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순회공연] 9. 푸에르토리코 공연 전후 (8) 하바나 공연(?)

1939년 11월말, 최승희가 쿠바를 방문했지만 공연은 없었다고 나는 판단했다. 하바나 공연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쿠바 공연의 날짜와 극장을 보도한 신문이나 잡지가 발굴된 바 없고, 그 공연의 프로그램이나 팜플렛도 발견된 바 없다.

 

 

그러나 하바나 공연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다. “하바나 공연”을 보도한 2건의 기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1940년 1월27일의 <동아일보>는 최승희가 이 신문사에 보낸 편지를 인용해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구주에 동란이 일어나 유감스럽게도 피난선을 타고 뉴욕으로 다시 가게 되었다. 미국에 건너가자 <메트로폴리탄 뮤지칼 뷰로>와 계약을 하여 남미 하바나로 공연의 길을 떠나 거기서 많은 수확을 거두고 지난 (1939년) 12월 중순에 다시 뉴욕으로 돌아왔다.”

 

 

조선에서 <동아일보> 기사가 보도된 지 사흘 후인 1940년 1월30일 만주의 <만선일보>도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만선일보>의 기사는 <동아일보>와 토씨까지 거의 같았다. 이 기사는 출처를 [경성]이라고만 밝혔지만 사실은 경성의 <동아일보>의 기사를 그대로 전재한 것이다.

 

이 기사는 최승희가 “<메트로폴리탄 뮤지칼 뷰로>와 계약을 하여 남미 하바나로 공연의 길을 떠”났다고 했지만, 이는 사실일 수 없었다. 최승희가 흥행사 메트로폴리탄 뮤지컬 뷰로(이하 메트로폴리탄)과 계약을 맺은 것은 그가 파나마와 쿠바를 거쳐 뉴욕으로 돌아가고 난 뒤였기 때문이다.

 

 

최승희로부터 비슷한 편지를 받고 같은 날(1940년 1월27일) 기사화한 <조선일보>와 <매일신보>는 하바나 공연을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얼마 전에 남아메리카를 돌아서 지금은 다시 뉴욕에 와서 당분간 쉬고 있”다고만 했을 뿐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동아일보>만 “하바나 공연”을 언급한 것인데, 이는 오보였던 것으로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

 

최승희는 전쟁이 일어난 유럽에서 철수, 1939년 10월21일 뉴욕에 도착했다. 미국 입국비자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최승희 일행은 5일간의 임시체류가 끝난 후인 10월26일, 배편으로 뉴욕을 출발, 파나마로 향했다. 해협을 가로질러 미국 서해안의 도시, 로스엔젤레스나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면, 거기서 다시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일본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만일 뉴욕 임시체류 기간에 메트로폴리탄과 계약을 맺었다면, 최승희는 미국비자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고, 파나마와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일본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을 리 없다.

 

메트로폴리탄이 무선 전화로 최승희에게 미국공연 가능성을 알려온 것은 그녀가 파나마로 항해하던 중이었다. 최승희는 파나마에서 하선, 11월 중순까지 파나마에 머물렀고, 11월 말경 쿠바를 경유, 12월초에 뉴욕으로 돌아왔다. 이후 최승희는 메트로폴리탄과 계약을 맺고 미국 순회공연을 시작했는데, 첫 공연이 12월28일의 <홀리데이 무용제>였다.

 

최승희가 쿠바를 방문한 것은 메트로폴리탄과의 계약을 맺기 전이다. 쿠바에서 공연을 할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던 시기였다는 말이다. 다만 이때 최승희와 안막은 그들이 뉴욕으로 돌아가면 메트로폴리탄과의 계약 아래 미국 순회공연이 시작할 것임을 알고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 이후의 중남미 공연까지 준비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중남미 순회공연의 시작은 푸에르토리코였는데, 그 대행사가 프로 뮤지컬 아트협회(la Asociación Pro Arte Musical)였다. 1940년 3월13일의 <라 토레>는 최승희의 공연이 “프로 뮤지컬 아트협회와 이 대학 총장 돈 호세 게이츠의 공동 노력으로 성사됐다”고 보도했다. 프로 뮤지컬 아트협회는 푸에르토리코 예술가들과 여성운동가들의 협회였다.

 

즉, 최승희는 루빈스타인이 하바나 공연을 가졌던 11월28-30일을 전후로 쿠바를 방문, 루빈스타인의 흥행사 콘시에르토스 다니엘과 푸에르토리코 대행사 프로 뮤지컬 아트협회와 만났을 가능성이 높다. 이 자리에서 최승희와 안막은 푸에르토리코 공연을 포함한 중남미 순회공연을 기획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jc, 2023/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