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취재기의 일본어 번역문은 https://jc-saishoki.tistory.com/37에 있습니다.]
3장의 매장인허증에서 조선 연고지를 찾는 일이 가장 어려웠던 것이 남익삼씨의 경우였다. 김병순씨의 본적주소는 분명해서 약간의 조사를 통해 오늘날의 위치를 금방 확인할 수 있었고, 장장수씨의 매장인허증에는 조선 주소가 기재되지 않았으므로 곧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남익삼씨의 매장인허증에는 조선의 주소가 기록되어 있지만 그것이 오늘날의 어느 곳인지를 찾아낼 수가 없었다. 우선 그의 매장인허증을 번역해 보자.
「인허증、제1호、
(본적) 조선 충청도 춘원우 연북면 선삼촌
(주소) [전부 지워져 있음]
(성명) 남익삼, (생년월일) 미상, (나이) 37세
위 사람의 매장을 허가함, 단 1915년 1월23일 오후2시 이후에 시행해야 함
1915년 1월23일, 카와베군 니시타니 촌장 다츠미 류이치 (도장)」
남익삼씨는 김병순씨가 사망한 다음해(1915년) 1월에 사망했다. 현재의 주소가 기입되어 있지는 않지만 정홍영 선생은 니시타니 촌장이 인허증이 발행한 것으로 보아 다른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타마세 지역의 노동자합숙소(=함바)에 기거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나는 그동안 조사한 것을 요약해서 ... 사망자를 연도별, 본적지별, 현주소별, 연령별로 분류한 다음, 니시타니 타마세 지역의 연도별, 본적지별 사망자를 표로 정리했다. 매장 허가증에 기입된 주소는 모두 타마세 지역에 한정되었다.
“타마세는 니시타니(西谷)의 여덟 지역 중 하나로 호수와 인구수가 그리 많지 않아서 연간 사망자 수는 평균 3명에서 5명에 지나지 않았고, 사망 원인도 대부분 노쇠와 질병이었다. 그러나 1914년부터 1917년에 걸친 사망자 수가 비정상적으로 많았고, 본적지가 오이타(大分), 에히메(愛媛), 돗토리(鳥取) 등 다른 지역인 사망자 20명이 이 시기에 집중되어 있었다. 성별 연령별 내역을 보면 ... 14명이 18세부터 45세까지 한창 일할 나이의 남성이었으며, 그 중에 조선인 3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몇 가지 자료를 이용해서 센가리 도수 터널에 관한 부분을 발췌하여 일람표로 만들었다. 그러자 공사가 이루어진 시기, 장소, 주소가 딱 일치하여 사망자가 생긴 것이 터널 공사에 의한 것임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매장인허증에 사망 이유가 기재되어 있지 않지만, 정홍영선생은 정황증거를 모두 종합해서 남익삼씨도 역시 고베수도공사 중에 사고로 사망했던 것을 확인한 것이다.
또 정홍영 선생은 평생 고베수도에서 근무한 하즈(波豆)에 거주하는 후쿠모토 지츠지(福本實二, 당시 75세)씨를 인터뷰해서 1910년대 고베수도 제1차 확장공사 중에 많은 조선인이 참가해서 일했고, 사고로 사망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따라서 이제 나는 남익삼씨의 조선 연고지를 찾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남익삼씨의 주소에서 조선(朝鮮)이라는 첫 단어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읽기 어려울 만큼 초서체가 심했고, 간신히 독해를 해도 한국에 그런 이름의 지역과 장소가 없는 것이 문제였다.
우선 ‘도(道)’부터 문제였다. ‘조선’ 다음의 세 글자를 충청도(忠淸道)로 읽는 이도 있었고, 북해도(北海道)로 읽는 사람도 있었다. 북해도는 조선의 영토가 아니었고, 충청도라는 행정지명은 1929년당시의 조선에 없었다. 지금도 충청남,북도를 합쳐서 충청도라는 말이 쓰이기는 하지만, 주소를 말하려면 언제나 충청남,북도를 구별해야 한다.
설사 그것이 ‘충청남,북도’를 가리킨다고 하더라도 그 다음 세 글자가 문제였다. 가장 근접한 독해가 ‘춘원군(春元郡)’이었으나 충청남도와 충청북도에 그런 이름의 군은 없었다. ‘군’ 단위에서 막히니 그 아래 ‘면’단위나 (‘리’ 단위는 없었다) ‘촌’ 단위의 이름은 조사해 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가능한 모든 자료를 동원해서 다른 ‘도’에서도 ‘춘원군’을 찾아보았으나 그런 이름을 가진 ‘군’은 조선13도에 없었다. 같은 방법으로 ’연북면‘과 ’선삼촌‘을 찾아보았으나 결과는 같았다.
남익삼씨의 조선 주소를 읽기 시작한 것이 곤도 선생으로부터 매장인허증 사본을 받았던 2020년 11월이었으나, 해를 넘기고 2021년 4월이 되도록 아무런 실마리도 잡지 못했다.
그동안 내가 이 주소를 읽어달라고 부탁드린 분들이 약 이십 명쯤 되었다. 그중에는 한학자와 고전문학자, 역사학 교수와 초서체 전문가도 있었다. 심지어 일본 고문의 초서체를 판독하는 컴퓨터 프로그램까지 동원했다. 그러나 누구도 주소를 읽어내지 못했고, 컴퓨터도 마찬가지였다.
5월에 들어서면서 나는 이 주소가 잘못된 기록이라고 결론 내렸다. 6개월 동안 조사를 했는데 아무도 읽어내지 못했다면 그것은 주소가 잘못된 것으로 추정하는 수밖에 없다.
매장인허증의 필체는 매우 능숙한 초서체였다. 초서체의 한 전문가는 인허증의 서체가 일본식 초서체라고 확인해 주었다. 즉, 조선인이 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막노동 일자리를 찾아 일본까지 와야했던 가난한 조선인이 이렇게 능숙한 초서체를 쓸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매장인허증은 일본인 인텔리, 예컨대 니시타니 촌사무소의 서기 같은 사람이 작성한 서류임에 틀림없다. 서기가 질문하면 서툴게나마 일본말을 할 줄 알았을 공사판 십장이 인허증 작성에 필요한 내용을 대답해 주었을 것이다.
문제는 아무리 십장이라고 해도 사망자의 인적사항과 주소를 다 알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가 생전에 사망자와 나눴던 대화를 통해 알게 된 인적 사항을 대답하는 데에 그쳤을 것이다. 남익삼씨의 경우에는 그의 생년월일을 아는 동료조차 없었던 모양이다.
조선 사정을 모르는 일본인 서기와 사망자를 잘 모르는 조선인 십장 사이의 대화를 통해 인허증이 작성되었다면, 여기에 기록된 주소는 믿기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조사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인허증에 쓰인 주소를 제대로 읽으려고 노력하는 대신에 ‘도’와 ‘군’과 ‘면’과 ‘리’와 ‘촌’의 행정 단위들을 다 떼어 버리고 ‘춘원’과 ‘연북’과 ‘선삼’이라는 고유명사만 조사했다. 그랬더니 ‘춘원’이라는 지명이 있었다. 그것은 ‘군’이 아니라 ‘면’의 이름이었고, ‘춘원면(春元面)’은 지금의 ‘경상남도 통영’을 가리키는 옛 지명이었다.
그 다음에는 지도를 보면서 ‘춘원면’을 찾았다. 2개의 지도가 ‘춘원면’을 기록했다. <지도2: 경상도, 전라도 (1884년)>와 <팔도지도초본2(1770)>였다. 전자에는 통영과 미륵도를 ‘춘원면’으로 표시했고, 후자는 오늘날의 통영시만 ‘춘원면’으로 표시했다.
나는 두 지도에서 ‘춘원면’ 부근을 샅샅이 살폈다. 춘원면 북쪽에 광일면(光一面)과 광이면(光二面)이 보였다. 광삼면(光三面)도 있는 것일까? 지도에는 보이지 않았다. 다른 자료를 보니 조선 중기에는 지금의 안정과 황리 지역이 광삼면이었고, 그 남쪽이 춘원면이었다고 한다.
1900년에 이 지역을 진남군(鎭南郡)으로 편성하면서 광삼면은 그대로 유지되었지만 춘원면은 도남면(道南面)으로 개칭되었다. 1914년에는 진남군이 통영군으로 바뀌면서 광삼면과 도남면을 합하여 광도면(光道面)이 되었다. 즉, 오늘날의 통영시 중심부가 1900년 이전에는 ‘춘원면’이었고, 그 북쪽으로 인접한 지역이 ‘광삼면’이었던 것이다.
내가 ‘광삼면’에 주목했던 까닭은 여기에 쓰인 한자 ‘빛 광(光)’자가 쉽게 ‘먼저 선(先)’자로 오인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남익삼씨 주소의 맨 끝에 나오는 ‘선삼촌(先三村)’은 ‘광삼촌(光三村)’의 잘못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상의 길고 지리한 조사와 추론을 거쳐서 나는 남익삼씨의 주소가 오늘날의 <경상남도 통영시 광도면>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확인을 위해 이 지명들을 더 찾아보았지만 다른 지역에는 그런 이름은 없었다. ‘춘원’이나 ‘광삼’이 독특한 이름이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남익삼씨의 연고지는 통영시 광도면이며, 그곳은 우연히도 후쿠치야마선 부설공사의 희생자들의 연고지인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면과 매우 가깝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jc, 2021/5/11)
[이 취재기의 일본어 번역문은 https://jc-saishoki.tistory.com/37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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