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정리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챙길 것은 챙기고 잊을 것은 잊어야지요.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 반대가 트라우마입니다. 과거에 묶여서 앞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비극을 경험하고도 앞으로 쑥쑥 잘 나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은 과거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돌아갈 수 없고,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한국에는 “과거는 흘러갔다”는 유행가가 있고, 미국에도 “다리 밑의 물(water under the bridge)”이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니까요.
‘지나간 일’을 잘 정리한 사람들에게도 흉터는 있습니다. 보기가 좋지는 않죠. 하지만 흉터는 건강을 해치지 않습니다. 흉터는 상처를 이겨냈다는 뜻이니까요.
트라우마, 상처, 흉터 같은 낱말이 연상되는 것은, 총선을 앞두고 벌어질 일들이 짐작되기 때문입니다. 민주 진영이 총선에서 압승을 하려면,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말들이 많을 겁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일리가 있는 주장이겠습니다.
그런데 상처에 자꾸 소금을 뿌려서 아물지 못하게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들입니다. 특히 두 가지 주장이 심각할 것이라고 예상됩니다.
(1) 문재인, 조국이 검찰 개혁을 못해가지고 지금 같은 상황이 됐다, (2) 이낙연, 이상민이 민주당 당권을 쥐었을 때 적폐세력에 부역했다.
그래서요? 그건 벌써 3-4년 전 일이죠. 지금 그걸 탓하면 뭐합니까? 민주 진영 안에 논쟁, 논란, 갈등을 만들 뿐입니다. 급기야 패싸움을 벌이다가 패배하겠지요. 내분은 패배를 자초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고, 그래서 극우 유튜버와 수구 언론이 여기에 총력을 기울일 겁니다.
저는 현재에 집중하자고 제안합니다. 문재인, 조국이 총선을 앞두고 민주진영에 남아 있습니까? 그럼 그냥 가만 두세요. 그들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이 무슨 이득이 있습니까? 정 비판을 해야겠으면 총선이 끝나고 나서 비판하는게 지혜롭다고 봅니다. 굳이 선거 앞두고 내분의 소지가 있는 주장을 하는 것은 그 의도를 의심받기 쉬우니까요.
조국과 문재인이 검찰개혁을 완수하지 못한 것은 저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게 그 사람들 탓만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때는 다들 잘한다, 잘한다 했으면서 지금 와서 비판하는 걸 보면 저는 그 이중성에 거부감이 듭니다. 정치인도 사람인데 다 잘할 수는 없죠.
반대로, 이낙연, 이상민이 총선을 앞두고 반민주 행각을 벌입니까? 그럼 반대하면 됩니다. 과거 행위가 아니라, 지금 작태를 보면 됩니다. 총선이 석 달 앞이기 때문에, 가면을 벗고 본색을 드러낼 때입니다. 3-5년, 아니 2-3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을까요?
“정다웠던 그날이 다시 올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과거는 흘러갔”습니다. “다리 밑으로 흘러 지나간 물”은 다시 거슬러 되돌릴 수 없습니다.
현재에 집중해야 합니다. 옛날 일 파헤쳐서 자중지란 일으키지 말자는 말이지요. 이준석이 총선을 앞두고 2찍 지지를 업고 민주당에 투항해 들어온다면, 그럴 리는 없겠습니다마는, 저는 받아들여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선거입니다.
선거는 옳고 그름의 윤리나, 맞고 틀리고의 논리가 아니라, ‘표’로 결정됩니다. 지난 대선의 표 차이가 0.7%였던가요? 그 미세한 차이 때문에 지금 같은 난맥상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지요.
더 중요한 이유도 있습니다. 정치인을 탓하는 것은 유권자의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검찰 개혁을 못했으면 그게 문재인이나 조국 책임입니까? 그들을 선출한 유권자 책임이 아닐까요?
지금은 이재명이 살 길인 것처럼 홍보되지만, 8년 전에는 유권자들이 이재명 대신 문재인을 선택했습니다. 민주공화국이고 주권재민이라면서요? 최종 책임은 유권자인 국민이 진다는 뜻이지요. 잘되면 유권자 덕이고, 잘못되면 정치인 탓하는 것은 책임 있는 유권자들의 태도가 아니죠.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총선에서 압승하지 못하면 유권자 탓입니다. 과거 탓, 정치인 탓을 할 시간이 있으면 한 표라도 더 모을 생각을 하는 게 현실적이 아닐까요? (jc, 202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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