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준2025길-홍범도

(22)
[유준2025길] 7. 유준 화백의 파랑 고흐는 노랑색을 기가 막히게 잘 썼죠. 아를르의 카페나 해바라기, 심지어 몇몇 자화상에서도 노랑색이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모델을 구할 수 없어서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는 게 평론가들의 중평이더군요.) 게다가 별밤에서 보이는 밤 하늘의 별빛과 물에 비친 가스등 불빛은 경이롭죠. 슬픔이나 외로움 조차도 따뜻해서 희망과 낙관을 버리지 못하게 합니다. 모네는 녹색과 흰색을 좋아했던 것 같은데, 전자는 수련, 후자는 루앙 성당 연작을 하도 많이 봐서 제게 그런 인상과 기억으로 남았는지도 모릅니다.  유준 화백은 파란색이죠. 그는 수묵 작가니까 색채에 얽매일 필요가 없는 화가지만, 그의 담채 중에서는 항상 파란색이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편견일 수도 있으나, 적어도 제게는 그렇습니다. 올해의 길>전에도 수묵담채..
[유준2025길] 6. 적멸(2023)과 도시이야기(2024) 현실과 이상이 서로 반대되는 세계이고, 그 둘 사이에는 건너지 못할 심연이라도 있는 것처럼 생각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저는 그 두 세계가 동전의 양면이거나, 혹은 그저 투명한 얇은 막으로 나뉜 동일한 세계의 두 얼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얇은 막을 터뜨리기만 하면 현실은 이상적이 되고, 이상이 현실화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런 일을 제도적으로는 종교가, 개인적으로는 사유가 해 낼 수 있다고 봅니다.  유준 화백의 길>전에 출품된 작품 중에 불교와 기독교 소재의 그림이 많은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작가가 ‘길’을 화두로 삼았을 때는 스키장의 눈길이나 버스에서 내려 양구로 가는 시골길 뿐 아니라, 개인과 사회가 마땅히 걸어야 할 ‘길(道)’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일 겁니다. 유준 작가의 이번 전시회의..
[유준2025길] 5. 스키장에서(2022) 어린 시절 저는 엉뚱한 생각이나 말을 자주 했다고들 합니다. 그럴 때마다 “넌 만화를 많이 봐서 그래” 하고 핀잔을 들었지요. 그렇다고 제가 뭐 만화를 끼고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다른 책들도 읽었는데, 만화책도 책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만화책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만화가가 되고 싶은 생각도 하긴 했었습니다. 그림을 보기 시작하면서 “넌 인상파만 그렇게 보냐?”하는 핀잔도 들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인상파 섹션에 자주 갔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제가 또 광팬은 아닙니다. 다만 화가가 대상을 저렇게도 보거나 저렇게 그릴 수도 있구나, 하고 감탄하곤 했는데, 그게 주로 모네나 고흐였을 뿐이죠. 다른 사람들의 그림이나 조각도 자주 봅니다.  유준 작가의 2025년 길>전에는 설경이 많다는 점을 앞에..
[유준2025길] 4. 삶(2022) 심종록 선생님께서 페이스북에다가 유준 작가의 2025년 개인전인 길>전에 출품된 꿈(2025)>에 대해서 좋은 글을 써 주셨네요. 저도 장엄한 아마다블람과 노랗게 불 켜진 쪼끄만 텐트에 대해서 잠깐 소감을 말씀 드린 적이 있지만, 심종록 선생님은 이 멋진 그림을 설 인사로 보내셨습니다.  저는 또 전시장에 꿈>과 짝을 이루어 나란히 전시된 삶(2022)>에도 마음의 울림이 있습니다. 아마다블람을 배경으로 한 사람이 가파른 눈길을 걸어 올라가고 있고, 산 정상께에는 거대한 고래가 공중을 헤엄치고 있는 바로 그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2년 전인 2023년 1월에 개최된 유준 작가의 개인전 화양연화>에 처음 전시된 그림입니다. 혜화아트센터>가 10주년을 맞은 특별 기획전이기도 해서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
[유준2025길] 3. 꿈(2025) 유준 화백의 수묵 산수에는 사람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죠. 다만 자연 속의 등장인물들이 아주 작게 묘사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장쾌한 폭포나 망망한 바다, 혹은 거대한 산과 함께 묘사된 인물들은 대개 새끼손가락이나 성냥개비 크기입니다. 전통적인 산수화 기법을 충분히 되살렸으면서도 인물이 거의 없는 조선시대의 산수화와는 대비됩니다.  유준 화백의 2025년 길>전에는 2024년의 묵의 사유>전에서와 마찬가지로 거대한 산이 꽤 등장합니다. 꿈(2025)>에 묘사된 산은 “아마다블람(Ama Dablam)”입니다. 저는 산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물었더니, 유준 작가가 알려주시더군요. 세르파 말로 “어머니의 목걸이” 혹은 “어머니의 펜던트”라는 뜻이라는 아마다블람은 높이가 6,812미터이므로 백두산(2,744..
[유준2025길] 2. 우리들의 초상(2024) 유준 화백의 2025년 개인전이 혜화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불금과 주말에 많은 분들이 관람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가 좋은 인상을 받았던 작품을 관람 포인트로 하나 더 소개드립니다. 우리들의 초상(2024)>입니다.  그림을 보시면 금방 이거, 서편제잖아?> 하실 겁니다. 아버지 유봉이, 눈멀어 지팡이를 손에 쥔 딸 송화를 새끼줄로 인도하고 있는데, 아들 동호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북장단을 치며 따라옵니다. 아마도 유봉과 송화는 동호의 장단에 맞춰 번갈아 가며 소리를 매기는 중이겠지요. 그런데 영화 서편제(1993)>와는 달리 우리들의 초상>은 겨울길입니다. 사실 이번 유준 작가의 길>전에 출품된 작품들 중에 설경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서편제>의 설경은 가장 뜻밖입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