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도쿄1934공연

(65)
[도쿄1934공연] 22. 공연2부(10) <마을의 풍작> 최승희의 도쿄 데뷔공연 2부의 4번째이자 전체에서 10번째 작품은 마을의 풍작(村の豊作)>이었다. 프로그램에는 마을의 풍작>이 다음과 같이 소개되었다. 10. 마을의 풍작(村の豊作), 반주음악은 조선의 옛곡, 편곡자는 시노하라 마사오(篠原正雄, 1894-1981), 출연자는 이시이 시즈코(石井靜子), 시바노 히사코(柴野久子), 김민자(金敏子), 카이 후지코(甲斐富士子), 카네코 카호루(金子かほる)의 5인. 풍요로운 가을을 환영하면서 춤추는 조선 남부지방 농민들의 인상, 소박하고 소탈하고 익살스러운 맛이 가득한 작품. 5인의 무용수가 익살스런 동작으로 빠르게 실연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마을의 풍작>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것 같다. 최승희의 도쿄 데뷔공연 직후, 신문과 잡지에 보도된 각종 평론과 비평 중..
【東京1934公演】 21.公演2部(9) <エヘヤ·ノアラ> 崔承喜の東京デビュー公演2部の4番目は「エヘヤノアラ」だ。 プログラムにはこの作品が次のように紹介された。 9. エヘヤノアラ, 朝鮮古典 篠原正雄編曲, 崔承喜 タイトルと伴奏音楽の編曲者、出演者だけを提示するだけで、解説がない。 解説を省略したのは、第1部の「希望を抱いて」に続いて2番目である。 3部でも石井漠が実演した『ポエム』に解説がない。 3作品の共通点は、石井舞踊団の公演ですでに何度も上演されていることだ。 観客に馴染みのある作品には解説を付けなかったのだ。  『エヘヤ·ノアラ』が日本で初演されたのは1933年5月20日、雑誌社「令女界」の主催で日本青年館で開かれた「近代女流舞踊大会」だった。 この大会には石井舞踊団代表として石井みどりが参加することになったが、みどりが大会を控えて急性肋膜炎を患ったため、石井漠は彼女の代打で崔承喜が大会に参加するようにした。 崔承喜は創作作..
[도쿄1934공연] 21. 공연2부(9) <에헤야 노아라> 최승희의 도쿄 데뷔공연 2부의 4번째 연목은 에헤야 노아라>이다. 프로그램에는 이 작품이 다음과 같이 소개되었다. 9. 에헤야 노아라(エヘヤ·ノアラ), 조선의 옛곡을 시노하라 마사오(篠原正雄)가 편곡, 최승희 제목과 반주음악 편곡자, 출연자만 제시할 뿐 해설이 없다. 해설을 생략한 것은 1부의 희망을 안고서>에 이어 두 번째이다. 3부에서도 이시이 바쿠가 실연한 포엠>에 해설이 없다. 세 작품은 공통점은 이시이무용단의 공연에서 이미 여러 차례 상연되었다는 것이다. 관객들에게 익숙한 작품에는 해설을 붙이지 않은 것이다.  에헤야 노아라>가 일본에서 초연된 것은 1933년 5월20일 잡지사 레이조카이(令女界)>의 주최로 일본청년관에서 열린 근대여류무용대회>였다. 이 대회에는 이시이무용단 대표로 이시이 미도리..
[도쿄1934공연] 20. 공연2부(8) <영산무> 최승희 도쿄 데뷔공연의 2부 두 번째 작품은 영산무(靈山の舞)>이다. 2부는 5작품이 모두 조선무용이었다. 그중 첫 번째로 발표한 영산무>에 대한 프로그램의 서술은 다음과 같다. 8. 영산무(靈山の舞), 조선고전, 카이 후지코(甲斐富士子), 김민자(金敏子), 카도 에미코(加土惠美子), 세속의 먼지와는 멀리 떨어진 환상의 영산에서 함께 춤추는 아름다운 사람들. 조선고전의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은 것.  3인무 영산무>의 반주음악이 조선고전이라고 명시됐는데, 이는 영산회상(靈山會相)>이었다. 영산회상>은 조선 초기부터 널리 연주되던 불교음악이다. 제목을 해석하면 “신령한 산에서 모인 모습”이라는 뜻이겠는데, ‘신령한 산’이란 불교의 영취산(靈鷲山)을 가리킨다. 불경 대범천왕문불결의경(大梵天王問佛決疑經)>에 따..
【東京1934公演】 19. 公演2部(7) <剣の舞> 崔承喜の東京デビュー公演2部の最初の演目は「劍の舞」だが、この公演で初演された作品だ。 プログラムには『剣の舞』が次のように解説された。 7. 剣舞(劍の舞)、打楽器伴奏、崔承喜在來の劍舞は新羅屍臺、美將「黃昌」の英雄的行爲を稱へて作られた勇壯な舞踊でありますが、後生妓生等に踊られるやうになつてから頗る優長纖弱な振と變つてしまひましたが、私はこれを本來の劍舞の意義に取戻さうと試みたものであります(承喜)  『劍の舞』に対するこのような説明は、その後も続く。 例えば、5年後の1939年1月31日、パリのサルプレイエル劇場公演のプログラムにも剣の舞>が次のように紹介された。 「剣の舞、(打楽器伴奏)。 伝来の騎士精神は少しずつ衰えた。 妓生の踊りがこれを表現したが、本来の姿を見せることはできなかった。 崔承喜の踊りが活気を吹き込み、その精神を蘇らせた。 (Danse de l'Epée....
[도쿄1934공연] 19. 공연2부(7) <검무> 최승희 도쿄 데뷔공연 2부의 첫 번째 연목은 검무(劍の舞)>인데, 이 공연에서 초연된 작품이다. 프로그램에는 검무>가 다음과 같이 해설되었다. 7. 검무(劍の舞), 타악기 반주, 최승희원래의 검무(劍舞)는 신라시대의 미장(美將) '황창(黃昌)'의 영웅적 행위를 소재로 만들어진 용맹하고 웅장한 무용인데, 후대의 기생들이 춤을 추면서부터 매우 우장섬약(優長纖弱)한 동작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저는 이것을 본래 검무의 의의로 되돌리려고 시도한 것입니다. (최승희).  검무>에 대한 이 같은 설명은 이후에도 계속된다. 예컨대, 5년 뒤인 1939년 1월31일 파리의 살플레옐 극장 공연의 프로그램에도 검무>가 다음과 같이 소개되었다. “검무, (타악기 반주). 전래의 기사정신은 조금씩 조금씩 사그러들었다. 기생들의 ..
【東京1934公演】 18.公演1部(6) 「希望を抱いて」 崔承喜の東京デビュー公演1部の最後の作品は「希望を抱いて」だった。 プログラムにはこの作品が次のように簡略に述べられていた。 6. 希望を抱いて、サラサーテ曲、石井美恵子、崔承喜  二人舞『希望を抱いて』の創作時期は崔承喜の『私の自叙伝』(1936:126)に記されている。 「この間に最初に發表したものがサラサーテの「ロマンサ·アンダルーサ」に據つて作られたデニエツト「希望を抱いて」であり、次いで作られたのが朝鮮古曲によつて朝鮮固有の山育鍔廣帽を冠つて踊る「エへヤ·ノアラ」です。何れも石井先生の新作發表會で初めて發表して幸ひに好評を博しました。」  「この間」とは崔承喜が2回目に日本に渡った1933年3月からデビュー公演をすることになった1934年9月までを指す。 ところが、『エヘヤノアラ』が初演されたのが1933年5月20日、日本青年館で開かれた『近代女流舞踊大会』だったので、『希望..
[도쿄1934공연] 18. 공연1부(6) <희망을 안고서> 최승희 도쿄 데뷔공연 1부의 마지막 작품은 희망을 안고서(希望を抱いて)>였다. 프로그램에는 이 작품이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서술되어 있었다. 6. 희망을 안고서(希望を抱いて), 사라사테 곡, 이시이 미에코(石井美笑子), 최승희  2인무 희망을 안고서>의 창작 시기는 최승희의 나의 자서전(1936:126)>에 서술되어 있다. “이 사이에 최초로 발표한 것이 사라사테의 「안달루시안 로맨스」를 반주로 만들어진 듀엣 「희망을 안고서」이고, 이어서 만들어진 것이 조선 고곡에 의해 조선 고유의 갓을 쓰고 춤추는 「에헤야 노아라」입니다. 모두 이시이 선생님의 신작 발표회에서 처음으로 발표해 다행히도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 사이”란 최승희가 두 번째로 일본에 건너갔던 1933년 3월부터 데뷔 공연을 하게 된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