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준 화백의 <홍범도>전에 전시된 작품들 중에는 그의 작품 경향에 비추어 볼 때 특이한 점이 한 가지 눈에 띱니다. 한 화폭에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작품이 꽤 많다는 것이지요.
유준 화백의 주요 작품에는 산수나 풍경이 많고, 사람이 등장하더라도 산수의 일부로서 아주 작게 한 사람, 또는 두어 사람이 묘사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이번 <홍범도>전에는 인물화가 적지 않고, 특히 한 화폭에 많은 사람이 묘사된 것도 많습니다.
<홍범도29(2024)>는 홍범도 장군이 처음으로 의병으로 봉기했을 때의 모습입니다. 그는 을미사변 직후인 1895년 11월 동료 포수 김수협과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철령에서 일본군 12명을 사살하고 소총과 탄약 등을 노획해 함경도 안변의 학포로 이동한 홍범도는 이곳에서 14명의 의병부대를 조직, 의병대장 유인석과 합류해 세 차례의 전투를 치렀습니다.
유준 화백의 <홍범도29>는 바로 이때 구성된 홍범도의 14인 의병부대를 가리킨다고 봅니다. 인원이 십여 명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대부분 장총으로 무장하고 있는 것은 철령 전투에서 노획한 일본군의 무기를 소지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대원들이 전립을 쓰거나 두건을 한 대원들이 많지만, 대부분이 상투를 틀고 있습니다. 단발령이 내려진 것이 1895년 12월30일(음력 11월15일)이기 때문에 의병들은 이를 거부하는 의미에서라도 상투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유준 화백의 <홍범도14(2024)>에는 “우리는 의병이며 대한독립군이다”라는 부제를 달려 있습니다. 중앙에 흰 머플러를 맨 홍범도 장군이 전투 준비를 지휘하고 있고, 대원들이 갈대밭에서 매복을 준비하는 모습입니다.
이 부대는 아마도 1907년 을미사변 이후 본격적으로 활동을 개시한 홍범도 의병부대일 것입니다. 홍범도는 10월14일 북청의 일진회 사무실을 급습해 친일파를 척살한 후 서짝골 포수막에서 14명의 포수들과 함께 의병 봉기를 결의한 후, 11월2일에는 안산, 안평 포수계를 의병부대에 추가 배치하자 홍범도 의병부대는 7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증강된 홍범대 부대는 11월25일 후치령 말리에서 일본 무기 수송대를 공격, 1천4백명의 일본군을 격퇴하면서 대량의 무기를 탈취했습니다. 반년 만에 홍범도 부대는 5백여명으로 증가했는데, 이들을 무장시킬 수 있었던 것은 후치령 전투에서 노획한 총과 탄약 때문일 것입니다.
유준 화백의 <홍범도14>에 등장한 의병 대원들이 이미 상당수 단발을 했고, 조선복을 입은 대원도 있지만 대부분이 서양식 군복과 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아마도 일본군을 습격해 무기와 함께 군복도 탈취해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의병으로 거병했지만 점차 독립군으로 변모해 갔고, 1908년 이후에는 만주로 활동무대를 옮기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대한독립군으로 일본군을 타격하기 시작했습니다.
<홍범도22(2024)>는 1920년의 청산리 전투와 봉오동 전투를 동시에 형상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두 전투 모두 골짜기에 갇힌 일본군 대병력을 사살한 전투였지요. 이때는 홍범도 장군이 러시아식 군복과 모자를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연해주 시절 이후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범도의 눈물”이라는 부제가 붙은 <홍범도26(2024)>는 봉오동 전투 이후 일본군의 잔인한 조선인 민간인 학살, 즉 간도참변의 일부를 묘사한 작품으로 보이고, “아! 고려인”이라는 제목이 부기된 <홍범도25(2024)>는 1937년 강제이주로 카자흐스탄에 도착한 고려인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홍범도 장군은 휘하의 부대원들과 자신을 후원해 준 강원-함경-평안도 지역의 농민들과 포수들, 그리고 간도와 만주의 조선인들을 위해 자신의 역량을 다했던 뛰어난 지휘관이었습니다.
유준 화백이 묘사한 “범도의 사람들”은 비참한 조건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투쟁하고 개척하는 조선인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jc, 2025/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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