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503) 썸네일형 리스트형 [대륙14학교] 14. 김동기 강연 (3) 우크라이나의 지정학 김동기 선생의 강연은 지정학의 역사를 소개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지만, 오늘날의 우크라이나와 한반도 상황을 지정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제적인 교훈을 줍니다. 한반도와 우크라이나는 둘 다 스피크만의 림랜드(Rimland)에 위치합니다. 하트랜드(Heartland)를 포위하고 있는 지점들이지요. 서유럽을 빼면 우크라이나는 림랜드의 서쪽 끝이고, 한반도는 동쪽 끝입니다. 매킨더식으로 말하면 씨파워와 랜드파워가 충돌하는 지점이어서 분쟁의 소지가 상존하는 지역이지요. 우크라이나라는 국호 자체가 ‘경계/변방의 땅’이라는 뜻입니다. 고대슬라브어에서 “우(Оу)”는 전치사, “나(на)”는 접미사이고, “크라이(краи)”는 “땅 또는 변경/경계”라는 뜻입니다. 우크라이나의 역사는 험난했습니다. 3세기부터 .. [大陸14学校]13. キム·ドンギ講演(2)戦争と統制 地政学が大国の領土ゲームのための理論であるという事実は3つを意味します。(1)少数の强大国がゲームの主体であり、残りはゲームの対象であること、(2)ゲームの対象がゲームの主体になる方法はほとんどないという点、そして(3)ゲーム結果は戦争と内部統制だという点です。 それは、キム·ドンギ先生の言うとおり、この地政学ゲームは徹底的に力に基づいているからです。 その力は経済力と外交力を指すこともありますが、根本的には武力から出てきます。 地政学の立場では宗教やイデオロギーも何の意味もない表面的な小道具に過ぎないのです。 ゲームの対象がゲーム主体になろうと努力した例がナチス·ドイツと軍国主義日本です。 この二つの体制は、ドイツ人カール·ハウスホッパーの4つの汎地域論(Theories of 4 Pan-regions)に基づいて互いに繋がっています。 ハウスホッパーが汎地域論を主張したのは、ラッ.. [대륙14학교] 13. 김동기 강연 (2) 전쟁과 통제 지정학이 강대국의 영토 게임을 위한 이론이라는 사실은 세 가지를 의미합니다. (1) 소수의 강대국이 게임의 주체이고 나머지는 게임의 대상이라는 점, (2) 게임 대상이 게임 주체가 될 방법은 거의 없다는 점, 그리고 (3) 게임의 결과는 전쟁과 내부통제라는 점입니다. 그것은, 김동기 선생의 말마따나, 이 지정학 게임은 철저하게 힘에 기반을 두기 때문입니다. 그 힘은 경제력과 외교력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무력에서 나옵니다. 지정학의 입장에서는 종교나 이데올로기도 아무 의미 없는 표면적 소도구에 불과한 것이지요. 게임 대상이 게임 주체로 올라서려고 노력한 예가 나치 독일과 군국주의 일본입니다. 이 두 체제는 독일인 칼 하우스호퍼의 4개 범지역론(Theories of 4 Pan-regions)에 기.. [大陸14学校] 12. キム·ドンギ講演 (1) 地政学 14期の3回目の講演は、キム·ドンギ先生のでした。 彼はという著書で最近広く知られていますが、地政学に対する彼の関心は少なくとも1995年から始まったようです。 韓国国防研究院が出版したという政策報告書に"北東アジアの軍備増強"という彼の論文が載っていましたね。 キム·ドンギ先生の講演を聞く前まで「地政学」に対する私の関心は浅はかでした。 人力でやむを得ない地理的環境を国際政治の主要変数として想定するという印象を与えたからです。 つまり、地政学は人間の意志を度外視する環境決定論のように見えました。 ヨーロッパの 19 世紀は決定論の時期でした。 共産主義理論となったマルクスの経済決定論が代表的ですが、人間の優劣が体型によって決まるという優生学的決定論はナチズムの基盤となり、甚だしくは犯罪者までも遺伝的に決定されるという骨相学が横行していた時代でしたから。 地政学もそのような学問的雰囲気.. [대륙14학교] 12. 김동기 강연 (1) 지정학 14기의 세 번째 강연은 김동기 선생의 이었습니다. 그는 이라는 저서로 최근 널리 알려졌지만, 지정학에 대한 그의 관심은 적어도 1995년부터 시작된 것 같습니다. 한국국방연구원이 출판한 이라는 정책보고서에 “동북아의 군비 증강”이라는 그의 논문이 실렸더군요. 김동기 선생의 강연을 듣기 전까지 ‘지정학’에 대한 나의 관심은 일천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지리적 환경을 국제정치의 주요 변수로 상정한다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었지요. 즉, 지정학은 인간 의지를 도외시하는 환경결정론처럼 보였습니다. 유럽의 19세기는 결정론의 시기였습니다. 공산주의 이론이 된 마르크스의 경제결정론이 대표적이지만, 인간의 우열이 체형에 의해 결정된다는 우생학적 결정론은 나치즘의 기반이 되었고, 심지어 범죄자까지도 유전.. [中南米巡回公演] 9.プエルトリコ公演前後(8)ハバナ公演(?) 1939年11月末、崔承喜がキューバを訪問したが、公演はなかったと私は判断した。 ハバナ公演に対する具体的な記録が見つからなかったためだ。 キューバ公演の日付と劇場を報道した新聞や雑誌は発掘されておらず、その公演のプログラムやパンフレットも発見されていない。 しかし、ハバナ公演の可能性を完全に排除することはできなかった。 「ハバナ公演」を報道した2件の記事があったためだ。 まず1940年1月27日の『東亜日報』は崔承喜が同紙に送った手紙を引用して次のように報じた。 「九州に動乱が起き、残念ながら避難船に乗ってニューヨークに戻ることになった。 アメリカに渡ると、と契約を結び、南米のハバナロ公演の旅に出て、そこで多くの収穫を収め、去る(1939年)12月中旬に再びニューヨークに戻った」 朝鮮で『東亜日報』の記事が報道されてから3日後の1940年1月30日、満州の『滿鮮日報』も同じ内容を報道.. [중남미 순회공연] 9. 푸에르토리코 공연 전후 (8) 하바나 공연(?) 1939년 11월말, 최승희가 쿠바를 방문했지만 공연은 없었다고 나는 판단했다. 하바나 공연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쿠바 공연의 날짜와 극장을 보도한 신문이나 잡지가 발굴된 바 없고, 그 공연의 프로그램이나 팜플렛도 발견된 바 없다. 그러나 하바나 공연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다. “하바나 공연”을 보도한 2건의 기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1940년 1월27일의 는 최승희가 이 신문사에 보낸 편지를 인용해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구주에 동란이 일어나 유감스럽게도 피난선을 타고 뉴욕으로 다시 가게 되었다. 미국에 건너가자 와 계약을 하여 남미 하바나로 공연의 길을 떠나 거기서 많은 수확을 거두고 지난 (1939년) 12월 중순에 다시 뉴욕으로 돌아왔다.” 조선에서.. [中南米巡回公演] 8.プエルトリコ公演前後(7)キューバのルンバ 1939年11月、崔承喜がパナマからニューヨークに帰る途中にキューバに立ち寄ったという記録はあるが、このキューバ訪問に対する具体的な記述はない。 『三千里(1940年5月号)』に掲載された崔承喜の寄稿文で、「キューバでルンバを観覧した」という記述が全てだ。 崔承喜はこの時、なぜキューバを訪問したのか? 映画「ゴッドファーザー2編(The Godfather Part II、1974)」にも描かれているように、革命前のキューバは裕福なアメリカ人の観光地だった。 しかし、崔承喜一行が観光目的でキューバに立ち寄ったようではなかった。 チェ·スンヒとアン·マクは朝鮮でも、日本でも、ヨーロッパでも観光目的で旅行したり、名士たちとの社交会に参加したことがない。 第一に、観光や社交に使うお金と時間がなく、第二に、公演以外のことには全く関心がなかったためだった。 したがって1939年11月、チェ·スン.. 이전 1 ··· 42 43 44 45 46 47 48 ··· 6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