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희가 마르세유에서 조선무용을 공연한 1939년 3월1일은 기미년 만세운동 20주년 기념일이었다. 일본의 강점과 식민지배에 항거해 조선민중이 봉기했던 혁명적 사건이 일어난 지 벌써 20년이 지났지만, 기미 만세운동은 조선인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다.
3.1만세운동은 조선 사회를 밑바닥부터 뒤흔든 엄청난 사건이었다. 독립국 지위를 잃고 보호국(1905년)과 식민지(1910년)로 전락한 조선 민중의 울분이 폭발한 사건이었고 독립을 되찾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대내외에 선언한 사건이었다.
독립이 되기까지는 그로부터 25년이 더 걸렸지만 만세운동은 조선의 많은 것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조선인들의 민족의식을 고양시킨 한편,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구성되는 계기가 되었고, 일본 제국주의가 무단통치를 포기하고 문화통치로 전환하게 하는 전기가 되었다.
1919년 3월1일 고종 인산일을 계기로 조선 전역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5월말까지 3개월 동안 계속되었다.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의 통계에 따르면 전국의 만세 시위건수 1,542회, 참여인원이 2백만명, 사망자 7,509명, 부상자 15,961명, 피검자 46,948명이라고 했다. 비폭력 무저항 만세운동의 규모는 생각보다 매우 컸고 오래갔다.
예수 탄생을 기준으로 서양력이 기원전과 기원후를 가르듯이 조선의 일제 강점기는 ‘만세전’과 ‘만세후’로 나뉘었다. 염상섭(廉想涉, 1897-1963)의 <만세전(萬歲前, 1922)>은 만세운동 직전인 1918년 말의 암울한 사회적, 개인적 상황을 서술한 작품이다. (이 작품이 1922년 7월호 <신생활>에 처음 연재되기 시작했을 때는 제목이 <묘지>이었으나 2년 후 <시대일보>로 옮겨져 다시 연재되었을 때에 <만세전>으로 바뀌었다.)
한편 <경성의 다다, 동경의 다다(2015)>의 저자 요시카와 나기(吉川凪)는 조선 최초의 다다이스트 고한용이 ‘만세후’에 일본 유학을 떠난 많은 조선 청년들 중의 하나였다고 서술했다. 만세후 총독부가 이른바 ‘문화통치’를 시작했고, 그 일환으로 조선 청년들이 일본 유학길에 오를 때 충족해야 할 까다로운 요건들이 완화되었던 것이다.
일본의 대학제도가 변했다. 1920년부터 게이오(慶應), 와세다(早稲田), 릿쿄(立教), 메이지(明治), 주오(中央), 호세이(法政), 니혼(日本) 등의 사립 대학교들이 1918년의 ‘대학령에 따르는 대학’으로 인정받았으므로 조선 젊은이들의 일본 유학의 문은 더욱 넓어졌다.
최승희보다 열 살 위였던 오빠 최승일(1901-1966)은 만세운동 당시 배재고보 학생이었다. 최승일이 배재고보를 중퇴한 것도 만세운동에 참가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많은 고보생들이 만세운동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퇴학 처분을 받거나 스스로 자퇴하곤 했었다.
최승일도 배재고보를 중퇴한 뒤, 일본 유학길에 나섰다. 당시만 해도 최승희 집안이 부유하던 시절이었다. 최승일은 1921년 4월 약간의 영어 학원 수강 끝에, 혹은 직접 니혼 대학 미학과에 입학한 것으로 보인다. (니혼 대학에 미학과가 설치된 것은 1921년 3월이었다.)
니혼 대학은 조선인 학생들이 선호했던 사립대학이었다. 특히 미학과는 더욱 그랬다. 요시카와 나기(吉川凪)는 1921년 니혼 대학 미학과 선과 입학자 255명 중에서 상당수가 조선인 학생들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고보를 졸업했거나 중퇴한 학생들도 서류 전형만으로 쉽게 입학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야간 수업이 가능했기 때문에 고학생도 공부할 수 있었다.
최승일과 동시대에 니혼대학 미학과에 입학했던 사람들로는 고한용, 마해송, 고한승, 김영팔, 임화, 김기림, 박용구, 김춘수 등이었고, 동기생은 아니었더라도 한설야, 김장현, 송덕만, 장기석, 김희명, 이재유, 김천해, 이육사 등도 비슷한 시기에 니혼 대학에서 수학했었다.
이들은 같은 캠퍼스에서 공부하면서 활발하게 교류했다. 민족주의와 무정부주의, 다다이즘에서 사회주의에 이르기까지 이념적 스펙트럼은 다양했더라도 ‘만세운동’을 겪은 세대라는 점에서 공통되었다.
이들은 후일 조선의 문예 운동과 사회 운동의 주인공들이 되었다. (2023/3/2, 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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