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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19-0. 경남 고성의 첫 답사 2020년 11월30일 월요일, 나는 의 주인공을 찾는 첫 답사에 나섰다. 목적지는 경남 고성이었다. 일본 효고현의 일간지 과 의 1929년 3월28일의 보도에 따르면, 후쿠치야마선 개수공사에 참여했다가 다이너마이트 폭발사고로 사망한 윤길문, 오이근씨의 고향이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면”이었기 때문이다. 일요일인 29일 밤11시에 서울을 출발한 고속버스는 30일 새벽 4시쯤 통영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고성으로 가는 고속버스가 없었으므로 통영이나 진주에서 갈아타야 했다. 진주에서 환승하면 거리가 조금 더 가까웠지만, 버스 시간표가 좋았기 때문에 통영 환승을 선택했다. 유럽 취재를 통해 터득한 한 가지 요령은, 야간에 이동하면 주간 취재시간이 넉넉해진다는 것이었다. 취재는 대부분 도서관이나 기록보관소를 방문하..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18-3. 남익삼씨 매장인허증의 본적 주소 [이 취재기의 일본어 번역문은 https://jc-saishoki.tistory.com/37에 있습니다.] 3장의 매장인허증에서 조선 연고지를 찾는 일이 가장 어려웠던 것이 남익삼씨의 경우였다. 김병순씨의 본적주소는 분명해서 약간의 조사를 통해 오늘날의 위치를 금방 확인할 수 있었고, 장장수씨의 매장인허증에는 조선 주소가 기재되지 않았으므로 곧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남익삼씨의 매장인허증에는 조선의 주소가 기록되어 있지만 그것이 오늘날의 어느 곳인지를 찾아낼 수가 없었다. 우선 그의 매장인허증을 번역해 보자. 「인허증、제1호、 (본적) 조선 충청도 춘원우 연북면 선삼촌 (주소) [전부 지워져 있음] (성명) 남익삼, (생년월일) 미상, (나이) 37세 위 사람의 매장을 허가함, 단 1915년 1월23일..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18-2. 장장수씨 매장인허증의 일본 주소 [이 취재기의 일본어 번역문은 https://jc-saishoki.tistory.com/36에 있습니다.] 김병순씨의 매장인허증에는 자세한 조선 주소와 대략적인 일본 주소가 둘 다 기재되어 있었지만, 장장수씨의 인허증에는 아래에 번역된 내용과 같이 일본 주소는 자세히 기입되어 있는 반면, 조선 주소는 아예 기재되지 않았다. "인허증、제5호、 (본적주소) 없음 (주소) 카와베군 니시타니촌 내의 타마세촌 이즈리하 1번지의 45 (성명) 장장수、(생년월일) 없음, (나이) 37세 위사람의 매장을 허가한다. 다만 1915년 3월24일 오후2시 후에 이행할 것. 1915년 3월24일、카와베군 니시타니 촌장 다츠미 류이치 (도장)” 정홍영 선생이 이 인허증에서 주목한 것은 타마세의 주소 “이즈리하 1번지의 45”였..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18-1. 김병순씨 매장인허증의 본적 주소 [이 취재기의 일본어 번역문은 https://jc-saishoki.tistory.com/34에 있습니다.] 정홍영 선생의 에는 1914년 고베수도공사 중에 사망한 김병순(金炳順), 남익삼(南益三), 장장수(張長守)씨의 매장인허증 사본이 사진으로 수록돼 있다. 하지만 3장의 매장인허증이 겹쳐져 있기 때문에 각 사람의 기록을 볼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이같은 사정을 알게 된 곤도 도미오 선생은 자신이 보관 중인 매장인허증 사본을 사진 찍어 보내주셨다. 훨씬 선명해진 매장인허증 사본을 꼼꼼이 살피면서 3인의 연고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우선 일본어로 된 김병순씨의 매장인허증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인허증, 제4호, 본적지, 조선 강원도 강릉군 북일리(北一里) 대천동(大天洞) (주소) 가와베군(川邊郡) 니..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18-0. 니시타니 촌장이 발행한 매장인허증 [이 취재기의 일본어 번역문은 https://jc-saishoki.tistory.com/35에 있습니다.] 정홍영 선생이 발굴한 또 하나의 중요한 기초자료가 매장인허증이다. 의 제1부 제1장 에 따르면 정홍영 선생이 이 3장의 매장인허증을 입수한 것은 1985년 봄이었다고 한다. “내가 고베수도 건설공사에 참가한 조선인을 처음 알게 되고 조사까지 하게 된 것은 다카라즈카 시 역사편찬실에 보존되어 있던 오래된 매장 인허증 때문이었다. 1985년 초부터 봄 무렵에 걸쳐서 나는 당시 사카세카와(逆瀬川)에 있는 다카라즈카시 중앙공민관 2층의 방 4개를 차지한 시사(市史)편찬실에 여러 번 간 적이 있다. “몇 번이나 다니는 동안에 거기서 시사(市史) 편집담당 주사로 근무하는 와카바야시 야스시(若林泰)씨와 친분이 ..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17-4. 정홍영 선생의 추가 탐문 조사 [이 취재기의 일본어 번역문은 https://jc-saishoki.tistory.com/33에 있습니다.] 지금까지 후쿠치야마선 철도개수공사 사고를 보도한 1929년 3월28일자 4개 신문의 기사를 꼼꼼히 살피면서 사고 당시의 상황과 피해자들의 인적사항과 한국 내 연고지를 정리해 보았다. 그런데 정홍영 선생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1980년대까지 생존해 계신 지역 어르신들에 대한 탐문 조사를 통해 다음과 같은 사항을 추가로 밝혀놓았다. (1) “그 지역(=나마제)의 몇 원로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로부터 사고로 숨진 조선인들의 사연이 차차 드러났다. 고된 노동이 계속되던 어느 날이었다. 공사장 근처에서 젖은 화약을 모닥불에 말리던 중 갑자기 폭발해 조선인 3명이 즉사했다. 무참한 모습이 되어버린 시신을, 함..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17-3. 다이너마이트 폭발사고 <아사히신문> 보도 [이 취재기의 일본어 번역문은 https://jc-saishoki.tistory.com/32에 있습니다.] 다음은 도쿄의 기록학 전문가 크누기 에나(功刀惠那) 선생이 아사히신문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서 찾아주신 도쿄판과 오사카판의 기사이다. 두 기사는 대동소이하며, 실수나 오자까지 동일한 것으로 보아 한 기사가 다른 기사를 거의 전재한 것으로 보인다. “(제목과 소제목) 다이너마이트 폭발/ 4명 사상/ 다카라즈카 오지의 터널 공사에서/ 모닥불로 말리는 동안 “(기사본문) 26일 오전 8시 반 경에 효고현 다카라즈카의 변방 나가오산 중의 후쿠치야마선 6호터널의 터널 굴착 공사에 사용하는 다이너마이트 10개가 빙결되어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조선인 토공 3명이 철망 위에 올려놓고 모닥불에 말리던 중 실수로..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17-2. 다이너마이트 폭발 사고 <고베유신일보> 기사 [이 취재기의 일본어 번역문은 https://jc-saishoki.tistory.com/31에 있습니다.] 다음은 정세화 선생이 고베중앙도서관에서 찾아내신 1929년 3월28일자 의 기사 전문이다. 이 기사도 역시 정홍영 선생의 저서 자료편에 스크랩되어 있었다. 그리고 제1부 2장의 내용으로 미루어 이 기사는 의 기사와 함께 가장 많이 참조된 기초자료인 것으로 보인다. (제목과 소제목)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해/ 네 명이 즉석에서 사상/ 뇌관을 모닥불로 건조시키려다/ 나가오산 터널 입구에서 발생한 사고 (기사 본문) “26일 오전 8시경 가와베군 니시타니촌 키리하타 나가오산 제6호 터널 입구(간자키 기점 15마일 동쪽)에서 전선 후쿠치산선 개수공사에 종사 중이던 조선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면 출신의 조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