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학교> 14기의 세 번째 강연은 김동기 선생의 <한반도와 지정학적 상상력>이었습니다. 그는 <지정학의 힘(2020)>이라는 저서로 최근 널리 알려졌지만, 지정학에 대한 그의 관심은 적어도 1995년부터 시작된 것 같습니다. 한국국방연구원이 출판한 <변화하는 동북아 힘의 균형>이라는 정책보고서에 “동북아의 군비 증강”이라는 그의 논문이 실렸더군요.
김동기 선생의 강연을 듣기 전까지 ‘지정학’에 대한 나의 관심은 일천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지리적 환경을 국제정치의 주요 변수로 상정한다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었지요. 즉, 지정학은 인간 의지를 도외시하는 환경결정론처럼 보였습니다.
유럽의 19세기는 결정론의 시기였습니다. 공산주의 이론이 된 마르크스의 경제결정론이 대표적이지만, 인간의 우열이 체형에 의해 결정된다는 우생학적 결정론은 나치즘의 기반이 되었고, 심지어 범죄자까지도 유전적으로 결정된다는 골상학이 판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지정학도 그런 학문적 분위기에서 시작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지정학은, 경제결정론이나 기술결정론과 그 구조가 유사해 보였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지리적 위치가 국가의 운명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그 외교력을 결정한다는 정도로 이해했던 것이지요.
이같은 ‘지정학’에 대한 나의 오해는 우습게도 그 이름에 대한 오해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지정학이 “지리적 위치(地)가 결정(定)한다”는 주장인 줄 알았거든요. 하지만 한자로는 地政學, 즉 “지리적 위치를 활용하는 정치학(政治學)”이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Geopolitics라고 표기하더군요. 그렇다면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고, 강연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김동기 선생은 먼저 지정학의 역사를 소개했는데, 지정학 자체를 이해하는 데에 유용했습니다. 해양세력(Sea Power) 개념을 도입한 미국의 알프레드 마한(Alfred Thayer Mahan, 1840-1914), 대륙세력(Land Power)을 해양세력에 대립시키면서 하트랜드(Heartland) 이론을 제시했던 영국의 할포드 매킨더(Halford Mackinder, 1861-1947),
프리드리히 라첼(Friedrich Ratzel, 1844-1904)의 활동공간(Lebensraum) 개념을 바탕으로 세계를 4개의 범지역(pan-region)으로 분할했던 독일의 칼 하우스호퍼(Karl Haushofer, 1869-1946), 하트랜드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그 가장자리에 위치한 림랜드(Rimland)가 중요하다고 주장한 니콜라스 스피크만(Nicholas John Spykman, 1893-1943) 등이 그들입니다.
이상이 2차대전 이전의 지정학자들이라면, 최근의 지정학자들로는 지정학을 부활시키면서 미중 외교를 정상화한 헨리 키신저(Henry Alfred Kissinger, 1923-)와 중·러·이란의 연대를 견제해야 한다는 즈비그뉴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 1928-2017), 그리고 러시아가 새로운 유라시아 블록을 구성해 미국과 나토에 대항해야 한다고 주장한 알렉산드르 두긴(Алекса́ндр Ге́льевич Ду́гин, 1962-) 등도 소개됐습니다.
그런데 지정학자들의 국적과 그들의 주요 주장을 살펴보면, 무력과 경제력으로 제국주의를 실현한 국가들의 주장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러시아를 봉쇄하기 위한 서방의 논리이기도 하고, 최근에는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미국의 논리로 진행되고 있다는 인상입니다.
다시 말해 지정학은 소수의 제국주의 강국들의 각축을 정당화하는 이론적 배경에 불과해 보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경쟁 속에서 명멸하는 약소국들에게는 절망적인 소식입니다. 한반도의 분단이 그 단적인 예가 되겠지요. 림랜드의 동쪽 끝에 위치하는 바람에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영토가 분단되고, 수백만이 죽거나 이산가족이 되어야 했던 것이니까요.
브레진스키는 자신의 저서 제목을 <게임 플랜(Game Plan, 1986)>과 <거대한 체스판(The Grand Chessboard, 1997)>이라고 지었습니다.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게임하듯이 약소국을 다루거나 희생시킨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본질적으로 강대국의 게임이론인 지정학이 한국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일까요? (jc, 2023/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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