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혼자 있는 경우가 많고, 취재나 여행도 혼자 다니는 내게 단체 여행은 드물다. 글을 쓰는 시간이 많으니 혼자가 편한 것은 그렇다고 쳐도, 연구주제가 조선무용가 최승희이니까 관심의 넓이나 깊이가 겹치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취재 여행도 대개 혼자 다닌다.
모처럼 시간 내어 자전거를 타고 놀러가도 마찬가지다. 아름다운 곳과 맛있는 곳이 많은 제주도에 가더라도, 줄창 달리기만 하는 강행군에 다른 누가 동행하기 쉬울 리 없다.
이런 생활양식이 외롭다거나 심심하게 느낀 적은 없고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가끔 그런 생각이 들기는 한다. “내가 이상한 건가?” 아마도 맞을 것이다. 내 생활양식이 정상은 아니겠는데, 그런 생활양식을 불편하게 느끼지 않는 사고방식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이상한 사람을 받아준 모임이 은하수다. 4년 전 여름, 이상한 계기로 전문갑, 박한용 선생을 만났다. 강릉 취재를 준비하면서 도와 줄 분들을 구한다고 페이스북에 포스팅을 했는데, 전문갑 선생이 전화를 주셨고 박한용 선생과 만날 자리를 주선하셨다. 결과적으로 박한용 선생의 조언과 안내가 도움이 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은하수와 접점이 생겼다.
이렇게 시작된 인연이 4년째인데 그동안 은하수에서 ‘평범’하다고 분류될 수 있는 회원을 발견하지 못했다. 아직 만나 뵙지 못한 분들이 더 많겠지만, 한 번 이상 만나뵌 분들은 어떤 면에서든 ‘이상’하거나 ‘특이’해서 정상은 아님에 틀림없어 보였다.
19세기 식으로 한시를 짓는 역사학자도 있고, 남들이 잘 안 그리는 인물 묘사에 탁월한 화가도 있다. 일 년에 몇 달씩 자전거를 타는 매니아도 있고, 히말라야를 네 번이나 다녀온 등산가도 있다. 역사적 누명을 쓴 분들에 대한 모임이라면 열 일 제치고 다니시는 활동가도 있고, 예약을 안 하면 자기 가게에 발을 못들이지 하는 식당 주인도 있고, 자기가 하는 일을 적절히 묘사한 직업 이름이 없다며, 자기가 직업 이름을 새로 만들어 쓰는 소셜 디제이도 있다.
남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시를 쓰는 시인도 있고, 느긋하게 그림을 그리고 영상을 편집하면서 1만명의 구독자를 모여들게 한 화가-건축가 부부도 있다. 악기라고는 젓가락 두 짝만 가지고 6시간씩 노래할 수 있는 가수들도 있고, 진주난봉가 가사를 아직도 깡그리 외는 사람들도 있다. 전공이 아니라면서 임시정부와 독립군의 유적을 찾아 중국 대륙을 누비는 분도 있고, 한국과 중국과 일본에서 같은 한자가 어떻게 다르게 사용되는지 조사하고 있는, 잘생긴 외모로 위장한 꼴통 언어학자도 새로 들어오셨다.
코로나 직전까지는 연례 모임에 80명씩 모였다는 것을 보면, 내가 아직 만나지 못한 회원들이 많을 것이다. 또 이미 만났더라도 아직 각자의 이상한 개성을 알아채지 못한 회원들도 많음에 틀림없다. 나는 그 독특한 이상함을 발견하고 음미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기다리는 중이다.
은하수 회원들뿐 아니라 은하수 자체도 이상한 모임이다. 이상한 사람들끼리는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 정상인데, 여기서는 독특한 사람들이 잘도 어울린다. 말하자면 회원 한명 한명이 레전드인데, 그들이 모인 모임도 레전드이다. 단언컨대 이런 모임은 은하계에서도 드물다.
은하수라는 이름의 유래는 모르겠다. 아무도 얘기해 주지 않았고 나도 캐묻지 않았다. 나름 이유를 짐작해 보기는 했다. 지구는 은하수의 일원이지만 다른 별들과 수 광년 이상 떨어져 있다. 여기서 보면 은하수의 별들끼리는 가까워 보이지만, 그 거리도 장난이 아니게 멀다.
일본 영화 <치히로상(ちひろさん, 2023)>은 “우리는 다 다른 별들에서 왔다”고 한다. 그나마 서로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같은 별에서 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치히로상의 말이 맞는다면 은하수 모임은 은하계 구석의 특정한 별에서 온 외계인들의 향우회일지도 모르겠다.
국어사전은 이상(異常)은 정상(正常)과 다른 것이라고 했지만, 인식 지평을 조금만 넓히면 정상과 이상의 가름은 아주 자의적이다. 지구인 기준으로는 이상이 정상의 부정일지 몰라도, 은하수 기준으로는 각자가 독특하고 흥미로운 정상들이다.
좀처럼 단체여행을 가지 못하는 내가 은하수 연례 소풍에 연짝 3년째 참석한 것은, 아마도 독특한 개인들의 그 이상함에 매료되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jc, 2025/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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