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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호쿠2023취재

[도호쿠2023취재] 56. 요코하마 (2) 애린원의 탁아소

최승희의 요코하마 공연은 도쿄에서 발행되던 영자지 <재팬 애드버타이저>의 기사로 발굴되었고, 요코하마에서 발행되었던 다른 두 자료에 의해 확인되었습니다. 하나는 요코하마의 지역신문 <요코하마무역신보(横浜貿易新報)>라는 일간 신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요코하마그라프(横浜グラフ)라는 격주간 사진잡지였습니다.

 

1934929일의 <요코하마무역신보>조선음악무용이라는 제목과 “30일밤 기념회관에서라는 부제로 최승희가 참여한 공연을 보도했습니다.

 

<재팬 애드버타이저>의 보도대로 이 공연은 요코하마 중구 나카무라초(中村町)에 위치한 조선인을 위한 시설 애린원(愛隣園)이 주최한 행사라고 합니다. 애린원이 고아원이나 탁아소일 수도 있지만, 아마도 조선인 이주민들의 편의를 위한 사회사업 시설이었을 것입니다.

 

 

애린원은 조선인 소셜워커이자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송치리(Song Chi Rii)씨가 운영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이번에 조선음악무용회를 개최한 것은 요코하마의 해변지역인 수기다(衫田)에 탁아소를 신설하기 위한 자금을 모금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수기다 해변에 조선인 탁아소가 필요한 것은 이 해변에서 물질을 해서 생활하는 조선인 젊은 부인들을 위해 작업시간인 낮 시간에 어린 자녀들을 맡길 곳이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한편 1934929일의 <요코하마그라프>에도 최승희의 사진과 짤막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 기사에는 애린원의 스기다 탁아소 개설 계획을 조금 더 자세히 보도했습니다.

 

요코하마의 조선동포 유지들에 의해 조직되고 있는 애린원에서는 스기타 방면의 해태(海苔)채취 부인들을 위하여 해안에 탁아소 건설을 계획하고, 그 자금모집을 위해 30일 밤 개항기념회관에서 조선음악과 무용의 밤을 개최한다.”

 

이 기사는 요코하마 스기다 해안에서 일하는 조선 해녀들이 해태, 즉 김을 채취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는 점을 알려줍니다. 지금은 스기다 해안에도 부두가 들어서고 해변은 공원으로 바뀌어 있습니다만, 1930년대에는 조선 해녀들의 작업장이었던 것이지요.

 

 

<요코하마그라프>는 조선의 예술에 대해서도 간략히 서술한 뒤, 조선인 무용예술가 최승희에 대해서도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었습니다.

 

“(조선 음악과 무용은) 오랜 역사와 깊은 전통에 뿌리를 둔 특이성을 가진 예술로, 관중을 천상의 경지로 이끌어 가게 될 것인데, 특히 이시이 바쿠 문하의 준재 최승희양이 조선 고곡을 바탕을 두어 새롭게 창작한 무용 묘기는 만장의 관객들에게 절찬을 자아내게 될 것이다.”

 

 

이 공연이 열린 요코하마개항기념회관은 개항 50주년을 기념하여 191871일 개관된 요코하마 최대의 공연장이었습니다. 일제가 패전한 이후 일본을 점령한 미군에 접수되어 <메모리얼 홀>이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으나, 개항 100주년을 맞은 1958년에 민간에 반환된 후, 19596월에 중구의 공회당의 역할을 하면서 이름도 오늘날의 <요코하마시 개항기념회관>으로 되돌려졌습니다. 이때 신축된 시계탑 <잭의 탑>이 널리 알려진 상징물이지요.

 

1934년 당시 개항기념회관의 공연시설인 강당은 수용인원이 481명으로 도쿄의 유수 극장에 비하면 소규모이지만, 요코하마에서는 가장 크고 호화로운 무대였습니다. 당시 요코하마에 거주하던 조선인들은 대부분 가난했고 고된 노동으로 생활해야 했지만, 이날만은 요코하마 최고급 극장에서 상연되는 조선음악과 무용을 관람하러 모였을 것입니다.

 

 

이날의 입장료는 2엔과 1엔으로 도쿄에서의 입장료보다 비쌌는데, 이는 애린원의 스기다 탁아소 신설에 필요한 돈이었으므로 조선동포들은 기꺼이 지불하고 입장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요코하마그라프>의 기사는 인터넷에도 공개되었는데, 이 웹사이트는 최승희가 이차대전 전의 일본의 인기 무용가이며, 조선과 중국에서도 활약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광고에도 등장했던 인물이라고 추가 해설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jc, 2023/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