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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2023강연

[강릉2023강연] 2. 매장인허증

모든 일은 매장인허증 한 장에서 시작됐습니다. 191483일 일본 효고현 다카라즈카의 니시타니 촌사무소가 발행한 김병순씨의 매장인허증입니다.

이 매장인허증은 19851월 다카라즈카 지역사가 정홍영(鄭鴻永, 1929-2000) 선생에 의해 발굴됐습니다. 김병순씨가 사망한지 71년만입니다. 그의 저서 <가극의 도시의 또 다른 역사: 다카라즈카와 조선인(1997)>에서 정홍영 선생은 이렇게 썼습니다.

 

내가 고베수도 건설공사에 참가한 조선인을 처음 알게 되고 조사까지 하게 된 것은 다카라즈카시 역사편찬실에 보존되어 있던 오래된 매장인허증 때문이었다. 1985년 초부터 봄 무렵에 걸쳐서 나는 당시 사카세카와(逆瀬川)에 있는 다카라즈카시 중앙공민관 2층의 방 4개를 차지한 시사(市史)편찬실에 여러 번 간 적이 있다. ... 각 촌의 자료 속에 조선인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지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 몇 번 다니는 동안에 거기에 근무하셨던 시사(市史) 편집담당 주사 와카바야시 야스시(若林泰)씨와 친분이 생겼다. ... 어느 날 특별한 용무 없이 근처를 지나다가 잠시 들렀는데, 와카바야시씨가 , 정선생, 마침 잘됐네요. 연락하려고 했거든요. 이런 게 있는데 뭔가 참고가 될까요?’ 하며 복사한 것을 석 장 보여주셨다. 손에 받아들고 보니 모두 조선인의 이름이 적힌 옛날 니시타니 촌사무소가 발행한 매장인허증 사본이었다.”

 

김병순, 남익삼, 장장수 등 세 명의 사망인허증에는 사망원인이 기록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정홍영 선생은 콘도 도미오(近藤富男, 1950-2022) 선생과 함께 이들의 사망 원인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의 조사에 따르면, 1914-1915년 고베수도 확장공사가 이뤄졌고, 나마제(生瀬)에서 우에가하라()에 이르는 산악지역을 통과하기 위해 13개의 터널이 굴착됐고, 그중 제6호와 제7호 터널공사가 니시타니촌 타마세 마을 인근에서 1914218일부터 1915223일까지 이뤄졌음을 알게 됐습니다. 바로 이 터널공사에서 김병순씨가 사고로 사망했던 것입니다.

 

두 사람은 김병순씨가 인근 지역에 매장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1985년 여름부터 1986년 가을에 걸쳐 니시타니촌의 전 지역을 샅샅이 답사하고, 그 지역의 원로들을 탐문했습니다.

 

 

연구팀은 하즈(波豆) 거주 후쿠모토 지츠지(福本實二, 전직 측량기사)씨와 타케다오 거주 마츠모토 아야미(松本文美, 여관 코요칸紅葉館의 안주인)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고베 수도공사에서 사고로 사망한 조선인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오하라노(大原野) 거주 미쓰쿠니 히카리(光国光, 향토역사가) 씨의 도움으로 조선인들의 매장묘로 추정되는 곳을 답사했습니다.

 

조선인 매장묘는 타마세의 묘지에서 조금 떨어진 나지막한 산속이었습니다. 이곳은 타마세 마을의 공유지로 소나 말이 죽었을 때 묻는 말 무덤(馬墓)’”으로, 타마세의 공동묘지가 좁아지자 이곳이 사람의 묘지로 사용됐다는 마을 원로의 증언도 들었습니다.

 

 

이들은 매장묘와는 별도로 참배묘를 따로 마련하는 이 지역의 관습도 조사했지만, 참배묘까지 찾아나서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마을 주민이 아닌 조선인 노동자를 위해서 참배묘까지 마련되었을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조선인을 위한 참배묘는 마련되었고, 20201월에 발견되었습니다. 타마세의 불교사찰 만푸쿠지(滿福寺)의 주지이신 아다치 치쿄(足立智教) 스님이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건립 소식을 듣고, 다카라즈카의 활동가 다이꼬꾸 스미애(大黑澄枝) 선생에게 3인의 조선인 참배묘가 만푸쿠지 인근에 마련되어 있으며, 1백년 이상 마을 주민들이 위령 제사를 드려왔다는 사실을 알려 오셨던 것입니다.

 

 

다이꼬꾸 스미애 선생은 바로 이 소식을 콘도 도미오 선생에게 전했습니다. 콘도 도미오 선생이 정홍영 선생과 함께 1985년에 시작했던 조선인 희생자 조사가 35년 만에 완결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정홍영 선생은 이미 2000년에 타계하신 뒤였습니다. (jc, 2023/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