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611) 썸네일형 리스트형 [은하수2025보성] 1. 푸른 하늘 은하수 집에 혼자 있는 경우가 많고, 취재나 여행도 혼자 다니는 내게 단체 여행은 드물다. 글을 쓰는 시간이 많으니 혼자가 편한 것은 그렇다고 쳐도, 연구주제가 조선무용가 최승희이니까 관심의 넓이나 깊이가 겹치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취재 여행도 대개 혼자 다닌다. 모처럼 시간 내어 자전거를 타고 놀러가도 마찬가지다. 아름다운 곳과 맛있는 곳이 많은 제주도에 가더라도, 줄창 달리기만 하는 강행군에 다른 누가 동행하기 쉬울 리 없다. 이런 생활양식이 외롭다거나 심심하게 느낀 적은 없고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가끔 그런 생각이 들기는 한다. “내가 이상한 건가?” 아마도 맞을 것이다. 내 생활양식이 정상은 아니겠는데, 그런 생활양식을 불편하게 느끼지 않는 사고방식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 [崔承喜1931筏橋公演] 22.結び言葉 崔承喜の筏橋公演>は2020年5月、筆者が木浦と光州、羅州を訪問して新しく発見された。 1931年12月4日の木浦公演、12月5日の光州公演を調査した後、羅州での公演可能性を調査したが、12月6日に羅州ではなく筏橋で公演があった事実が発見されたのだ。 崔承喜の筏橋公演は「東亜日報(11月24日付、3面)」の記事を通じて確認された。 光州公演と共に筏橋公演が並んで公示された記事だった。 公演10日前に中央地の地方難に公示されたことから見て、この公演が即興的に行われたのではなく、あらかじめ企画されたものであることが分かった。 以後の報道で公演が取り消されたり延期されたという記事が出たことがないことから見て、光州と筏橋公演は実際に実行されたと見るのが合理的だ。 これと共に筏橋公演が開かれた筏橋劇場>が朝鮮人の蔡重鉉によって設立された筏橋最初の近代式劇場だったことも発見された。 この劇場の建.. [최승희1931벌교공연] 22. 맺음말 최승희의 벌교 공연>은 2020년 5월 필자가 목포와 광주, 나주를 방문하면서 새로 발견되었다. 1931년 12월4일의 목포 공연, 12월5일의 광주공연을 조사한 후, 나주에서의 공연 가능성을 조사했으나, 12월6일에 나주가 아니라 벌교에서 공연이 있었던 사실이 발견된 것이다. 최승희의 벌교공연은 동아일보(11월24일자, 3면)>의 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광주공연과 함께 벌교공연이 나란히 공지된 기사였다. 공연 열흘 전에 중앙지의 지방난에 공지된 것으로 보아 이 공연이 즉흥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미리 기획되었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후의 보도에서 공연이 취소되거나 연기되었다는 기사가 난 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광주와 벌교 공연은 실제로 실행되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와 함께 벌교 .. [崔承喜1931筏橋公演] 21. 靈山舞 日本語文献には崔承喜の初の朝鮮舞踊作品として「エヘヤ·ノアラ」を挙げている。 日本の女性誌「令女界」が主催した近代女流舞踊大会(1933年5月20日)でこの作品が初めて発表されたからだ。 したがって「日本で発表された初の朝鮮舞踊が『エヘヤノアラ』」という叙述は正しい言葉だ。 しかし、この作品はすでに朝鮮で発表されていた。 京城で開かれた第3回新作公演(1931年5月1日、団成社)でのことだった。 ただ、この時のタイトルは「私たちのカリカチュア」だった。 すなわち「エヘヤ·ノアラ(1933)」は「私たちのカリカチュア(1931)」の改名、あるいは改作された作品だったのだ。 ところが、『私たちのカリカチュア』(1931)よりも早い時期に発表された朝鮮舞踊作品がある。 「靈山舞(1930)」がそれだ。 崔承喜は第1回京城公演(1930年2月1日、京城公会堂)で朝鮮の伝統音楽「霊山会相」を伴.. [최승희1931벌교공연] 21. 영산무 일본어 문헌에는 최승희의 첫 조선무용 작품으로 에헤야 노아라>를 꼽곤 한다. 일본의 여성잡지 레이조카이(令女界)가 주최한 근대여류무용대회(1933년 5월20일)에서 이 작품이 처음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에서 발표된 첫 조선무용이 에헤야 노아라>”라는 서술은 옳은 말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이미 조선에서 발표된 바 있었다. 경성에서 열린 제3회 신작공연(1931년 5월1일, 단성사)에서였다. 다만 이때의 제목은 우리의 카리카튜어>였다. 즉 에헤야 노아라(1933)>는 우리의 카리카튜어(1931)>의 개명, 혹은 개작된 작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카리카튜어(1931)>보다 더 이른 시기에 발표된 최승희의 조선무용 작품이 있다. 영산무(1930년>가 그것이다. 최승희는 제1회 경성공연(1.. [崔承喜1931筏橋公演] 20.印度人の悲哀 1931年12月6日の「筏橋劇場」公演は筏橋で開かれた崔承喜の最初で最後の舞踊公演だった。 この公演が筏橋倶楽部>の会館だった筏橋劇場>で開かれたことから見て、これは筏橋倶楽部>の招請で行われたものと見られるが、この日は1930年12月6日に開館した筏橋劇場>開館1周年記念日だったので、崔承喜の公演はこの劇場の開館1周年記念公演だっただろう。 崔承喜は1929年12月5日、朝鮮劇場>で讚映會が主催した舞踊、演劇、映画の夜で初めての発表会を行って以来、筏橋公演まで2年間で8回の京城公演と46回の地方公演を断行した。 筏橋公演は1931年の31回目の地方公演であり、通算46回目の地方公演だった。 崔承喜は地方公演中にも新しい作品を振付して初演したりもした。 1931年2月21日の春川公演で初演された「エレジーの独舞」、1935年10月26日の神戸公演で初演された「泉のほとり」がその例だ。.. [최승희1931벌교공연] 20. 인도인의 비애 1931년 12월6일의 벌교극장> 공연은 벌교에서 열린 최승희의 처음이자 마지막 무용공연이었다. 이 공연이 벌교구락부>의 회관이었던 벌교극장>에서 열린 것으로 보아, 이는 벌교구락부>의 초청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이는데, 이날은 1930년 12월6일 개관된 벌교극장> 개관 1주년 기념일이었으므로, 최승희의 공연은 이 극장의 개관1주년 기념공연이었을 것이다. 최승희는 1929년 12월5일 조선극장>에서 찬영회가 주최한 무용,연극,영화의 밤에서 첫 발표회를 가진 이래 벌교공연까지 만2년 동안 8회의 경성 공연과 46회의 지방공연을 단행했다. 벌교공연은 1931년의 31번째의 지방공연이자 통산 46번째 지방공연이었다. 최승희는 지방공연 중에도 새 작품을 안무해 초연하기도 했다. 1931년 2월21일의 춘천공연.. [崔承喜1931筏橋公演] 19. 鉄のような愛 『鉄のような愛(1931)』は1931年9月1-3日の京城第4回公演で発表された崔承喜の二重舞だ。 第2部の3演目で上演されたこの作品で、崔承喜のパートナーは高弟であり金敏子だった。 この作品は崔承喜の代表的な二重舞だったため、筏橋公演でも上演されたものと推定される。 「鉄のような愛」は京城第4回公演で発表されたが、それが初演ではなかった。 それより半年前、1931年2月7日に京城公会堂で開かれた第2回京城公演でもこの作品が上演されたが、この時はタイトルが「彼らのロマンス」であり、崔承喜のパートナーは李玉熙(イ·オクヒ)であった。 この作品は1934年9月20日、日本青年館で開かれた崔承喜の東京第1回公演でも上演されたが、この時のタイトルは「希望を抱いて」、崔承喜のパートナーは石井美恵子だった。 すなわち、「彼らのロマンス(1931)」と「鉄のような愛(1931)」と「希望を抱いて(.. 이전 1 2 3 4 5 6 ··· 77 다음 목록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