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살 플레옐> 공연 팸플릿은 어떻게 마르세유에 전해졌을까? 요즘이면 사진을 찍어 문자나 이메일로 보낼 수 있겠지만, 당시는 가장 빠른 통신수단이 전신이었다.
1월31일의 공연 팸플릿의 내용이 3주나 지난 2월24일 신문에 게재된 것을 보면 시간이 촉급했을 리 없고, 더구나 이런 장문의 텍스트가 전신으로 보내졌을 것 같지 않다. 아마도 인편이거나 우편이었을 것이다. 이 팸플릿의 내용을 마르세유에 전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1939년 2월24일의 <르 쁘띠 프로방살(Le Petit Provençal, 4면)>의 기사가 그 답을 주었다. 이 기사는 <르 쁘띠 마르세예>의 기사와 똑같았다. 4줄로 작성된 기사 제목도 같았고, 세 문단으로 작성된 기사의 본문도 완전히 같았다.
당시 마르세유 최대부수의 신문 <르 쁘띠 마르세예>는 공화우파 신문이었고, 부수가 둘째였던 <르 쁘띠 프로방살>은 공화좌파 신문이었다. 둘 다 공화주의를 표방했으나 성향과 운명은 반대였다. 최승희 공연 6년 후 독일군이 프랑스를 점령하자 <르 쁘띠 마르세예>는 히틀러의 괴뢰정부 비시체제에 협력했고, <르 쁘띠 프로방살>은 페탱이 이끄는 비시체제에 저항했다.
<르쁘띠 프로방살>은 비시 체제에 의해 1944년 폐간되었고 편집장 레온 방칼(Léon Bancal)은 투옥되었다가 나치가 쫓겨간 뒤 석방됐다. <르쁘띠 마르세예>는 프랑스가 해방되자 샤를르 드골에 의해 폐간되었고, 편집장 알베르 레준(Albert Lejeune)은 나치협력 언론인으로 사형에 처해졌다.
이 두 신문이 최승희 마르세유 공연에 대해서는 완전히 같은 기사를 같은 날 게재했다. 그뿐 아니다. 마르세유의 두 유력 경쟁지 <르쁘띠 마르세예>와 <르쁘띠 프로방살>이 최승희 공연 소개 기사를 낸지 이틀만인 2월26일 극우파 신문 <르 라디칼 드 마르세유>와 해상(海商) 전문신문이었던 <르 세마포르 드 마르세유(Le Sémaphore de Marseille)>도 최승희 보도에 합류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보도 의뢰문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최승희의 흥행사 <국제예술기구>가 마르세유 공연을 앞두고 마르세유에서 발행되는 모든 신문사에 보도의뢰문을 발송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보도의뢰문에 <살 플레옐> 팸플릿의 소개문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르 쁘띠 프로방살>의 2월25일자 기사를 보면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2월24일의 기사의 후속기사로 실린 2월25일자 4면에 실린 이 기사를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어제 우리는 극동의 가장 위대한 예숡가 최승희가 다음 주 수요일 <오페라 뮈니시팔>에서 갈라 공연을 가질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와 함께 이 새로운 무용예술의 스타가 조선무용을 부활시켰던 정황을 소개했다.
“미국과 최근 파리에서도 큰 성공을 거둔 최승희는 지난 수년간 일본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극동에서 여성해방은 최근의 일이다. 조선의 가장 유서 깊은 양반 가문의 막내딸이 무용을 경력으로 삼겠다고 나선 것은 괴이한 일이었다. 조선의 수도 서울의 가장 존경받는 시민인 부친 최준현씨는 딸의 결정에 반대했다. 그러나 딸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시이 바쿠 문하에 들어갔다. 최승희는 신속하게 두각을 보였고 조선무용을 부활시키려 노력했다. 마침내 그녀는 다음 수요일, 파리의 <살플레옐>을 열광시켰던 무용작품을 마르세유에서 발표한다.”
<르 쁘띠 프로방살>의 이 후속기사는 전날의 기사에 누락되었던 <살플레옐> 팸플릿 소개문의 전반부를 거의 그대로 옮긴 것이다. 다시 말해 2월24일과 25일의 두 기사를 합치면 <르 쁘띠 프로방살>은 <살 플레옐> 팸플릿 소개문을 전재한 셈이 된다.
<살 플레옐> 팸플릿의 소개문이 마르세유 신문에 전재되었다는 것은 사전 홍보가 치밀하게 진행되었다는 뜻이다. 이렇게 홍보에 이르기까지 주도면밀하게 준비된 마르세유 공연이라면, 그 날짜의 선택에도 마찬가지로 주의를 기울였을 것이다. 즉, 마르세유 공연은 3월1일에 열리도록 오래 전부터 계획되었고, 면밀하게 준비되었다는 뜻이다. (2023/3/1, jc)
'최승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르세유 공연] 8. 만세전과 만세후 (2) | 2023.03.03 |
---|---|
[마르세유 공연] 7. 프랑스혁명 기념의 열기 (0) | 2023.03.03 |
[마르세유 공연] 5. <살 플레옐> 공연의 팸플릿 (0) | 2023.03.01 |
[마르세유 공연] 4. 마르세유의 첫 기사 (0) | 2023.02.28 |
[마르세유 공연] 3. 시립 기록보관소 (0) | 2023.0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