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의 무희(半島の舞姬)’는 일본 언론이 붙여준 최승희의 별명이었다. 일제의 조선 강점 이후 일본인들은 일본열도를 ‘내지(內地),’ 조선을 ‘반도’라고 불렀다. 따라서 ‘반도의 무희’라는 별명은 ‘조선의 무용가’라는 뜻이었다.
‘내지’에 대한 상대어로서 ‘반도’는 때로 하대와 경멸의 뜻을 갖기도 했지만 최승희의 경우는 그런 비칭으로 사용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최승희 자신도 ‘반도의 무희’라는 별명을 불쾌하게 여기거나 회피하지 않았고, 오히려 기꺼이 받아들였다.
최승희가 첫 번째 미주순회공연에 나섰던 1938년 그의 공연 일정은 순조롭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엔젤레스에서의 공연이 미국내 극렬한 반일 분위기 속에서 보이콧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같은 공연 보이콧은 뉴욕에서도 계속되었고, 결국 흥행사는 최승희와 맺었던 계약을 파기했다.
당시 미국인들은 1937년 7월에 시작된 일본의 중국침략을 비난했는데, 특히 일제의 강력한 보도 통제에도 불구하고 난징 대학살이 미국에 알려지기 시작한 이후 일제 불매운동이 시작되었다. 여기에는 일제 농산물이나 공산품뿐 아니라 일본의 문화 상품도 포함되었다. 일본 여권으로 순회공연에 나섰던 최승희의 무용공연도 불매운동에 포함되었던 것이다.
이때 최승희는 일제 당국에 의해서도 ‘배일(排日)분자’로 의심을 받았다. 미주 공연의 홍보에서 자주 ‘조선인 무용가(Korean Dancer)'라는 표현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최승희는 로스엔젤레스 주재 일본 영사관을 찾아가 이를 해명했다. 강준식의 <최승희 평전(2012:213)>에 따르면 그 해명은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최승희라는 이름에 붙는 ‘반도의 무희’라는 수식어를 영어로 옮기면 글자 그대로는 ‘The Dancer of the Peninsula’가 되겠지만, 그렇게 번역해서 알아보는 미국인이 있겠느냐? 일본에서는 조선을 ‘반도’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반도의 무희’는 ‘코리언 댄서(Korean Dancer)’로 번역하는 게 맞지 않겠느냐? (이 같은 해명에) 영사관 측에서도 납득했다.”
이러한 해명이 가능했던 것은 ‘반도의 무희’라는 표현이 최승희를 가리키는 별명으로 확고히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별명이 확립되었던 데에는 그보다 2년 전에 개봉했던 최승희의 자전적 무용영화 <반도의 무희(1936)> 덕분이기도 했다.
최승희는 이시이무용단의 수석무용가 시절인 1934년 9월20일 도쿄의 히비야공회당에서 제1회 무용발표회를 가졌고, 이때부터 일본 무용계의 비상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신코키네마(新興キネマ) 영화사는 최승희에게 영화출연도 제의했다.
이 영화출연은 최승희가 이시이무용단에서 독립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계약 체결 직후 안막은 영화의 대본을 조선 태생의 일본인 작가이자 와세다 대학의 동창인 유아사 가츠에(湯淺克衛, 1910-1982)에게 부탁했다.
이 원작 제의를 받아들인 유아사 가츠에는 1935년 8월11일부터 <주간 아사히>에 4회에 걸쳐 게재한 기고문 “성난 파도의 외침(怒濤の譜): 무희 백성희의 반생기”를 연재했다. “성난 파도의 외침”는 소설의 형식을 취했지만 최승희를 인터뷰해서 집필한 넌픽션 작품으로, 작중의 주인공 백성희는 곧 최승희였다.
유아사 가츠에의 원작 소설은 마츠모토 에이이치(松本英一)의 각색, 곤 히데미(今日出海)의 감독, 미키 시게루(三木茂)의 촬영과 편집으로 완성되었고, <반도의 무희>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다. 평전들에 따르면 <반도의 무희>는 작품성이 형편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승희의 자전적 영화라는 점, 그리고 영화 중에 최승희의 무용 장면이 삽입되었다는 점 때문에 이후 4년간 흥행되었다고 한다.
김찬정의 평전 <춤꾼 최승희(2003:155)>에 따르면 최승희의 자전적 무용영화 <반도의 무희>의 개봉일이 1936년 3월1일, 삼일절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2년 후인 1938년 3월1일 최승희는 마르세유 공연을 단행했다. 역시 삼일절이었다. 우연이었을까? (2023/3/1, 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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