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490) 썸네일형 리스트형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10. 정홍영, 김예곤, 그리고 곤도 도미오 선생 [이글의 일본어 번역문은 https://jc-saishoki.tistory.com/21에 있습니다.] 곤도 도미오 선생은 에 기고한 에서 1983년 가을부터 자신은 정홍영 선생의 금붕어 똥이 되었다고 했다. 두 사람은 다카라즈카와 효고, 더 나아가 일본 전역의 재일조선인 관계 조사연구 활동의 단짝이 된 것이다. 정홍영 선생은 생전에, 후쿠치야마선 부설공사에서 사망한 일본인 노동자들의 추모비가 세워져 있지만, 같은 철도의 개수공사에서 사망한 조선인 노동자들의 추모비가 없다는 것을 자주 개탄했다. 곤도 선생이 건립에 열과 성을 쏟은 것은 그같은 정홍영 선생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한편, 곤도 선생은 김예곤 선생과도 가깝게 활동했다. 2013년 에 가입하면서 김예곤 선생과 함께 일했고, 2017년..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9. 재일2세 김례곤 선생의 기억 [이글의 일본어 번역문은 https://jc-saishoki.tistory.com/20에 있습니다.] 에 의 글을 쓴 사람은 김예곤 선생이다. 글쓴이의 이름은 보통 비석의 뒷면이나 옆면에 새기는 법인데, 에는 그 바로 옆에 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본인의 이의제기가 있었다는 데도 그렇게 한 것은 무언가 특별한 의미가 담긴 것처럼 느껴진다. 에 실린 김예곤 선생 인터뷰를 읽으면서 나는 그같은 추도비의 특별한 의미가 그가 어머님과 큰 형님에 대해 가졌던 연민과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어머니는 18세의 첫아들과 42세의 둘째 아들을 일본 땅에서 잃었고 그때마다 큰 충격을 받으셨다고 했다. 특히 김예곤 선생은 어린 시절 자신의 큰 형님 김지곤씨를 장티푸스로 잃고 어머님이 무코강가에서 그 영혼을 달래던 ..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8. <월조남지>의 조선인 추도비 [이글의 일본어 번역문은 https://jc-saishoki.tistory.com/19에 있습니다.] 의 주인공들에 대한 조사의 출발점은 당연히 추도비이다. 리서치의 목표가 그 주인공들의 한반도내 연고지와 친인척을 찾는 일이기 때문에 그들의 이름을 확인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정세화 선생께서 보내주신 새로운 추도비 사진에는 고베 수도공사와 후쿠치야마선 철도공사에서 사망한 5명의 조선인 노동자들의 이름이 또렷이 보였다. 추도비 전면 하단에 새겨진 그들의 이름은 철도공사에서 사망한 윤길문(尹吉文, 21), 오이근(吳伊根, 25)씨, 수도공사에서 사망한 김병순(金炳順, 30), 남익삼(南益三, 37), 장장수(張長守, 27)씨이다. 다섯 사람의 이름 위에는 라는 한자가 큰 글씨의 세로쓰기로 새겨져 있다. “월나..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7. 거인의 어깨 위의 난장이 [이글의 일본어 번역문은 https://jc-saishoki.tistory.com/18 에 있습니다.] 아이자크 뉴턴(Isaac Newton)의 인용구 중에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간 난쟁이’라는 비유가 있다. 개개인 연구자들의 능력은 제한되지만, 선배 연구자들의 업적을 배움으로써 거인의 어깨 위에 오르게 되며, 거기서 더 넓은 시야와 더 정확한 방향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의 주인공들을 찾아 나서면서 가졌던 내 느낌이 바로 뉴턴의 난장이였다. 미지의 세계에 조사의 첫 발을 디디면서도 나는 이 분야의 사전 지식도 전혀 없었고 관련 연구방법론을 터득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뉴턴은 내게 거인의 어깨 위로 올라가라고 권하고 있었다. 선배 연구자들의 업적을 찾아 익히라는 말이다. 한편, 패트릭 ..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6. 제가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이글의 일본어 번역문은 https://jc-saishoki.tistory.com/17에 있습니다.] 결국 나는 의 주인공들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존경하는 곤도 도미오 선생과 형님처럼 친근한 정세화 선생의 권유가 계기였다. 하지만 엄두가 잘 나지 않았다. 1백년의 역사 속에 묻히신 분들의 흔적을 어떻게 찾아낼 지 요량이 서지 않았다. 문득, 왜 내게 그런 부탁을 하신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최승희 선생의 공연 기록을 찾아내는 것을 보시고 새로운 가능성을 보셨던 것일까? 2018년 여름부터 나는 40개 이상의 일본 도시를 방문하면서 최승희 선생의 공연 기록을 발굴했다. 대개 단신이거나 홍보기사에 불과한 것도 많았지만 새로운 사실을 드러내 주는 중요한 기록들도 꽤 발견되었다. 나는 그런 자료를..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5. 무연고 희생자들 [이글의 일본어 번역문은 https://jc-saishoki.tistory.com/16에 있습니다.] 정세화 선생한테서 말씀만 전해 들어오던 곤도 도미오 선생과 처음 인사를 나눈 것은 2020년 9월이었다. 라인(LINE)을 통해서 첫인사를 드렸다. 그 뒤로도 지금까지 곤도 선생을 직접 만나뵌 적이 없다. 코로나19 방역이 엄격해진데다 갑자기 발생한 한일 교역마찰의 여파로 한국인의 일본 여행이 자유롭지 못하게 된 까닭이다.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곤도 선생이 재일 조선인의 역사를 연구해 오신 것도 존경할 만한 일이지만, 내게는 그가 신의를 갖춘 인물로 특별히 각인되었다. 그가 스승처럼 따르던 정홍영 선생의 유지를 잊지 않으시고 뜻밖의 연락을 주신 만후쿠지 주지스님의 당부도 받아들여 오랜 준비 끝에 5인의..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4-3. 니시노미야 고요엔 지하호 [이글의 일본어 번역문은 https://jc-saishoki.tistory.com/10에 있습니다.] 정홍영 선생은 1987년 11월, 고베시 니시노미아(西宮) 고요엔(甲陽園)의 地下壕에서 조선인 노동자가 쓴 벽서를 발견했다. 이 깊숙한 지하 땅굴 속 암벽에서 ‘조선국 독립’과 ‘초록의 봄(綠の春)’이라고 쓴 문자를 발견한 것이다. 일본 전역에 산재한 지하호에서 그것을 건설한 조선인 노동자들의 벽서가 발견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마츠시로의 대본영 지하 땅굴 속에서 ‘밀양’과 ‘대구’, ‘세배’와 ‘구운몽’이라는 조선인 노동자의 벽서가 발견된 것도 그로부터 3년여가 지난 후였다. 마츠시로 지하호의 벽서는 그 뜻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이 있다는 점을 지적해 두어야 할 것같다. ‘밀양’과 ‘대구’ 등은 그..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4-2. 마츠시로 대본영 [이글의 일본어 번역문은 https://jc-saishoki.tistory.com/9에 있습니다.] 곤도 도미오 선생의 기고문에는 그가 정홍영 선생과 함께 답사했던 사적지가 나열돼 있었다. 두 사람의 협력과 공동연구의 성격을 짐작해 보기 위해 그 사적지들을 조사해 보았다. 특히 마츠시로(松代) 대본영과 고요엔(甲陽園)의 지하호가 내 주목을 끌었다. 마츠시로 대본영은 나가노현 산간지역에 설치된 대규모 지하 벙커이다. 패색이 짙어진 일제 군부가 본토결전을 위해 일왕가족과 군 지휘부(죠잔象山), 정부 기관과 NHK 방송국(마이즈루산舞鶴山), 그리고 이들을 먹일 식량 창고(미나가미산皆神山)를 수용하려고 만든 땅굴이었다. 1944년 11월11일부터 산간 암반지역의 지하를 파들어 간 이 지하호는 폭 4미터, 높이 .. 이전 1 ··· 11 12 13 14 15 16 17 ··· 6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