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하는 동안 그날 밤 어디에서 숙박할 것인를 정하게 되곤 합니다. 처음 이틀의 모리오카 숙박과 고베 논문 발표를 위한 오사카 숙박은 출발 전부터 미리 정할 수 있었지만, 나머지의 숙박 일정은 모두 그날 그날 조사 결과에 따라 정해지거나 변경되곤 했습니다.
도쿄 국회도서관 조사 때도 그랬습니다. 영자지 <재팬 애드버타이저> 조사에서 최승희 선생의 요코하마(横浜) 공연이 확인되자, 저는 도서관에서 바로 요코하마에 숙소를 예약했고, 김재호 선생과의 맛있고 뜻 깊은 저녁식사가 끝나자 바로 요코하마로 갔습니다.
요코하마는 도쿄도 남쪽의 카나가와(神奈川) 현의 최대도시이자 현청소재지인 항구도시입니다. 도쿄에서는 도카이도(東海道) 본선이나 요코스카(橫須賀)선 등의 JR의 일반열차를 타도 3-40분이면 도착하지만, 신칸센을 타면 시나가와(品川) 역에 이어 15분 만에 바로 신요코하마 역에 내릴 수 있습니다.
신기한 것은 요코하마라는 도시의 이름을 들으면 <블루라잇 요코하마(1968)>라는 노래가 떠오릅니다. 바로 “마치노 아카리가 도테모 키레이네”하는 노래 소리가 들립니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 집에 놀러 가면 그 아버지가 들으시는 전축에서 한동안 흘러나오곤 했던 노래였고, 가수의 노래가 “와타시니 쿠다사이 아나타카라” 하는 데서 절정에 달하는 간드러진 목소리를 몽롱하게 따라듣곤 했었습니다.
제 아들한테 요코하마라는 이름을 들으면 뭐가 떠오르느냐고 물었더니 슬램 덩크? 하더군요. 어렸을 때 어떤 문화를 접하는가에 따라 특정 지역이나 인물에 대한 인상과 느낌이 고착화되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그래서 요코하마에 대한 제 첫인상은 목포 같은 항구도시나 포항 같은 산업도시가 아니라 사랑이 무르익는 애정도시였는데, “야사시이 쿠치즈케 모우이치도(부드러운 입맞춤 다시 한 번)”라는 가사 때문인지 유교의 ‘부자유친’이나 기독교의 ‘오래참고’가 아니라 프로이트의 구순기에 가까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선입견은 요코하마를 방문한 뒤에 깨졌지만, 지금도 요코하마라는 이름을 들으면 “아루이테모 아루이테모 코부네노요우니~” 하는 이시다 아유미 목소리가 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요코하마 시민들도 개항 150주년을 맞았던 2009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 노래를 요코하마를 대표하는 노래로 선택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날 요코하마에 대한 제 인상이 다시 한 번 바뀌었습니다. 이 도시에서 최승희 선생이 공연을 가졌다는 조사 결과 때문입니다. 공연 날짜가 1934년 9월29일이니까, 일주일 전 도쿄의 일본청년관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첫 번째 발표회를 가진 후, 바로 출연했던 공연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첫 번째 원정공연이었던 셈인데, 이시다 아유미의 <블루라이트 요코하마> 보다 한 세대 전에 일었던 최승희 현상이 도쿄 밖으로 퍼져나갔던 첫 도시이기도 합니다.
이 공연을 더 자세히 조사하기 위해 요코하마의 카나가와 현립도서관을 찾았습니다. 숙소를 신요코하마에 잡았기 때문에 도서관에 가는 길이 조금 번거로웠습니다. 신요코하마와 요코하마는 전철로 약 30분가량 떨어져 있었고, 요코하마역에서도 두 정거장을 더 가서 사쿠라기초(桜木町)에서 내려 산위로 10여분을 걸어올라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일단 도서관에 도착하자 느낌은 좋았습니다. 일본에서 가장 먼저 개항했던 도시의 도서관치고는 건물이 매우 현대적이었는데, 고색창연한 오사카 부립도서관과는 대조적이었습니다. 이 도서관이 설치된 것이 1954년이라고 되어 있는데, 건물 자체는 훗날 재건축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도서관은 전국지였던 아사히신문과 니치니치신문(=후에 마이니치신문)은 키워드 검색이 가능한 데이터베이스를 제공하고 있었는데, 정작 이 지역신문들은 마이크로필름의 형태로 소장되어 있더군요. 제 조사를 위해서는 실로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jc, 2023/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