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프랑스 순회공연을 단행했던 최승희와 안막은 마르세유 공연을 3월1일에 갖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였던 것 같다고 추론했었다. 그래서 파리에서 더 멀리 떨어진 칸에서 먼저 공연한 후, 다시 마르세유로 돌아와 3월1일의 공연을 하게 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동선을 무시하고 순서를 바꿔서라도 공연을 특정한 날에 맞추려고 했다면, 그 장소 혹은 그 날짜에 뭔가 중요한 의미가 있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나는 1939년 3월1일이 삼일절 20주년 기념일이었고, 프랑스혁명 중심지의 하나였던 마르세유가 1939년에 대혁명 150주년을 맞았다는 점 때문에 최승희와 안막 선생이 “삼일절 마르세유 공연”을 추진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유일한 가능성이었을까? 특정 날짜에 특정 지역에서 공연을 여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가능성은 두 가지였다. 칸 공연을 2월26일에 열기 위해 마르세유 공연을 뒤로 미뤘거나, 마르세유 공연을 3월1일에 열기 위해 칸 공연을 앞으로 당겼을 가능성이 그것이다.
그래서 나는 2017년 6월6-7일 칸을 방문했을 때 1939년 2월26일, 혹은 그 전후 시기에 칸에서 특별한 상황이 전개되었는지 조사했다. 칸의 시립 문서보관소에 소장된 유력 일간지 <리토랄(Littoral)>은 전자화되어 키워드 검색이 가능했으므로, 1938년 하반기와 1939년 상반기의 기사들을 자세히 살폈다.
소장된 신문은 누락된 일자가 많아서 조사가 완벽했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검토된 신문 기사 중에는 이렇다 할 사항이 눈에 띄지 않았다. 즉 칸이나 인근 지역에서 2월26일의 최승희 무용공연과 관련될 수 있는 특별한 사건이 보도된 것은 없었다.
한편 <리토랄>의 1면에 보도되는 국제 뉴스에 따르면 당시 세계는 격동하고 있었다. 남쪽에서는 로마발 뉴스로 2월10일 선종한 교황 피우스 11세의 후임자를 선출하는 콘클라베 소식이 매일 상세히 보도되고 있었고, 북쪽에서는 독일의 신임 수상 히틀러가 헝가리와 보헤미아와 모라비아 등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어서 주변국이 긴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쪽에서는 스페인의 프랑코 반란군이 인민전선 공화국 정부를 거의 굴복시켰고,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중국 침략이 계속되면서 중국군의 저항이 치열해 지고 미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서구 열강들이 우려하고 있었다.
세계는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고 있었지만 칸은 태풍의 눈처럼 고요했다. 유럽과 아시아와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들이 전쟁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지만, 남프랑스의 해안도시 칸에서는 최승희가 무용 공연을 2월26일에 맞추려고 노력했을 만한 특별한 정황이 발견되지 않았다.
마르세유의 사정은 조금 달랐다. 국제 뉴스는 칸의 그것과 별반 다를 바 없었지만 프랑스 국내 뉴스와 마르세유 지역 뉴스난은 프랑스 혁명 기념행사에 대한 보도로 뜨거웠다.
신분제를 포함한 구체제(Ancien Régime)를 무너뜨린 프랑스 대혁명은 1789년 7월14일 파리 민중이 무기 탈취를 위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면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최승희가 프랑스 순회공연을 가졌던 1939년에는 150주년을 맞았다.
프랑스 대혁명 1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프랑스 중앙정부를 비롯한 각급 정부는 특별 위원회를 구성하고 행사예산을 편성했고, 학계에서는 학술대회를, 문화예술계는 각종 문화행사와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행사들은 파리와 각 지방의 신문들이 일제히 보도하고 있었다.
마르세유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1789년 7월말 프랑스 각지의 의용군의 파리로 집결할 때, 마르세유 의용군도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를 부르며 파리에 입성했고, 이 노래가 후일 프랑스 국가로 채택되었기 때문에, 마르세유는 대혁명의 주역으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1939년에도 마르세유는 파리에 못지않은 대혁명 기념 열기에 휩싸였다. 주요일간지 <르 쁘띠 마르세예>와 <르 쁘띠 프로방살>을 비롯한 거의 모든 일간지와 주간지, 월간 잡지들이 경쟁적으로 프랑스 대혁명 150주년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었다. (2023/3/2, 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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