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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100장면

[최승희 100장면] 53. 가족사진 3: 익선동

(질문 1) 친가와 시가 가족이 함께 찍은 최승희의 가족사진은 언제 어디서 촬영되었을까? (질문 2) 이 가족 사진에서 안막의 부친 안창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질문 3) 최승희의 언니 최영희가 이 가족사진에 포함되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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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의 가족사진이 한 장 더 있다. 다카시마 유사부로(高嶋雄三郞)와 정병호(鄭昞浩)<세기의 미인 무용가 최승희>(1994, 78)에 실린 사진인데, “자기 가족과 남편의 가족과 함께, 1936년 겨울이라고 설명되었다.

 

 

그러나 최승희의 일정과 동선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가족사진이 1936년 겨울에 촬영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면이 있다. 최승희는 19361월 교토와 나고야, 가나자와에서 공연했고, 2월에는 고베와 오사카에서 공연하는 한편 오사카 제4선거구의 중의원 선거에 입후보한 조선인 이선홍의 유세장 6개소를 따라다니면서 지지 연설했다.

 

또 최승희는 193611월에 홋카이도와 도호쿠 순회공연을 단행했고, 12월에는 공연이 없었지만, 도쿄에 머물렀다. 이어서 19371-2월에는 요코하마와 나고야, 교토와 고베에서 공연한 후에 220일부터 37일까지 조선 순회공연을 이어갔다. 이 조선 순회공연은 193712월 세계 순회공연을 출발하기 전에 진행했던, 이른바 도구 고별 공연의 일환이었다.

 

, 최승희는 1936년 겨울인 1-2월과 11-12월에 조선을 방문하지 않았고, 따라서 그녀가 시기에 경성을 방문해 이 가족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1936년에 최승희가 조선을 방문한 것은 43-4일의 경성 부민관 공연 때였다. 이는 그해 43일 개봉된 그녀의 자전적 무용 영화 <반도의 무희(半島舞姬)>(1936)의 홍보를 겸한 방문이었다. <삼천리> 19364월호(29)는 다음과 같이 최승희의 일정을 보도했다.

 

“(1936) 4월 초순에 조선에 돌아와서 부산, 대구, 경성, 평양, 신의주의 다섯 곳에서 공연을 마치고 만철(=만주 철도)의 초빙으로 그 길로 곧 펑티엔(奉天), 다롄(大連), 신징(新京) 등의 주요 도시에서 무용 행각을 한 뒤 초여름 5월에는 타이완의 초빙을 받아 지룽(基隆), 타이난(臺南), 타이베이(臺北) 등지에서 정열적 열대의 춤을 추리라고 한다.”

 

최승희의 경성 방문은 ‘1936년 겨울이 아니라 ‘1936년 봄(43-4)’‘1937년 겨울(220-37)’이었다. 다카시마 유사부로와 정병호가 설명한 ‘1936년 겨울이라는 말이 ‘1936년 말에 시작되어 1937년 초로 이어지는 겨울이라는 뜻이라면 그 서술은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19372-3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혼란을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가족사진이 19372-3월에 촬영된 것임을 확인해 주는 다른 사진들이 있다. 그것은 최승희의 의상, 구체적으로 그녀의 모피코트이다. 그녀가 발목까지 내려오는 밝은색의 모피코트를 입기 시작한 것은 193611월의 홋카이도와 도호쿠 순회공연 때였다.

 

예컨대 19361123일자 <도오(東奧) 일보>(2)에는 아오모리를 방문한 최승희 일행 10명이 동 신문사를 방문했다는 기사를 보도하면서 방문단의 사진을 게재했다. 이 사진 속의 최승희가 예의 모피코트를 입고 있었다. 이 시기 이전에는 최승희가 같은 모피코트를 입고 촬영된 사진이 발견된 바 없다.

 

 

그러나 1937년에 들어서는 이 모피코트가 매체에 자주 등장했다. 1937122일 자 <나고야 신 아이치(新愛知) 신문>(6)과 같은 날짜의 <나고야(名古屋) 신문>(6)에도 최승희의 모피코트 사진이 실렸고, 193726일 자 <고베(神戶) 신문>(6)과 같은 날짜 <고베 유신(神戶又新) 일보>(3)에도 같은 모피코트를 입고서 신문사를 방문한 최승희의 사진이 보도됐다.

 

 

최승희는 193722-3월의 조선 순회공연을 위해 217일 밤 11시에 도쿄를 출발, 23일의 여행 끝에 특급열차 아카츠키를 타고 219일 오후 25분 경성에 도착했는데, 이때도 예의 모피코트를 입었다.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사진집 <반도의 근영>(1937, 1)에는 부산잔교역에서 아카츠키 열차에 탑승하기 직전의 최승희 일행의 사진이 실렸는데 이때도 최승희는 모피코트를 입고 있었다.

 

 

1937220일의 <매일신보>(2)에도 오빠 최승일과 함께 매일신보사를 방문한 모피코트 차림의 최승희의 사진이 실렸고, 잡지 <백광>19374월호(102)에도 최승희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는데, 이 인터뷰가 시행된 날은 221일이었고 이 기사의 게재된 사진도 최승희의 모피코트 사진이었다.

 

, 최승희가 가족사진에 나타난 모피코트를 입고 조선을 방문한 것은 1937219일부터 37일까지의 조선 순회공연 때였고, 이 가족사진은 그중 경성과 인천 공연 시기였던 220-24일이거나 남선 공연을 마치고 경성으로 돌아왔던 32일부터 진남포 공연을 떠났던 35일 사이였을 것이다.

 

 

이 가족사진의 촬영 장소는 어디였을까? 사진 속의 가옥은 겉모습만으로 그 주소를 짐작하기 어렵다. 다만 사진 속에 최승희의 부친 최준현(崔濬鉉)의 모습은 있지만, 안막의 부친(의부, 즉 작은아버지)인 안창선(安昌善)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므로, 이 집은 팔판동 88번지의 시댁이라기보다는 최준현이 머물고 있던 익선동 56-8번지의 안막-최승희 명의의 가옥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이 가족사진에는 24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어린이가 8, 어른이 16명이다. 성인 중에 최승희의 일가가 5명인데, 최승희 본인(, 25), 모친 박용경(, 63), 부친 최준현(, 63), 큰오빠 최승일(, 35)과 작은오빠 최승오(, 31)는 금방 알아볼 수 있다. 최승희의 언니 최영희(33)는 이 사진에 나타나 있지 않은데, 아마도 김성동과 재혼한 후에는 최영희가 친정인 최씨 집안의 행사에 참여하기 어려워졌던 것으로 짐작된다.

 

 

안막의 가족으로는 안막 자신(, 26)과 형님 안보승(安輔承, , 29), 그리고 동생 안제승(安濟承, , 14)을 금방 식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밖의 인물들, 특히 여성들은 누구인지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이 사진 한 장을 제외하면 이들의 이름과 안막과의 관계를 알려줄 수 있는 다른 자료를 수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 가족사진의 성인 중에서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의 여성()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상당한 미모와 자신감 있는 자세로 보아 최승일의 아내인 배우 석금성이 아닐까, 하고 추정해 보았으나, 석금성의 체구가 훨씬 작은 편이기 때문에 같은 인물이라고 보기 어렵다. 제미나이(Gemini)에게 두 여성의 사진을 입력해 동일인인지 물었을 때는 체구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얼굴의 형태가 동일인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최승희의 딸 안승자의 양육을 돕기 위해 도쿄의 에이후쿠초까지 건너와 집안 살림을 맡아주었던 안막의 모친(실제로는 의모, 즉 작은어머니)이 누구인지도 궁금했지만, 이 사진만으로는 알아낼 수 없었다. 아마도 최승희 왼쪽의 나이든 여성()이거나 혹은 박용경의 오른쪽의 두 여성(번과 ) 중의 한 명일 것이다.

 

그밖에 다른 젊은 여성 4(번과 , 번과 )은 안막의 남매들, 즉 작은아버지인 안창선의 딸들일 것이다. 안막은 아들이 없는 작은아버지 안창선의 아들로 입양되었으므로, 이 자매들은 원래 안막의 사촌들이었으나 안막이 안창선의 아들로 입양된 후에는 형제자매의 사이로 바뀌어 자랐을 것이다.

 

 

이 가족사진의 아동 8명 중에서 이름이 확실히 밝혀진 것은 안막과 최승희의 딸 안승자(후에 안성희로 개명, ) 뿐이다. 안승자는 같은 시기에 찍은 사진이 2장이 더 있었다. 1937219일 이른 아침 부산잔교역에서 특급열차 아카츠키에 안막과 함께 올라탄 모습과 같은 날 오후 숙소인 경성 조선호텔의 양식당 팜코트의 썬룸에서 엄마 최승희와 함께 찍은 뒷모습이다. 제미나이는 이 두 사진 속의 안승자의 모습이 가족사진 속의 안승자()과 일치한다고 답변했다.

 

정병호는 평전 <춤추는 최승희>(1995, 20)에서 안보승이 이학남과 혼인하여 큰딸 인숙, 큰아들 병찬, 둘째 아들 병국(사망), 둘째 딸 영숙, 셋째딸 현숙, 셋째아들 병창을 두었다라고 서술했고, 같은 책(1995, 247)에서 둘째 딸 안영숙이 안승자와 나하고는 자매간이었다. ... 나이는 같았으나 생일이 승자는 7월이고 나는 4월이기 때문에 내가 언니가 되는 셈이라고 회상했다고 서술한 바 있다.

 

안막의 호적에 따르면 안승자는 7월생이 아니라 193284일 생이다. 여권 신청 기록에도 생년월일이 같은 날짜이다. 따라서 이 사진이 촬영된 19372월 안승자는 만 4(+7개월), 안영숙이 만 4(+10개월)이었다. 가족사진에서 안승자()과 비슷한 크기의 여아는 맨 앞줄 왼쪽에서 3번째의 소녀() 뿐이므로, 이 소녀가 안영숙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 추정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안영숙은 안보승의 둘째 딸이지만 그녀의 형제 중에서는 넷째 자녀이므로. 안보승의 자녀들이 모두 이 가족사진 촬영에 참여했다면 안영숙 보다 더 나이가 많은 자녀가 3(큰딸 인숙과 큰아들 병찬, 그리고 둘째 아들 병국)이 더 있어야 했다. 소학교 학생의 제복을 입고 있는 맨 앞줄 왼쪽의 두 소년(번과 )이 안병찬과 안병국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안영숙과 안승자보다 나이가 더 많은 안인숙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또 박용경 앞의 두 소녀(번과 )와 안승자의 양 옆에 서 있는 두 소년(번과 )이 누구인지도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따라서 사진 속의 인물들과 비교해 확인할 수 있는 다른 사진 자료가 발굴되지 않는 한 추정한 내용은 조사 연구의 출발점으로만 삼을 수 있을 뿐이다.

 

이 가족사진에는 최승일의 딸 최로사도 보이지 않는다. 최로사는 1931615일에 태어났으므로 사진 촬영 당시(19372월 말)에는 만 5(+8개월)였다. 안승자보다는 약 1년 이상 연상이고, 안영숙보다는 약 10개월 정도 연상이었을 텐데 사진 속에는 안승자, 안영숙보다 연장인 만5-6세의 소녀가 보이지 않는다.

 

정병호는 <춤추는 최승희>를 저술하면서 안보승의 인터뷰를 자주 인용했는데, 안보승이라면 이 사진을 찍게 된 이유와 과정, 시기와 장소, 그리고 사진 속의 인물들에 대해 자세히 증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병호는 이 사진에 대해 질문하지 않았던 것 같다.

 

따라서 이 가족사진에 촬영된 24명 중에서 이름과 모습을 연결해 확인된 사람은 10명뿐이다. 최승희 본인()과 그의 부친 최준현()과 모친 박용경(), 큰오빠 최승일()과 작은오빠 최승오(), 남편 안막()과 딸 안승자(), 시아주버니인 안보승()과 시동생인 안제승()이다. 이 가족사진의 다른 인물들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추가 자료가 발굴되기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한편, 정수웅의 <최승희>(2004, 355)>는 안제승의 아내 김백봉이 “(안막이) 지금 계시는 큰 서방님, 성악가 안위택 씨랑 같이 학교에 다니셨다라고 말했다고 서술했다. 이 안위택은 아마도 안보승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 서술이 강준식의 <최승희 평전>(2012, 127)이 김백봉을 인용하여 지금 계시는 큰 서방님, 성악가 안보승 씨랑 같이 학교에 다니셨는데 그분은 혼자 사시니까 학비가 충분했다고 서술한 것에 상응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안위택은 안보승의 다른 이름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jc, 2026/6/27) 조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