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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100장면

[최승희100장면] 5. 세계 공연의 첫 기획

(질문 1) 최승희는 세계 순회공연을 언제 처음으로 기획하기 시작했을까? (질문 2) 미주의 일본인 교포신문들은 어떻게 일본 본토의 신문보다 먼저 최승희의 세계 순회공연 뉴스를 보도할 수 있었을까? (질문 3) 세계 순회공연을 알리는 첫 기사가 최승희를 일본의 아르헨티나라고 불렀던 까닭은 무엇일까?

 

 

최승희가 처음으로 세계 순회공연을 기획하기 시작했던 시기는 언제였을까? 최승희 자신은 이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을 남기지 않았으므로, 언론이 그녀의 세계 순회공연에 대해 보도하기 시작한 시기를 통해 추측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최승희의 세계 순회공연 소식이 처음으로 언론에 보도된 것은 193510월이었다. 19351018일자 호놀룰루의 <하와이호치(布哇報知)신문>(2)과 씨애틀의 <타이호쿠(大北)일보)>(1)가 최초로 이 소식을 보도했다. <타이호쿠일보>의 보도는 다음과 같았다.

 

 

“(제목) 조선인 무용가 최승희양, 세계적으로 진출, (기사 본문) [18일 도쿄발] 일본의 아르헨티나로 인기를 끌고 있는 최고 수준의 조선인 무용가 최승희양은 이번에 더욱 세계적인 무용가가 되기 위해, 내년 봄 4월경에 세계 무용 순회공연의 길에 오르게 되었다. (일본) 국제관광청은 그녀의 독특한 무용을 일본의 명물로 세계에 알리기 위해, 최근 최승희를 소개하는 영문 팜플렛을 발행하여 전 세계에 배포했다.”

 

다음날인 1019일에는 <니치베이(日米)신문>(3)<신세카이아사히(新世界朝日)신문>(3)<타이호쿠니포>와 거의 같은 내용을 단신으로 보도했다. 같은 날짜의 <도쿄니치니치(東京日日)신문>(2)는 아주 긴 기사를 보도했는데, 그 첫 부분은 다음과 같다.

 

일본의 아르헨티나로서, 지금 인기의 최고봉인 최승희 양이, ... 세계의 무용가가 되기 위해서 일본을 떠난다고 한다. 그 출발은 내년 봄 4,5월쯤이지만, 그러한 큰 포부를 가지고 독립 제2회 공연으로서 오는 22일 그녀의 신작 13개의 무용작품을 히비야 공회당에서 주야 2회 발표하면서 그 진가를 세상에 알리게 된다.”

 

하와이의 <하와이호치>와 씨애틀의 <타이호쿠니포>는 둘 다 미국의 일본인 교포신문이다. 샌프란시스코의 <니치베이신문>과 로스엔젤레스의 <신세카이아사히신문>도 마찬가지이다. 이 일본인 교포신문의 기사에는 모두 [18, 도쿄발]이라는 출처가 명시되어 있다. , 이 기사들이 1018일에 도쿄에서 전달 받은 기사들이라는 뜻이다.

 

 

이 기사들은 어떻게 전달되었을까? 통신사의 전신을 통해서였다. <니치베이신문>의 기사 출처는 [도쿄 18일 덴츠(電通)], <신세카이아사히신문>의 출처는 [도쿄 18일 렌고(聯合)]라고 표시되어 있는데, ‘덴쓰1906년에 설립된 일본전보통신사(日本電報通信社)’의 약자이고, ‘렌고1933년에 설립된 일본신문연합사(日本新聞聯合社)’의 약자이다. 즉 이 기사들이 두 통신사에 의해 따로따로 전송되었다는 뜻이다. <하와이호치><타이호쿠일보>에는 기사를 전송받은 통신사가 밝혀져 있지 않았다.

 

이 통신사들이 전송한 원기사는 모두 같았다. , 그것은 <도쿄니치니치신문>의 기사였다. 미주 일본계 신문들의 모든 기사는 <도쿄니치니치신문>의 기사가 서술한 최승희의 별명, ‘일본의 아르헨티나라는 독특한 표현을 그대로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송된 도쿄의 원기사가 1019일자인데 호놀룰루와 씨애틀의 신문이 이를 1018일에 보도했다는 사실이 기이했다. 그것은 도쿄의 기사가 태평양을 건너가면서 날짜변경선을 넘어 하와이와 미국 서해안에 도착하면서 날짜가 하루 앞당겨졌기 때문이었다.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엔젤레스에서는 전송받은 기사를 당일이 아니라 다음 날의 신문에 보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쿄의 기사와 같은 날짜에 보도된 것으로 나타난 것도 이 날짜변경선 때문이었다.

 

라 아르헨티나(La Argentina)는 스페인 출신의 민속무용가 안토니아 메르세 이 루케(Antonia Mercé y Luque, 1890-1936)의 예명으로, 중국의 메이란 팡(梅蘭芳, 1894-1961), 인도의 우다이 샹카르(Uday Shankar, 1900-1977)와 함께 1920년대와 30년대 초까지 세계적인 민속무용가로 활발하게 공연활동을 전개했다. 라 아르헨티나가 1936년에 늑막염으로 사망한 후에는 최승희가 일본의 아르헨티나,’ 또는 조선의 아르헨티나라고 불리곤 했었다.

 

최승희는 조선의 파블로바(Pavlova of Korea)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는 러시아의 발레리나 안나 파블로바(А́нна Па́вловна Па́влова, 1881-1931)처럼 탁월한 무용가임을 가리키는 별명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의 안나 파블로바는 무용경력을 고전발레로 시작했지만, 세르게이 디아길레프(Sergei Diaghilev, 1872-1929)가 창설한 발레루소(Ballets Russes, 1909-1929) 무용단에서는 현대무용의 안무가 겸 무용가로도 활동했다. 유럽과 남,북미를 여행하면서 활발하게 전개된 그녀의 공연활동이 최승희에게 큰 자극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나 파블로바는 또 다른 러시아 출신의 무용가로,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후 일본으로 피난, 귀화해 활동했던 엘리아나 파블로바(Eliana Pavlova, 1897-1941, 일본 이름 키리시마 에리코, 霧島エリ)와는 다른 인물이다.

 

 

<도쿄니치니치신문>은 최승희가 제2회 도쿄공연의 수익을 여행 경비와 자선 사업에 사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공연은 최승희가 이시이 무용단에서 독립한 후에 개최한 첫 공연이었지만 흔히 제2회 도쿄공연이라고 불린다. 독립 전에 제1회 도쿄공연을 가졌기 때문이다.

 

최승희는 공연 수익의 일부를 (세계 순회공연의) 여행 경비로 사용하는 한편, 나머지 대부분은 첫 소산물을 신에게 바치는 마음으로, 백십자회를 통해 가난한 폐환자들에게 선물하기로 했다. 자신을 정화하고, 민속적 의식의 불을 피우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이 공연 수익을 그녀의 일생일대에 매우 중요한 새로운 길(首途)을 준비하는 데에 사용할 것이라고 한다.”

 

기사는 또 일본 철도성 관광국이 최승희가 세계 순회공연을 기획하는 데에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다면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최승희가 긴 여행을 떠나려는 결심에 큰 힘을 준 것은, 철도성의 관광국이다. 관광국에서는 전부터 그녀의 독특한 무용을, 일본의 명물로서, 세계에 소개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특히 이번에는 최승희를 소개하는 영문 팸플릿을 발행해 전 세계에 배포했다. 이 영문 팸플릿이 비상한 기대를 불러일으키면서 각국으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자신이 든든한 후원을 받고 있다는 사실과 출발을 재촉 받는 것처럼 느끼면서 큰 감동으로 순회공연을 가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어서 기사는 최승희 본인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해 보도했다.

 

아직 날짜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아마도 내년 봄이 될 것 같습니다. 목적은 다른 분들처럼 무용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제 자신의 조선풍의 춤과 동양적인 정서를 발표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개인적인 명예를 얻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조선에서 태어난 저로서는 서양무용의 수법으로 조선무용을 외국인의 정감에 호소함으로써 조선이 가진 오랜 문화의 빛나는 지방색을 세계에 이해시키고 싶습니다. 저는 조선풍, 더 나아가 언젠가는 동양풍의 무용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작품들을 레퍼토리로 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끝으로 최승희는 철도성 관광청이 영문 팸플릿을 발간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재정적인 지원을 받게 되지는 않았다고 밝혔고, 기사는 그것을 최승희의 포부라고 설명했다. 최승희가 정부 지원을 구하지 않고 자비로 세계 순회공연을 추진한 것은, 그럴 수 있는 자금을 저금해 두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부의 지원을 받음으로써 일본 정부의 요구에 종속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게는 물질적 후원이 전혀 없습니다. 가난하게 여행하고 혼자서 춤을 추면서 지구를 돌아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편, 조선에서는 19351022일자 <동아일보>(3)가 최승희의 세계 순회공연을 처음 보도했다. 도쿄의 기사보다 3, 하와이와 씨애틀의 기사에 비하면 4일 늦은 보도였다. 더구나 최승희의 신작무용발표회의 날짜에 오보를 냈다. 기사 본문에서는 공연일을 1022일이라고 올바로 밝혔으나 부제목에서는 21일이라고 서술해 혼란을 준 것이다. 다만 이 공연은 일본 도쿄의 히비야 공회당에서 열렸으므로 조선의 독자들에게 실제적인 피해는 없었을 것이다.

 

최승희의 세계 순회공연에 대한 뉴스가 19351018일에 처음 보도되었던 것은 뜻밖이다. 당시는 최승희가 이시이 무용단에서 독립한지 5개월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고, 독립 이후의 첫 공연(19351022)을 개최하기 3일전이었기 때문이다.

 

즉 최승희는 스승으로부터 독립해서 독자적인 공연활동을 시작하자마자 이미 세계로 진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jc, 2026/6/30) 조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