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종록 선생님께서 페이스북에다가 유준 작가의 2025년 개인전인 <길>전에 출품된 <꿈(2025)>에 대해서 좋은 글을 써 주셨네요. 저도 장엄한 아마다블람과 노랗게 불 켜진 쪼끄만 텐트에 대해서 잠깐 소감을 말씀 드린 적이 있지만, 심종록 선생님은 이 멋진 그림을 설 인사로 보내셨습니다.
저는 또 전시장에 <꿈>과 짝을 이루어 나란히 전시된 <삶(2022)>에도 마음의 울림이 있습니다. 아마다블람을 배경으로 한 사람이 가파른 눈길을 걸어 올라가고 있고, 산 정상께에는 거대한 고래가 공중을 헤엄치고 있는 바로 그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2년 전인 2023년 1월에 개최된 유준 작가의 개인전 <화양연화>에 처음 전시된 그림입니다. <혜화아트센터>가 10주년을 맞은 특별 기획전이기도 해서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심지어 <화양연화>전의 포스터와 프로그램에 소개되기도 했죠. 유준 작가도 스스로 자신감을 내비친 작품이라는 뜻입니다. <화양연화> 포스터에는 <삶>이, <길>전 포스터에는 <꿈>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유준 화백의 아마다블람 사랑도 확인되는 듯 하고...
그런데 저는 이 <삶>이, 작년의 <묵의 사유>전에도 전시되고, 심지어 올해의 <길>전에도 전시가 계속된다는 게 이해하기가 어렵더군요. 빨간 동그라미 딱지가 붙어도 벌써 붙었어야할, 구상과 상징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탁월한 작품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히말라야의 설봉 위에 고래를 그렸다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상징성이 뛰어나고, 작가의 상상력이 놀라운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히말라야 꼭대기에 고래라니...
그런데 이는 사실과 무근한 것도 아닙니다. 약 7천만년 전인 백악기 후기 때만 해도 히말라야 지역은 깊은 바다였다고 합니다. 대륙 판이론에 따르면 약 5천만년 전쯤 인도-호주판이 유라시아판과 처음 만나면서 바다에 물이 빠지기 시작했고,
이후 인도-호주판이 연간 15센티미터 속도로 남에서 북으로 밀어 붙이는 바람에 그 접점이 점점 융기되어 오늘날의 히말라야 산맥이 형성됐다는 겁니다. 이 지역은 지금도 연간 15밀리미터의 속도로 높아지고 있다는군요.
그래서 1백년이 지나면 히말라야의 산봉우리들은 평균 1.5센티미티가 높아지게 되므로, 아마다블람의 높이도 오늘날의 6,812미터에서 6,813.5미터로 높아지게 됩니다. 네, 아마다블람도 매년 자라고 있는 거죠.
이런 속도가 중단없이 계속되었다고 가정하면, 아마다블람은 7천만년 전에는 수면 아래 3천미터 지점에 잠겨있었을 것입니다. 그때도 고래가 있었다면 충분히 헤엄치면서 먹이를 잡아먹을 수 있는 깊이였던 겁니다. 에베레스트 꼭대기 부근에서 암몬조개나 삼엽충의 화석이 발견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겁니다.
또 진화론에 따르면 포유류가 지구상에 등장한 것이 2억년 전이라고 하니까, 고래 정도는 얼마든지 진화해서 존재할 수 있었겠죠? 아마다블람과 고래의 인연은 이미 그때 시작된 겁니다.
따라서 유준 작가의 <삶>에는 거대한 고래와 장엄한 설봉과 함께 7천만년의 시간이 함께 그려져 있는 셈이지요. 어찌보면 아마다블람과 흰수염고래는 <삶>의 조연이고, 주연은 7천만년이라는 시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7천만년이라는 시간도 대수롭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구의 역사가 약 46억년이라고 하니까요. 46억년 전을 새벽0시라고 치면, 고래 등의 포유류가 시작된 2억년 전은 밤11시15분, 아마다블람이 바닷속 3천미터 지점에 잠겨있던 7천만년 전은 밤11시45분에 해당하니까요.
그로부터 지금까지 겨우 15분이 지났을 뿐인데, 아마다블람이 약 1만미터 상승한 거죠. 그리고 아마다블람 밑에서 힘겹게 눈길을 올라가는 인간이 지구상에 등장한 것은 밤11시59분58초입니다.
이 그림은 슬쩍 보아도 멋있지만, 찬찬히 보면 엄청난 그림입니다. "오래보아야 사랑스럽고, 자세히 보아야 이쁜 것"은 꽃이나 사람뿐이 아닌 것이지요. (jc, 2025/1/30)
'유준2025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준2025길] 8. 수퍼스타(2025) (0) | 2025.02.06 |
---|---|
[유준2025길] 7. 유준 화백의 파랑 (0) | 2025.02.06 |
[유준2025길] 5. 스키장에서(2022) (0) | 2025.02.06 |
[유준2025길] 3. 꿈(2025) (0) | 2025.02.06 |
[유준2025길] 2. 우리들의 초상(2024) (0) | 2025.0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