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 고려인 민족학교가 설립됐습니다. 이듬해(2020년) <최재형 고려인 민족학교>로 개명한 것은 일제강점기 연해주의 고려인 지도자 최재형 선생을 기리고, 그분의 철학과 민족애를 교육이념으로 삼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고려인 민족학교가 정식으로 설립된 것은 2019년이지만, 우수리스크에 한글교육이 시작된 것은 그보다 거의 20년 전인 2000년이었습니다.
당시 연해주의 <원동신문> 편집장 김발레리아 선생을 비롯한 우스리스크의 고려인 유지들이 한글학교를 설립했습니다. 김발레리아 선생은 이 한글학교의 교사로 재직해 오던 중, 2019년 정식으로 고려인 민족학교를 설립한 것이었지요.
1863년 함경도의 동포들이 러시아 영토내로 처음 이주해 지신허(地新墟) 마을을 세웠을 때도 마을 한 가운데에 <서학서숙(西學書塾)>이라는 학교를 세웠습니다. 자녀들에게 러시아말과 서양학문을 가르쳐, 이주한 땅에 적응하고 성공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부모들의 부지런한 노동과 자녀들의 열성어린 배움은 결실을 맺었습니다. 지신허 고려인 마을은 4개로 늘어났고, 지금의 우수리스크의 원형을 형성했습니다. 러시아 관리들의 기록에 따르면 고려인들이 정착하고 개간한 추풍4사 지역은 연해주의 곡창지대가 되었다고 합니다.
고려인이 연해주에 처음 정착한 이래 160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우수리스크는 연해주 독립운동의 베이스캠프가 되었고,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배출되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지원했고 상하이 임시정부의 자금원 역할도 했습니다.
스탈린 시기(1937년)에 고려인들은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송되었습니다. 일본 간첩들과 구분이 어렵다는 게 이유였고, 중앙아시아의 농토 개간에 고려인을 투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17만명의 고려인 동포들이, 연해주에 마련한 터전을 모두 잃고, 카자흐스탄과 우즈벡스탄으로 이송됐습니다. 소련이 해체되고 중앙아시아의 각국이 독립하자, 고려인들이 연해주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부터 약 5만명의 고려인들이 연해주로 돌아왔고, 그중에서도 조부모의 고향인 우스리스크에 재정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자녀를 위해 <고려인 민족학교>가 설립됐습니다. 재러동포 3세와 4세가 주축을 이룬 고려인 사회에서 5세들은 한국말과 문화를 잘 모릅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조상의 말과 문화를 가르치고 싶었던 것이지요.
미국 동포들도 같은 바람을 가졌습니다. 초기에는 영어와 미국문화를 배워야했으므로 자녀들에게 한국말과 문화를 가르치는 데에 소홀했습니다. 그러다보니 2세만 되어도 한국말을 할 줄 아는 교포 젊은이들이 거의 없습니다.
부랴부랴 주말학교 한글 교실이 시작되었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공부해서 말이 배워지지 않죠. 그래서 지금 재미교포 3세나 4세는 한국말을 거의 모릅니다. 대학에 진학한 청년들이 한국어 과목을 수강하지만, 개인적인 노력이 없이는 능숙한 한국어 구사는 어렵습니다.
재일동포들은 해방이 되자마자 국어강습소를 열어 자녀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쳤습니다. 해방된 조국에 돌아가 살게 될 자녀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치기 위해서였습니다. 일제가 조선어 교육은커녕 사용도 금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국어강습소들이 오늘날 재일조선학교의 모태가 됐습니다. 재일조선학교는 한때 일본 전역에 200여개를 헤아렸고, 지금도 약 64개의 조선학교가 한국말과 한국문화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재일조선학교에 다니는 재일동포 학생들은 4세와 5세들도 한국말을 잘 합니다.
연해주의 고려인 민족학교도 자녀들을 위한 민족교육에 성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원이 필요합니다. 학교를 유지할 재원과 가르칠 교원들이 필요합입니다. 지금 연해주의 고려인 동포들은 재정착의 어려움 속에서도 이 일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연해주의 고려인 동포들의 이같은 노력을 지원하는 것은 한국 동포의 의무일지도 모릅니다. (jc, 2023/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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