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552) 썸네일형 리스트형 [다카라즈카1935공연] 1. 이상한 동선 최승희의 무용 공연을 취재하다보면 작은 실마리가 중요한 발견을 이끌기도 한다. 지방 공연이나 해외 공연이 특히 그랬다. 경성이나 도쿄의 공연에 대해서는 많은 기록과 화보가 남아 있지만, 지방 공연과 해외 공연의 자료는 비교적 제한적이기 때문에 사소해 보이는 정보라도 이를 꼼꼼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예컨대 최승희의 스승 이시이 바쿠의 공연을 조사하던 중에 발견된 사진 한 장이, 최승희의 초무대가 도쿄의 호가쿠자(邦樂座, 1926년 6월22일)가 아니라 오사카의 공회당(公會堂, 1926년 6월12일)임을 추론할 수 있게 했다. 이 추론은 추가 조사를 통해 발굴된 오사카마이니치신문의 기사(1926년 6월10일)로 확인되었다. 유럽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칸공연(1939년 2월26일)과 마르세유공연(.. [유준2025길-홍범도] 21. 감상문 몰아보기 유준 화백께서 2025년 벽두 혜화아트센터>에서 동시에 개최하신 길>전과 홍범도>전에 대한 감상문을 약 3주일에 걸쳐서 썼습니다. 혜화아트센터>의 강석동 대표님과 한은정 관장님께 “이번 전시회에 대해서 20개의 감상문을 쓰겠다”고 약속했는데, 2월5일 전시회가 마칠 때까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전시회 내용이 너무 충실하고, 개인적으로 유준 화백의 수묵화를 너무 좋아해서, 처음부터 쓰기 시작했다면 30개도 쓸 수 있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개인 일정으로 뒤늦게 참여했기 때문에 전시회 종료 후 열흘이나 지나서야 “20개 약속”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작가로서는 심혈을 기울인 작품에 대해 누군가 이렇쿵저렇쿵 하는 게 달가울 리 없겠습니다. “그냥 관심 있게 봐 주시고, 마음에 들면 사달라”는 게 .. [유준2025홍범도] 20. 범도의 태극기 유준 화백의 2025년 홍범도>전의 작품들 중에는 태극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대개는 각 장면의 배경으로 등장하지만, 명시적으로 태극기가 묘사된 작품도 있습니다. “우리는 의병이며 대한독립군이다”라고 설명된 홍범도14(2024)>는 앞서 홍범도 장군의 국내 의병투쟁 시기를 묘사한 작품이라고 봅니다. 아마도 1907년부터 1908년까지의 강원도 북부와 평안도 동부, 그리고 함경도 서부에서 활발하게 의병투쟁을 벌이던 모습입니다. 홍범도와 차도선의 두 명으로 시작된 의병부대는 1907년 10월14일 북청 일진회 사무실을 습격한 후 14명이 되었고, 11월2일 안산과 안평 지역 포수계를 흡수하면서 70명, 1908년 4월경에는 5백명으로 크게 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홍범도14>는 1907년 말의 홍범도 의병.. [유준2025홍범도] 19. 범도의 사람들 유준 화백의 홍범도>전에 전시된 작품들 중에는 그의 작품 경향에 비추어 볼 때 특이한 점이 한 가지 눈에 띱니다. 한 화폭에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작품이 꽤 많다는 것이지요. 유준 화백의 주요 작품에는 산수나 풍경이 많고, 사람이 등장하더라도 산수의 일부로서 아주 작게 한 사람, 또는 두어 사람이 묘사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이번 홍범도>전에는 인물화가 적지 않고, 특히 한 화폭에 많은 사람이 묘사된 것도 많습니다. 홍범도29(2024)>는 홍범도 장군이 처음으로 의병으로 봉기했을 때의 모습입니다. 그는 을미사변 직후인 1895년 11월 동료 포수 김수협과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철령에서 일본군 12명을 사살하고 소총과 탄약 등을 노획해 함경도 안변의 학포로 이동한 홍범도는 이곳에서 14명의 의.. [유준2025홍범도] 18. 홍범도 묘비 유준 화백의 2025년 홍범도>전에는 카자흐스탄 키질로르다에 조성된 홍범도 묘를 묘사한 작품도 전시되었습니다. 홍범도27(2024)>입니다. 화폭 오른쪽에는 “저명한 조선빨지산 대장 홍범도 묘, 1868년 3월1일 출생, 1943년 10월25일 사망”이라고 쓴 홍범도 장군의 묘비가 있고, 왼편에는 고려인 동포들이 줄지어 장군의 묘를 참배하는 모습입니다. 묘비 위쪽은 구름이 낀 사이로 언뜻언뜻 하늘이 보이는데, 그 하늘마저 검푸른 색이어서 비장함을 더해 주고 있죠. 1943년 10월25일 홍범도 장군이 사망한 직후 그의 묘지는 살던 집 근처에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묘역이 자꾸 내려앉는 바람에 키질로르다의 고려인 동포들은 1951년 장군의 서거 8주년을 즈음해서 고려인 노 혁명가 이인섭 등이 .. [유준2025홍범도] 17. 범도의 가족 유준 작가의 2025년 홍범도>전에는 홍범도 장군의 가족이 등장합니다. 홍범도28(2024)>은 죽은 줄 알았던 아내가 살아 있음을 알고 홍범도가 북청의 집으로 달려가는 모습, 홍범도17>은 돌아오는 홍범도를 맞는 아내 단양 이씨(1873-1908)와 큰 아들 홍양순(1892-1908), 그리고 홍범도15>는 둘째 아들 홍용환(1900-1921)이 태어난 후 네 식구의 단란한 모습입니다, 홍범도 장군은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 당한 뒤에 재혼, 이인복씨를 두 번째 부인으로 맞았고, 이 결혼에서 딸 홍연식(?-1986)씨와 외손녀 김알라(1942-생존)씨가 태어났습니다. 홍범도의 첫 부인 단양 이씨는 고향이 함경북도 북청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알려진 바가 거의 없습니다. 이름이 이옥구 혹은 이옥녀라는 말이.. [유준2025홍범도] 16. 범도의 응시 유준 화백은 홍범도>전에 출품한 작품에 제목을 붙이면서 ‘홍범도’라는 풀 네임보다 ‘범도’라는 이름만 사용한 것이 많습니다. 범도의 눈물(2024)>, 범도의 귀환(2024)>, 범도가 온다(2024)> 등이 그런 작품들입니다. 성을 빼고 이름만 부르는 것은 친근함의 표현이죠. 홍범도 장군이 1868년생이시니까 우리보다 1백세이상 많으신 분인데, 그냥 ‘범도’라고 부르는 것이 결례로 생각될 수 있습니다. 율곡이니 다산같은 호도 아니고, 그냥 이름을 부르는 것이 못마땅한 분들도 혹시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게 아주 맘에 듭니다. 유준 화백을 따라서 자꾸 그렇게 부르다 보니까 친근감은 더해지고 결례라는 생각은 잦아드는군요. 그래서 홍범도가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을 그린 유준 화백의 두 작품을.. [유준2025홍범도] 15. 금강산 신계사 유준 화백의 홍범도>전에 전시되었던 작품 중에는 금강산의 봉우리와 함께 홍범도 장군이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 있습니다. 홍범도11(2024)>입니다. 홍범도 장군이 머리를 깎고 계를 받은 절은 신계사입니다. 작품에는 사찰 이름이 나타나지 않지만 수묵전기에는 그렇게 서술되어 있고, 유준 화백도 ‘신계사가 맞다’고 확인해 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놀랐던 것은 최승희 조사연구 중에 신계사가 최승희 선생의 무용영화 대금강산보(大金剛山譜)>의 촬영지였기 때문입니다. 최승희 선생을 포함, 신계사의 대웅전 앞에서 찍은 영화 촬영팀의 단체사진이 지금까지 남아있습니다. 그 사진을 처음 발견했을 때는 이곳이 어디인지 몰랐습니다. 다카시마 유사부로와 정병호 등의 초기 평전자들도 신계사를 몰랐는지 이.. 이전 1 ··· 3 4 5 6 7 8 9 ··· 69 다음 목록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