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도호쿠2023취재

[도호쿠2023취재] 53. 도쿄 (3) 최승희의 이름

일본 영자지 <재팬 애드버타이저>에서 발견된 최초의 최승희 기사는 1934930일의 기사입니다. “요코하마 프로그램이라는 제목 아래, 세로 두 단에 걸친 승무 사진과 함께, 요코하마에서 열린 조선무용 프로그램(Program of Korean Dances)”을 소개했습니다.

 

929일 오후630분 요코하마의 개항기념관에서 열린 이 공연은 전형적인 조선 민요와 춤으로 구성됐는데, 요코하마의 조선인 탁아소 애린원(愛隣園) 후원 모금행사였다고 합니다.

 

 

이 공연에 최승희가 출연했습니다. 기사는 이 공연이 최승희의 요코하마 데뷔 공연이었다고 합니다. 최승희는 또 이 공연을 위해 "여러 명의 일본인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기사는 또 조선 태생의 최승희가 일본의 선도적 무용가 이시이 바쿠(Baku Ishii)의 역량이 가장 뛰어난(the ablest) 제자 중의 한 명이며 천재 무용가(a gifted dancer)로 칭송받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때는 최승희가 이시이 바쿠의 문하생일 때이므로, 이 공연에 참여하려면 스승 이시이 바쿠의 허락을 받아야했을 시기입니다. 이시이 바쿠는 최승희의 출연 뿐 아니라 다른 제자들이 최승희를 도와 이 공연에 함께 출연하도록 허락했다는 말입니다. 이로부터 우리는 이시이 바쿠가 민족차별 없이 사회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실천했던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기사가 조선인을 코리안(Korean)’으로, 조선무용을 조선무용(Chosunese dances)’이 아니라 코리안 댄스(Korean dances)’라고 표기한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이는 영어권에서 조선을 코리아(Korea)’로 표기하는 것이 이미 일반화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재팬 애드버타이저>는 최승희의 이름을 치싱히(Chi Shing Hii)’라고 표기했습니다. 최승희 이름의 한자를 일본어 발음이 아니라 조선어 발음대로 표기하려고 노력했던 것이지요. 후일 최승희는 일본인들에 의해 사이 쇼키라고 불리게 되었는데, 이는 최승희라는 이름의 한자(崔承喜)를 일본어 발음으로 읽은 것입니다.

 

일본어와 영어 발음체계에는 한국어 단모음 그리고 복모음 를 발음할 수도 없고 표기할 수도 없습니다. 영어의 th발음을 한국어로 표기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thisthat을 그냥 디스이라고 표기합니다.

 

그와 비슷하게 요즘 최승희의 이름은 영어에서는 초이 승히(Choi Seung-hee)’라고 표기하고, 일본어에서는 체숭히(チェ·スンヒ)’라고 표기합니다. 그런데 <재팬 애드버타이저>의 기자는 치싱히(Chi Shing Hii)라고 표기했습니다. 이름의 마지막 한자 ()’를 영어식의 (Hee)'가 아니라 이시이(Ishii)의 예를 따라 (Hii)‘라고 표기한 것이 눈에 띕니다. 이 기자가 영미인이 아니라 일본인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이 기자는 이시이 바쿠는 바쿠 이시이라고 영어식(이름+)으로 표기했으면서도 최승희는 일본식(+이름)으로 썼습니다. 아마도 치싱히라는 이름에서 어떤 글자가 ()‘이고 어떤 것이 이름()‘인지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최승희가 데뷔한 1934년에는 그의 이름을 표기한 전례나 표준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더구나 이 기사는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최승희를 남성으로 오인해 미스터(Mr.) 치싱히라고 불렀습니다. 아마도 이 기자는 공연을 관람하지 않고 기사를 썼음에 틀림없습니다. 공연을 보았다면 최승희를 미스터라고 호칭하는 실수는 저지르지 않았을 테니까요.

 

 

이 기사에 곁들여진 사진 속의 승무(僧舞)’ 연희자는 최승희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 설명에도 참가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만 되어 있고 그 무용수가 최승희라는 말은 없습니다.

 

최승희는 920일 도쿄제1회 발표회에서 승무를 발표한 바 있는데, 그의 승무는 현대무용으로 재창작된 것으로, 사진 속의 전통적 의상의 승무와는 완전히 다른 작품이었습니다. 사진 속의 무용가가 최승희가 아니었다면, 그가 누구였는지 궁금하군요. (jc, 2023/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