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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2023강연

[강릉2023강연] 1. 강릉과 다카라즈카

강릉과 다카라즈카가 처음 만난 것은 1914년입니다. 지금부터 110년 전이지요. 강릉 출신의 김병순(金炳順)씨가 다카라즈카 타마세 마을에서 고베시 수도공사에 참가했을 때였습니다.

 

1914년이니까 일제 강점 초기의 일입니다. 그 전에도 강릉 분들이 일자리와 삶의 기회를 찾아 일본으로 이주했을 가능성이 있고, 그중의 몇 분이 효고현의 다카라즈카에 정착하셨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발견된 기록으로는 강릉의 김병순씨가 처음입니다.

 

 

김병순씨가 다카라즈카에서 일하셨다는 것이 알려진 것은 불행한 사고 때문입니다. 그는 19143월 고베수도공사 중에 터널 낙반사고로 사망했습니다. 김병순씨의 시신은 다카라즈카 시의 타마세 마을에 매장되었고 마을 주민들은 매년 8월 김병순씨를 위한 위령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러나 타마세의 바깥 세계에는 그런 사실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김병순씨의 희생은 다카라즈카 지역사가 정홍영(鄭鴻永), 콘도 도미오(近藤富男) 선생의 조사연구로 다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두 연구자는 다카라즈카 시가 작성, 보관하고 있던 매장인허서 기록에서 김병순씨를 포함한 3인의 조선인 노동자가 1914-1915년에 고베수도공사 중에 사망한 것을 밝혀냈습니다. 그러나 희생자들의 매장지를 찾아내지는 못했습니다.

 

 

김병순씨의 희생이 다카라즈카 바깥 세계에 알려진 것도 20211월의 일입니다.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가 건립되는 과정에서 타마세의 만푸쿠지 주지께서 매장묘와 참배묘가 타마세 마을에 있음을 알려오신 것이지요. 이내 희생자들의 연고 조사가 시작되었고, 20219월 김병순씨가 강릉 출신임이 확인되었습니다. 김병순씨가 사망한 지 108년만입니다.

 

 

김병순씨의 희생 덕분에 강릉과 다카라즈카의 첫 인연이 확인된 후, 두 도시에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20224월 강릉시는 김병순씨를 포함한 5인의 조선인 희생자를 위한 추도비 건립에 앞장서신 일본인 활동가들과 재일동포들에게 감사패를 전달했습니다.

 

 

2020년 다카라즈카의 나카가와 도모코(中川智子) 시장은 조선인 추도비에 추도의 글을 기증한 바 있고, 2022년 강릉의 김한근 시장이 감사패를 증정함으로써, 민간 부문에서 시작된 교류와 협력이 공공 부문의 인정과 격려를 받게 되었음을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202212월 다카라즈카의 활동가들은 감사패를 전달해 준 강릉시를 방문해 실무자들에게 직접 감사 인사를 전했고, 20231월에는 강릉과 서울과 나주의 활동가들이 다카라즈카를 방문해 추도비의 희생자들을 1백년이 넘도록 제사해 오신 타마세 주민들과 함께 위령과 감사의 국악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이어서 20235월 제1강릉포럼의 지도부가 다카라즈카를 방문해 추도비를 참배했고 다카라즈카 타마세를 방문해 조선인 희생자 참배묘에 무궁화를 심었습니다. 방문 일정 동안 다카라즈카 시의원과 효고 현의원이 강릉포럼 인사들을 맞아 공통 관심사를 확인하고, 향후 교류와 협력 방안을 협의하기 시작했습니다.

 

 

20239월에는 다카라즈카와 효고현의 활동가들이 강릉인권영화제를 후원하고 참가했습니다.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강릉 시민들은 이 영화를 환영과 감동으로 맞았습니다. 강릉 시의회 의원들은 이분들을 맞아 간담회를 갖기도 했고요.

 

 

이렇게 김병순씨의 희생을 계기로 시작된 강릉과 다카라즈카의 인연은 지난 3년 동안 빠르게 진전되었습니다. 강릉의 언론도 이를 보도하고 홍보했습니다. <강원도민일보>가 여러차례에 걸쳐 강릉과 다카라즈카의 교류를 보도했고, 문화잡지 <강릉플러스>2022년의 3·1절 특집으로 다루기도 했습니다. 저도 추도비에 대한 논문을 강원대 학술잡지에 게재한 바 있고요.

 

 

이번 글에서는 (1) 그동안의 경과를 관련 인물 중심으로 간략하게 정리하면서, (2) 강릉-다카라즈카 사이의 교류와 협력의 현 단계를 진단하고, (3) 앞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면 좋을 것인지 제안해 보려고 합니다. (jc, 2023/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