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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2023강연] 2. 매장인허증 모든 일은 매장인허증 한 장에서 시작됐습니다. 1914년 8월3일 일본 효고현 다카라즈카의 니시타니 촌사무소가 발행한 김병순씨의 매장인허증입니다. 이 매장인허증은 1985년 1월 다카라즈카 지역사가 정홍영(鄭鴻永, 1929-2000) 선생에 의해 발굴됐습니다. 김병순씨가 사망한지 71년만입니다. 그의 저서 에서 정홍영 선생은 이렇게 썼습니다. “내가 고베수도 건설공사에 참가한 조선인을 처음 알게 되고 조사까지 하게 된 것은 다카라즈카시 역사편찬실에 보존되어 있던 오래된 매장인허증 때문이었다. 1985년 초부터 봄 무렵에 걸쳐서 나는 당시 사카세카와(逆瀬川)에 있는 다카라즈카시 중앙공민관 2층의 방 4개를 차지한 시사(市史)편찬실에 여러 번 간 적이 있다. ... 각 촌의 자료 속에 조선인에 대한 기록이 ..
[江陵2023講演] 1. 江陵と宝塚 江陵と宝塚が初めて出会ったのは1914年です。今から1百10年前、江陵出身の金炳順(キム・ビョンスン)さんが宝塚玉瀬村から神戸市水道工事に参加した時です。 1914年ですから、日本統治初期のことです。 それ以前にも、江陵の方々が仕事や生活の機会を求めて日本に移住した可能性があり、そのうちの何人かが兵庫県の宝塚に定住した可能性もあります。 しかし、これまでに発見された記録としては、江陵の金炳順さんが初めてです。 金炳順さんが宝塚で働いていたことが知られるようになったのは、不幸な事故によるものです。 彼は1914年3月、神戸水道工事中にトンネル落盤事故で死亡しました。金炳順さんの遺体は宝塚市の玉瀬村に埋葬され、村人たちは毎年8月に金炳順さんのための慰霊祭を行いました。 しかし、玉瀬の外の世界にはその事実は全く知られていませんでした。 金炳順さんの犠牲は、宝塚の地域史家の鄭鴻永(チョン・ホン..
[강릉2023강연] 1. 강릉과 다카라즈카 강릉과 다카라즈카가 처음 만난 것은 1914년입니다. 지금부터 1백10년 전이지요. 강릉 출신의 김병순(金炳順)씨가 다카라즈카 타마세 마을에서 고베시 수도공사에 참가했을 때였습니다. 1914년이니까 일제 강점 초기의 일입니다. 그 전에도 강릉 분들이 일자리와 삶의 기회를 찾아 일본으로 이주했을 가능성이 있고, 그중의 몇 분이 효고현의 다카라즈카에 정착하셨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발견된 기록으로는 강릉의 김병순씨가 처음입니다. 김병순씨가 다카라즈카에서 일하셨다는 것이 알려진 것은 불행한 사고 때문입니다. 그는 1914년 3월 고베수도공사 중에 터널 낙반사고로 사망했습니다. 김병순씨의 시신은 다카라즈카 시의 타마세 마을에 매장되었고 마을 주민들은 매년 8월 김병순씨를 위한 위령 제사를 지냈습니..
[연해주3차캠페인] 6. 크라우드 펀딩 연해주 3차 캠페인에서는 크라우드 펀딩을 시도합니다. 은 sns를 기반으로 모금해왔고 성과가 있었습니다. 7차의 무용신 캠페인, 3차의 연해주 캠페인, 그리고 한 차례의 강릉인권영화제 캠페인이 성공했고, 약속드린 소정의 후원금을 기간 내에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sns 모금, 특히 단톡방 중심의 캠페인은 이미 후원의 마음을 가진 분들을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 저만 해도 과 , 와 , 와 등 주로 제가 속한 단톡방에서 모금 참여를 부탁드리곤 했습니다. 그러나 단톡방 모금은 취지를 넓게 확산하는 데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캠페인을 주도하시는 이고은 선생은 크라우드 펀딩을 병행하기로 결정하셨고, 준비를 갖추고 계십니다. 으로서는 처음 시도하는 크라우드 펀딩이기 때문에 많은 면에서 불확실하고, ..
[연해주3차캠페인] 5. 김발레리아 교장 연해주 우수리스크의 는 2019년 김발레리아 선생이 설립하셨고, 지금도 학교를 이끌고 계십니다. 김발레리아 선생 자신이 연해주 고려인의 전형입니다. 김발레리아 선생은 우즈벡스탄에서 고려인 3세로 출생하셨는데, 이는 조부께서 1937년의 고려인 강제 이송으로 그곳에 정착하시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1982년 우즈벡스탄 국립문화예술대학을 마치시고 약 10년간 활동하시다가, 1990년 연해주 우수리스크로 이주하셨습니다. 소련이 해체되고 우즈벡스탄이 독립하자 바로 할아버지의 고향으로 돌아오신 것이지요. 이때 김발레리아 선생은 아버님의 교훈에 따라 고려인 민족운동에 헌신하기로 하셨다고 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발레리아 선생은 다른 고려인 3세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어를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첫 번째로 시작한 일..
[연해주3차캠페인] 4. 최재형 선생 미스터리 연해주 민족학교 후원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우수리스크를 공부하다 보니 최재형 선생이 자동적으로 연결됩니다. 코르시카 하면 나폴레옹이, 고창 하면 전봉준이 연상되듯이 말이죠. 그러나 코르시카의 나폴레옹이나 고창의 정봉준과는 달리 우수리스크의 최재형은 아직 미스터리입니다. 1860년에 태어나 1920년에 돌아가신 최재형 선생을 만나본 적이 없는 것은 당연하지만, 문헌에 나타난 그의 행적은 놀랍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제 관심을 가장 먼저 사로잡은 것은 최재형 선생이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초청받았다는 점입니다. 1896년 5월14일에 열린 이 대관식에는 영국과 프랑스, 미국과 스페인과 터키를 포함해 40여개국의 사절들이 각국 수반을 대신하거나 직접 참석했습니다. 이 대관식에는 대..
[연해주3차캠페인] 3. 연해주와 우수리스크 ‘연해주’의 러시아 이름은 ‘프리모르스키 크라이(Примо́рский край)’입니다. 직역하면 ‘바닷가 끝’이라는 뜻이니까, 한자어로 ‘연해주(沿海州)’로 번역한 것이 틀린 말은 아니죠. 다만 러시아인과 소통할 때는 ‘프리모르스키 크라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1860년까지는 만주보다 더 바깥쪽이라고 해서 외만주(外滿洲)라고 불렸고, 당시에는 중국의 영토였습니다. 중국이 2차 아편전쟁(1856-1860)을 겪는 혼란 통에 러시아는 청나라에 아이훈 조약(1858)을 강요, 스타노보이 산맥과 아무르강(=헤이룽강) 사이의 영토를 빼앗았습니다. 이 조약으로 중국은 외만주에서 유일하게 농사지을 수 있는 경작지 약 60만Km2나 러시아에 이양했습니다. 한반도 면적의 약 3배입니다. 억울한 중국이 아이훈조약을 뒤집..
[연해주3차캠페인] 2. 연해주의 고려인 민족학교 2019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 고려인 민족학교가 설립됐습니다. 이듬해(2020년) 로 개명한 것은 일제강점기 연해주의 고려인 지도자 최재형 선생을 기리고, 그분의 철학과 민족애를 교육이념으로 삼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고려인 민족학교가 정식으로 설립된 것은 2019년이지만, 우수리스크에 한글교육이 시작된 것은 그보다 거의 20년 전인 2000년이었습니다. 당시 연해주의 편집장 김발레리아 선생을 비롯한 우스리스크의 고려인 유지들이 한글학교를 설립했습니다. 김발레리아 선생은 이 한글학교의 교사로 재직해 오던 중, 2019년 정식으로 고려인 민족학교를 설립한 것이었지요. 1863년 함경도의 동포들이 러시아 영토내로 처음 이주해 지신허(地新墟) 마을을 세웠을 때도 마을 한 가운데에 이라는 학교를 세웠습니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