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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추도비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18-2. 장장수씨 매장인허증의 일본 주소

[이 취재기의 일본어 번역문은 https://jc-saishoki.tistory.com/36에 있습니다.]

 

김병순씨의 매장인허증에는 자세한 조선 주소와 대략적인 일본 주소가 둘 다 기재되어 있었지만, 장장수씨의 인허증에는 아래에 번역된 내용과 같이 일본 주소는 자세히 기입되어 있는 반면, 조선 주소는 아예 기재되지 않았다.

 

 

"인허증、제5호

(본적주소) 없음

(주소) 카와베군 니시타니촌 내의 타마세촌 이즈리하 1번지의 45

(성명) 장장수(생년월일) 없음, (나이) 37

위사람의 매장을 허가한다. 다만 1915년 3월24일 오후2시 후에 이행할 것.

1915년 3월24일、카와베군 니시타니 촌장 다츠미 류이치 (도장)”

 

1915년 3월24일、카와베군 니시타니 촌장  명의로 발행된 장장수씨의 매장 인허증. 일본내 주소는 자세히 기록되었지만 조선 본적지 주소는 없다.

 

정홍영 선생이 이 인허증에서 주목한 것은 타마세의 주소 이즈리하 1번지의 45”였다. 이것이 장장수씨가 기거했던 주소지라면 조선인 노동자들의 합숙소(=함바)였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정홍영 선생은 이즈리하가 타마세에서 타케다오 일대의 넓은 산간지역을 가리키는 지명이며, 코요칸(紅葉館)의 주소가 지금도 이즈리하 1번지의 44”이었다고 했다.

 

곤도 선생이 1993 326일 아침 정홍영 선생과 함께 호리우치 미노루(堀内稔) 선생에게서 받은 신문기사 사본을 들고 다케다오(武田尾)로 향하던 중, “도중에 차를 세우고 커피를 마시면서 기사 내용을 확인했다는 찻집 겸 식당도 코요칸이 아니었을까?

 

<코요칸>은 지금도 여관/음식점으로 영업 중인데, 특히 <아자레(あざれ)>라고 불리는 코요칸 별채 정원(紅葉舘 別庭)은 예약률이 높은 고급 온천관광 숙박지이다. <아자레>의 웹사이트에는 이곳의 주소는 다카라즈카시 타마세 이지리하 1-47번지라고 되어 있다.

 

정홍형 선생의 저서에 기술된 <코요칸(이즈리하1-44번지)>의 위치와 <아자레(이즈리아1-47번지)>의 위치. 장장수씨가 기거했던 노동자 합숙소의 주소가 이즈리아 1-45번지이므로, 그 위치는 <코요칸>과 <아자레> 사이의 어느 지점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당시의 주소 체계가 지금과 유사했다면 조선인 노동자 합숙소(1번지-45) <코요칸>(1번지44) <아자레>(1번지47)의 사이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지도를 보면 무코강변의 <아자레>와 소가와(惣川) 천변의 <코요칸> 1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는데, 그 중간의 어느 지점에 장장수씨가 기거했던 조선인 노동자 합숙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정홍영 선생은 코요칸의 여주인 마츠모토 아야미(松本文美, 당시 78)씨를 인터뷰하면서 조선인 노동자 합숙소와 사고 상황을 물었다. 마츠모토씨는 코요칸 근처에 큰 합숙소가 2개 있었는데, 하나는 언덕 위에 있었고, 다른 하나는 무코강변에 있었다고 했다.

 

조선인이 있었느냐는 정홍영 선생의 질문에 마츠모토씨는 조선 사람도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공사 중의 사고에 대해 마츠모토씨는 터널에서 발파 사고로 부상자가 꽤 많았 온 몸에 돌이 박혀서 오늘은 세 명, 내일은 다섯 명이라는 식으로 피투성이가 되어 의사에게 실려 가는 것을 몇 번이나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정홍영 선생의 저서 15면에 수록된 니시타니 지역에서 진행되었던 <고베수도 제1차확장공사의 도수터널 공사 목록>. 이 목록에 따르면 장장수씨는 제4호터널공사에 종사하던 중 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주소와 공사장이 가장 가깝고, 공사시기와 그의 사망시기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정홍영 선생은 마츠모토씨가 지적한 곳에 가봤으나 의사가 살았다는 별장 같은 건물도 없었고, 노무자 합숙소가 있었다는 곳은 테니스장이 되어 있었다고 했다. 무코강변의 합숙소 건물 터에도 아무 흔적이 없었지만 그 자리가 4호 터널이 강 건너 수관교(水管橋) 아래 5호 터널 입구 근처임을 확인했다고 했다.

 

따라서 장장수씨가 <아자레> <코요칸> 인근 이즈리하의 합숙소에서 기거했다면 그가 참가했던 공사장은 정홍영 선생의 관찰대로 이즈리하 부근의 4호터널 공사였음에 틀림없다. 거주지와 공사장이 같은 지역일 뿐 아니라 4호터널의 공사 기간(1914 818일부터 1916 713일까지)이 장장수씨의 사망일(1915 324)과도 일치하기 때문이다.

 

한편, 김병순씨의 사망일은 1914 83, 남익삼씨의 사망일은 1915 123일이므로, 남익삼씨는 12개 터널의 어느 공사에도 종사했을 가능성이 있으나 김병순씨는 5-10호터널 공사중의 하나에 종사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김병순씨의 사망일은 1-4호와 11-12호터널 공사가 시작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jc, 2021/5/11)

 

[이 취재기의 일본어 번역문은 https://jc-saishoki.tistory.com/36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