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사람 성격을 부먹과 찍먹으로 나누더군요. 부먹자와 찍먹자의 상호작용으로 성리학의 계보나 한국 현대사를 설명하는 글도 인터넷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런 글들이 집단지성으로 회자되는 것을 알았다면, 움베르토 에코도 울고 갈 노릇이었을 겁니다.
이와 비슷하게 미국에서는 모든 사람을 개과(dog-type)와 고양이과(cat-type)로 분류합니다. 둘 사이의 차이점에 대한 농담도 한국의 부먹 vs 찍먹만큼 많습니다. 그리고 이 두 부류의 갈등과 투쟁은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결코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강하죠.
굳이 말하자면 유준 작가는 고양이 타입이네요. 고양이가 등장하는 작품이 개 작품보다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이번 <먹의 사유> 전시회에서도 개 작품은 두세 점 밖에 없는데, 고양이 작품은 .... 음, 제가 세다가 잊어버렸습니다.ㅋ
근데, 이건 앞에 말한 "여전히 혼자"의 주제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이미 예견된 거죠. 고양이는 결코 여럿이서 어울려 다니지 않잖습니까? 야성을 간직한 고양이일수록, 혼자 다닙니다.
그런데 유준 작가의 고양이들은 은근히 인간친화적이면서, 심지어 왠만한 인간보다는 더 높은 영적 승화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특히 부처님과 염화미소를 나누는 고양이 그림은 아주 인상적입니다.
고양이는 원래 표정이 별로 없죠. 그리고 이 고양이는 워낙 전체가 까마니까 웃고 있는지 화가 났는지 표정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대개의 부처님들처럼 포커페이스인 거죠. 더구나 차분히 앉은 자세가 하도 고즈넉해서 마치 득도한 고양이로 보입니다.
법당에 들어온 고양이가 말았던 꼬리를 슬며시 바닥에 내려놓으니까 내려다보시는 부처님이 은은히 미소를 짓기 시작합니다. 고양이의 심중을 헤아리고 흐뭇해서 절로 웃음이 나오는 거겠죠. 이쯤 되면 누가 가섭이고 누가 부처님인지 헷갈립니다.
<이무기, 물을 만나다(蛟龍得水)>는 화승이 "물 만난 이무기"를 그리고 있는데, 마지막 여의주를 그리자마자 교룡이 그림을 뚫고 나와서 승천해 버리는 장면입니다. 화승은 황당하죠. 연초라고 신년화 한 장 그리려고 애써 먹을 갈았는데, 용이 올라가 버리니까 빈 화폭... 다시 그리기도 뭐하고, 난감할 겁니다.
그런 난감함을 옆에 앉은 고양이가 공유하고 있습니다. 화승이 용 그리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만 휘리릭 날아 올라가 버리니까, 황당하기는 고양이도 마찬가지겠죠. 화승은 비어버린 화선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이걸 또 그리나 마나를 놓고 고민하는 표정인데, 고개를 돌린 고양이는 살짝 표정이 다릅니다.
"헐, ... 지금 나더러 이걸 믿으라고?"
이번 전시에는 호랑이 그림도 여럿 출품되었는데, 사실 호랑이도 고양이과지요. 이번에 전시된 호랑이 그림은 모두 4개인데, 작품의 연도가 모두 다릅니다. <풍운>은 갑진년(2024년), <설산맹호>는 임인년(2022년), <춘래불사춘>은 신축년(2021년), 그리고 <범도>는 계묘년(2023년)) 작품입니다. 그동안 꾸준히 호랑이를 그려오셨다는 말이겠지요.
특히 작년에는 홍범도 장군을 대한민국의 육군사관학교에서 몰아내는 작태가 벌어져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는데, 이와 나란히 시베리아 호랑이를 배경으로 한 유준 작가의 홍범도 장군 그림이 널리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이 그림에서는 홍범도 장군의 총구에서 희미한 화약 연기가 올라오는 것이 보입니다. 이미 한 발 쏜 것이지요. 친일파와의 전쟁은 계속됩니다.
호랑이 그림 중에서는 <풍운>의 호랑이가 가장 전투적인데, <춘래불사춘>의 호랑이는 정감이 쫌 다릅니다. 고양이과 동물의 특징인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은 위에서 사선으로 내려다보는 시선의 방향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이 호랑이의 표정이 사뭇 슬퍼 보입니다.
왜죠?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은 것은 기후 변동 때문일까요? 아니면, 한국의 이상 정치 변동 때문일까요? (jc, 202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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