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490) 썸네일형 리스트형 [도호쿠2023취재] 56. 요코하마 (2) 애린원의 탁아소 최승희의 요코하마 공연은 도쿄에서 발행되던 영자지 의 기사로 발굴되었고, 요코하마에서 발행되었던 다른 두 자료에 의해 확인되었습니다. 하나는 요코하마의 지역신문 라는 일간 신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도호쿠2023취재] 55. 요코하마 (1) 블루라이트 취재하는 동안 그날 밤 어디에서 숙박할 것인를 정하게 되곤 합니다. 처음 이틀의 모리오카 숙박과 고베 논문 발표를 위한 오사카 숙박은 출발 전부터 미리 정할 수 있었지만, 나머지의 숙박 일정은 모두 그날 그날 조사 결과에 따라 정해지거나 변경되곤 했습니다. 도쿄 국회도서관 조사 때도 그랬습니다. 영자지 조사에서 최승희 선생의 요코하마(横浜) 공연이 확인되자, 저는 도서관에서 바로 요코하마에 숙소를 예약했고, 김재호 선생과의 맛있고 뜻 깊은 저녁식사가 끝나자 바로 요코하마로 갔습니다. 요코하마는 도쿄도 남쪽의 카나가와(神奈川) 현의 최대도시이자 현청소재지인 항구도시입니다. 도쿄에서는 도카이도(東海道) 본선이나 요코스카(橫須賀)선 등의 JR의 일반열차를 타도 3-40분이면 도착하지만, 신칸센을 타면 시나가와.. [도호쿠2023취재] 54. 도쿄 (4) 신바시의 심야식당 저녁 7시 일본국회도서관이 문을 닫자 저는 신바시(新橋)로 향했습니다. 영자지 조사가 다 끝난 것은 아니지만, 흥미진진한 약속이 있었습니다. 재일동포 사업가 김재호 선생과 만나기로 했습니다. 저녁 식사도 같이 하기로 했고... 김재호 선생은 큐슈 출신으로 일본 열렬 회원이신데, 도쿄와 하카타에서 요식업, 즉 식당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도쿄에 이미 4개의 식당을 개업했고, 하카타에도 식당을 운영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회원이신 만큼 김재호 선생은 재일조선학교 후원에 관심이 깊습니다. 지난 7월 큐슈와 히로시마의 조선학교 무용부에 무용신을 전달할 때에도 동행해 주셨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사업과 조선학교 후원을 직접적으로 연관시킬 방안도 모색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바시(新橋)는 도쿄역에서.. [도호쿠2023취재] 53. 도쿄 (3) 최승희의 이름 일본 영자지 에서 발견된 최초의 최승희 기사는 1934년 9월30일의 기사입니다. “요코하마 프로그램”이라는 제목 아래, 세로 두 단에 걸친 승무 사진과 함께, 요코하마에서 열린 “조선무용 프로그램(Program of Korean Dances)”을 소개했습니다. 9월29일 오후6시30분 요코하마의 개항기념관에서 열린 이 공연은 “전형적인 조선 민요와 춤”으로 구성됐는데, 요코하마의 조선인 탁아소 애린원(愛隣園) 후원 모금행사였다고 합니다. 이 공연에 최승희가 출연했습니다. 기사는 이 공연이 최승희의 “요코하마 데뷔 공연”이었다고 합니다. 최승희는 또 이 공연을 위해 "여러 명의 일본인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기사는 또 “조선 태생”의 최승희가 “일본의 선도적 무용가 이시이 바쿠(Baku I.. [도호쿠2023취재] 52. 도쿄 (2) 일본의 영자신문 일본 국회도서관에 소장된 1930년대의 영어 신문을 조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선 당시 영자 신문의 종류와 그 변화상을 이해해야 하더군요. 1920년대에는 도쿄와 그 인근 지역에 여러 개의 영자신문이 있었습니다. 세계 각국의 외교 공관과 상사의 지사들이 이 지역에 몰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가면서 이 영자지들의 수는 줄어듭니다. 경쟁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1940년에는 일제가 전쟁 물자 부족을 이유로 신문들을 통폐합했기 때문입니다. 조선에서 와 가 폐간되고 만 남은 것도 같은 이유때문이었지요. 그런 일은 1980년대에 한국에서도 벌어졌습니다. 전두환 쿠데타 세력이 신문과 방송사 통폐합을 통해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한편, 사회 전반에 억압 분위기를 조성했었습니다. 하는 짓들이 어찌 그리 똑.. [도호쿠2023취재] 51. 도쿄 (1) 국회도서관 제가 진행해 온 최승희 조사연구는 그의 공연을 발굴하고 확인하는 데에 초점을 맞춥니다. 유럽 취재가 그렇게 시작되었고, 미주와 일본의 조사도 그렇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국내 조사도 마찬가지이고, 덕분에 춘천공연과 벌교공연 등을 새로 발굴했습니다. 그동안 많은 조사가 최승희의 사진이나 프로그램 발굴에 만족했던 것과는 달리, 저는 그 사진이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함께 찍은 사진이며, 그 프로그램이 언제 어디서 열린 공연에 대한 것인지 밝히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 일본 리서치에 가장 큰 도움을 준 곳이 일본국회도서관과 쇼와칸(昭和館)입니다. 두 기관 모두 도쿄에 있습니다. 최승희 선생의 무용 활동이 도쿄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입니다. 이번에도 고베 논문 발표가 끝나자 바로 도쿄로 .. [도호쿠2023취재] 50. <팀아이> 후원금 의 저녁식사 모임은 후원금을 전달하시기 위한 모임이기도 했습니다. 정세화 선생께서 의 회원 분들의 성금을 전해 주시면서 취재를 위해 써달라고 하셨습니다. 저로서는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할지 모를 뿐입니다. 은퇴한 백수의 신분으로 장기간에 걸친 해외 취재를 계속해 온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유럽 취재는 차길진 회장님의 후원으로 진행되었는데, 저는 100회를 넘겨가며 연재한 취재기로 보답했고, 그 취재기 인터넷판은 많은 최승희 연구자들에게 인용되고 있습니다. 차길진 회장님이 타계하신 뒤에도 최승희 조사 연구는 계속되었는데, 이후 취재비는 제가 충당해 왔습니다. 긴축을 거듭했지만 국내 조사와 일본 취재가 길어지면서 올해 4월경에 자금이 마르고 말았습니다. 일산 사무실도 철수했고, 해외 취재를 대폭 줄여야.. [도호쿠2023취재] 49. 아운(阿吽) 고베에서 논문 발표를 마치고 에서 애프터도 가진 후에 저는 다시 이타미(伊丹)로 향했습니다. 선생님들과의 저녁식사 약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임이 길어지는 바람에 제가 조금 늦었는데, 정세화 선생님과 정희화 선생님, 그리고 다이꼬꾸 스미애 선생님이 먼저 오셔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한큐 이타미역 인근의 은 정세화 선생과 제가 일본에 갈 때마다 자주 만나서 밥도 먹고 나마비루도 마시면서 여러 가지 의논을 많이 하던 곳입니다. 재일동포 2세가 경영하시는 이자카야(居酒屋)인데, 이곳은 저는 물론 이곳 주민이신 정세화 선생도 아주 편안해 하시는 가게입니다. 식사와 안주도 아주 좋습니다. 아직도 실내 흡연이 가능한 신기한 집이죠. 저는 이라는 가게 이름이 궁금해서 찾아본 적이 있습니다. ‘소울음 음(吽)’자는 .. 이전 1 ··· 29 30 31 32 33 34 35 ··· 6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