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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2025길-홍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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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2025홍범도] 12. 범도의 눈물(2024) 유준 화백의 올해 전시회는 개인전인 길>전과 홍범도(1868-1943) 장군의 전기 수묵화집 출판기념과 병행된 홍범도>전이 동시에 열렸습니다.  두 전시회가 모두 혜화아트센터>에서 열렸는데, 길>전은 큰 전시실, 홍범도>전은 맞은 편의 소전시실에서 열렸는데, 기간도 1월17일부터 2월5일까지의 3주일로 같았습니다.  홍범도>전에 전시된 것이 30여개 작품인데, 모두 홍범도 수묵전기에 수록된 것입니다. 화집에는 더 많은 그림이 실렸지만 전시공간이 모자라 모두 전시되지는 못했다는군요. 따라서 수묵전기를 보면 홍범도>전의 완전판을 볼 수 있는 셈입니다. 전시된 작품 중에서 제 마음을 가장 울린 것은 범도의 눈물(2024)> 두 점입니다. 감동은 감동이지만, 기쁨과 환희의 감동이라기보다는 애잔함과 분노가 곁들여..
[유준2025길] 1. 양구 가는 길(2024) 그날, 인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혜화동으로 향했습니다. 혜화아트센터>에서 유준 작가의 연례 개인전이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죠. 일 년에 한번 하는 전시회의 개막식(18일)을 놓쳤습니다. 비교적 급작히 결정된 일본 출장 때문이죠. 출장은 11일에 시작됐습니다. 12일에 고베에서 논문발표가 있었고, 이후 열흘 동안 고베와 교토와 오사카에서 최승희 선생의 간사이 공연을 조사했습니다. 성과는 좋았지만 피곤하기도 했고, 놓친 일도 많습니다. 그중 하나가 유준 화백의 전시회죠.  유준 화백의 연례 개인전을 처음 본 것은 2023년 1월이었는데, 저는 첫 전시회부터 홀딱 반했습니다. 수묵화로 이런 표현의 경지에 이를 수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물론 그것은 표현의 기법만이 아니라 표현의 내용까지를 포함한 느낌..
[유준2025길] 11. 가을동화(2024) 앞글에서 유준 화백이 ‘물을 잘 그리는 수묵화가’라고 쓴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내 마음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가을동화(2024)>입니다. 갯배가 물과 만나는 수면을 찬찬히 보면 그게 무슨 뜻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아주 가까이 가서 보면 그냥 군데군데 아무렇게나 먹이 번져 있고, 그 위에 꼬불꼬불하게 붓질 몇 번씩 한 것처럼 보이지만, 서너 걸음 떨어져서 보면 갯배머리가 물을 만나 일으키는 소용돌이와 함께 퍼져가는 물결이 참 생생하게 보입니다.  유준 화백의 가을동화>를 보면서 모네의 라 그루누이에르(La Grenouillère, 1869)>도 기억에 소환되더군요. 라 그루누이에르는 ‘개구리 연못’이라는 뜻인데, 모네와 르노아르가 같은 시기에 개구리 연못의 작은 섬을 그렸습니다. 버드나무가 딱 한..
[유준2025길] 10. 겨울(2024)과 겨울2(2024) 유준 화백의 2025년 길>전에 출품된 작품 삶(2023)>을 이야기하면서 아마다블람과 흰수염고래 사이에는 7천만년의 시간 차가 있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죠. 7천만년이라는 시간은 상상하는 것만도 그리 쉽지 않습니다. 인류가 수렵채취 생활을 청산하고 농사를 시작했다는 신석기시대가 ‘불과’ 7천년 전인데, 그 만 배의 시간에 해당하는 7천‘만’년이라니까요. 삶(2022)>은 극단적인 경우이겠지만, 같은 화폭에 서로 다른 시간대를 공존시키는 게 유준 화백의 취미인 것 같습니다. 오늘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거나, 약간의 여행으로 경험할 수 있는 장면들인데도, 그 장면을 비교적 온전히 이해하려면 몇십 년이나 몇백 년의 시간 여행이 필요한 것이지요.  겨울(2024)>과 겨울2(2024)>이 그런 경우입니다..
[유준2025길] 9. 남해의 꿈(2024) 2025년 길>전에 전시된 유준 화백의 담채 작품을 보면서 파란색의 마술사라고 했습니다만, 그렇다고 다른 색에 기량이 덜하다는 게 절대 아닙니다.  예컨대 그는 노란 색으로도 큰 효과를 냅니다. 남해의 꿈(2024)>과 봄(2024)>이 그런 예이죠. 또 그 두 점의 작품 사이에 낀 응봉산의 봄(2024)>도 마찬가지입니다. 2025년의 길>전에 노랑이 두드러진 이 세 작품 나란히 걸린 것을 보면, 유준 화백이 고흐 못지 않게 노랑을 쓸 줄 아는 작가임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닌지 생각될 정도죠.  재밌는 것은 이번 길>전에 전시된 남해의 꿈(2024)>과 봄(2024)>의 구도가 비슷하다는 겁니다. 사실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같죠. 둘 다 바닷가 풍경인데 수평선은 화폭의 상단 3분의1지점에 형성되어 ..
[유준2025길] 8. 수퍼스타(2025) 제가 실수가 믾은 사람입니다. 인생을 전부 돌아봐도 실수한 게 많고, 지금도 순간순간 실수를 저지르고 있을 겁니다. 오죽하면 올해의 개인적 표어를 다음 번엔 더 나은 실수(Let's Make Better Mistakes Next Time.)>로 정했겠어요? 이 나이를 먹고도... 공자님은 어느 나이를 지나고 나니까 하고싶은 대로 해도 실수가 없더라고 하셨다는데, 저는 아직 멀었습니다.  지난번 유준 화백의 길>전 포스팅에서 수퍼스타(2025)>를 잠깐 언급하면서, 십자가에서 피흘히는 에수님과 그 발 아래 웅크린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지나가듯이 한번 했는데, 거기가 실수였네요. 저는 얼른 보이는대로, 웅크린 주인공이 가난과 추위를 견뎌야 하는 이 사회의 약자 분들을 가리키나 보다, 하고 생각했고, 기독교가..
[유준2025길] 7. 유준 화백의 파랑 고흐는 노랑색을 기가 막히게 잘 썼죠. 아를르의 카페나 해바라기, 심지어 몇몇 자화상에서도 노랑색이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모델을 구할 수 없어서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는 게 평론가들의 중평이더군요.) 게다가 별밤에서 보이는 밤 하늘의 별빛과 물에 비친 가스등 불빛은 경이롭죠. 슬픔이나 외로움 조차도 따뜻해서 희망과 낙관을 버리지 못하게 합니다. 모네는 녹색과 흰색을 좋아했던 것 같은데, 전자는 수련, 후자는 루앙 성당 연작을 하도 많이 봐서 제게 그런 인상과 기억으로 남았는지도 모릅니다.  유준 화백은 파란색이죠. 그는 수묵 작가니까 색채에 얽매일 필요가 없는 화가지만, 그의 담채 중에서는 항상 파란색이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편견일 수도 있으나, 적어도 제게는 그렇습니다. 올해의 길>전에도 수묵담채..
[유준2025길] 5. 스키장에서(2022) 어린 시절 저는 엉뚱한 생각이나 말을 자주 했다고들 합니다. 그럴 때마다 “넌 만화를 많이 봐서 그래” 하고 핀잔을 들었지요. 그렇다고 제가 뭐 만화를 끼고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다른 책들도 읽었는데, 만화책도 책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만화책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만화가가 되고 싶은 생각도 하긴 했었습니다. 그림을 보기 시작하면서 “넌 인상파만 그렇게 보냐?”하는 핀잔도 들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인상파 섹션에 자주 갔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제가 또 광팬은 아닙니다. 다만 화가가 대상을 저렇게도 보거나 저렇게 그릴 수도 있구나, 하고 감탄하곤 했는데, 그게 주로 모네나 고흐였을 뿐이죠. 다른 사람들의 그림이나 조각도 자주 봅니다.  유준 작가의 2025년 길>전에는 설경이 많다는 점을 앞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