
2000년 정홍영 선생이 타계하신 후 콘도 도미오 선생은 추도비 건설을 준비했습니다.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과정을 통해 가장 이상적인 추도비를 건립하기 위해서 공을 들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2020년 추도비 건립이 임박했을 때, 만푸쿠지의 아다치 타이쿄와 아다치 치쿄 선생의 연락, 그리고 이를 중개한 다이꼬꾸 선생의 전언을 통해, 김병순씨를 포함한 3명의 조선인 희생자의 참배묘가 타마세에 마련되어 있다는 소식이 콘도 도미오 선생에게 도달했습니다.
일본인 활동가와 재일조선인들의 협력으로 추도비가 건립된 직후 콘도 도미오 선생은 희생자들의 한국내 연고를 조사해 달라고 의뢰했습니다. 약 1년에 가까운 조사 끝에 김병순씨의 고향이 강릉임을 밝힐 수 있었습니다.
이후 다카라즈카와 강릉의 교류가 시작됐습니다. 다카라즈카 추도비와 타마세의 참배묘는 많은 한국인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강릉시가 감사패를 전달하고, <무용신> 회원들이 타마세를 방문해 국악 콘서트를 열기에 이르렀습니다.
일본에서도 추도비와 참배묘의 의미를 살려나가자는 뜻으로 참배묘 앞에 무궁화를 심고 추도비 이야기가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습니다. 타마세와 다카라즈카뿐 아니라 효고현과 그 외의 지역에서도 “타마세의 백년 기적”이야기가 회자되기 시작했습니다.
김병순씨의 희생이 리서치로 발굴되기까지 약 70년이 걸렸고, 추도비가 세워지는 데에는 다시 35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추도비가 세워진 후 불과 3년 동안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강릉과 다카라즈카가 교류와 협력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김병순씨의 희생이 알려지게 되는 데에는 서너 명의 관심과 열심이 필요했지만, 추도비가 세워지는 데에는 약 2백여 명의 노력이 들어갔습니다. 그 뒤로 3년 동안 다카라즈카와 강릉의 교류와 협력을 위해 수백 수천 명이 마음을 기울였고, 지금도 기울이고 있습니다.
적은 사람의 노력으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관심을 갖고 열심을 내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중요한 일이 이루어지는 데에 드는 시간이 짧아집니다. 그런 원칙은 다카라즈카 추도비와 타마세 참배묘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다카라즈카 추도비와 타마세 참배묘를 인식하고 추모하는 분들이 늘고 있습니다. 약 3년 동안의 캠페인으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적어도 한국에서도 10여개 사회운동 단체 회원들이 알고 계시고, 모금에 참여하신 분들도 수백 명에 달합니다. 일본에서도 그 파장이 점점 커지고 있고, 젊은 세대에게 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카라즈카 추도비와 타마세 참배묘는 과거의 불행한 일로 인식하거나 미담으로 치하하고 멈추기에는 너무 아까운 일입니다. 역사와 상황이 빚어낸 불행한 사건들 속에서도 양국 시민들이 인류애를 꽃피웠던 드문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부디 추도비와 참배묘를 계기로 강릉과 다카라즈카, 강원도와 효고현, 그리고 대한민국과 일본의 시민들 사이에 교류가 잦아지고 협력이 밀접해 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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