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역 가족사진은 언제 촬영된 것일까? 사진 속에서 최승희의 오른편에 서 있는 세 명의 여성은 누구일까? 최승일의 아내 마현경은 어째서 사진에 포함되지 않았을까?
최승희 가족이 남긴 또 한 장의 사진은 1927년 10월 24일 아침에 경성역에서 촬영한 것이다. 이 사진은 1927년 10월 25일의 <매일신보>(2면)에 실렸고, 사진에는 16명의 인물이 찍혀 있었다. 이들이 모두 누구인지 알아내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으나 시도는 해보기로 했다.
사진 설명에는 “석정막씨 일행 입성-경성역전에서. 바둑판무늬 외투에 책을 들고 섰는 여자가 가족에게 싸여 선 최승희양”이라고 서술되어 있었다. 따라서 왼쪽에서 여섯 번째의 여성이 최승희(①번)라는 점은 확실하다. 당시 최승희는 만 15세(+9개월)였다.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추론해 내어야 했다. 우선 최승희로부터 가까운 사람들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다. 최승희의 왼쪽 옆에선 흰 두루마기를 입은 장년의 남자는 부친 최준현(②번)이 분명했고, 최승희의 오른쪽으로 두 번째 여성이 모친 박용경(③번)이다. 이 두 사람의 모습은 일본의 여성잡지 1936년 2월호 <주부지우>(主婦之友, 416쪽)에 게재된 양친의 사진과 비교해 보면 확실하다.
최준현의 뒤편 왼쪽에 선 양복과 넥타이 차림의 남자는 최승희의 큰 오빠 최승일(④번)이고, 그의 왼쪽의 선 흰 두루마기에 이상한 모양의 모자를 쓴 남자는 작은오빠 최승오(⑤번)이다. 최승일은 당시에 25세, 최승오는 21세였다.
최승희의 오른쪽 뒤쪽에 선 양복 차림의 남자, 즉 턱수염을 기른 것처럼 보이는 남자는 최승희의 스승 이시이 바쿠(⑥번)이다. 이시이 바쿠는 턱수염을 기른 적이 없으므로 그를 첫눈에 알아보지 못했지만,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니 턱수염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 잉크 얼룩이었다. 사진을 현상하거나 인화할 때 생긴 얼룩일 것이다.
1927년 10월 25일의 <매일신보>(2면)에 실린 “최승희 양 금의환향”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석정 씨의 지구(知舊, 오랜 친구) 제씨는 물론 최승희 양의 어머니, 아버지, 오라버니, 언니 일가족이 가득히 모여 기차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면서 “일행은 역에서 내리는 길로 정거장 앞에서 최승희 양과 막 씨의 남매와 기념사진을 박은 것이 곧 본 면에 실린 사진”이라고 서술했다.
같은 날짜 같은 신문의 3면에도 최승희 관련 기사가 실렸는데, 여기에서도 “그(=최승희)는 24일 아침 경성역에 내리자, 경성역까지 출영한 어머니, 아버지, 오빠, 언니에게 어린아이와 같이 매달려 기쁜 눈물을 뿌”렸다고 보도했다.
이날 최승희를 마중하기 위해 부모와 오빠들뿐 아니라 언니도 출영했다고 했으므로, 당연히 이 사진에 모습이 찍혔을 것이다. 언니 최영희(⑦번)는 최승희의 바로 오른쪽의 젊은 여성이었고, 1904년생인 최영희는 당시에 23세였다.
정병호는 평전 <춤추는 최승희>(1995, 18쪽)에서 “언니 영희는 서울 진명여학교를 졸업하고 경기도 포천군 창수면에 사는 이근영과 혼인하였으나 이혼했”고 “그 뒤로 다시 서울에 사는 김성동과 재혼했으나 또 실패하고 집으로 돌아와 살았”다고 서술한 바 있었다.
또 최승희는 그녀의 조선어 자서전 <최승희 자서전>(1937, 30쪽)에서 1926년 3월경 “가여운 언니(언니는 그때 불행한 경우에 있었다)”라고 서술했는데, 이는 최영희가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하고 집에 돌아와 있었던 시기였고, 따라서 1927년의 경성역 출영 때에 최승희를 맞으러 나올 수 있었다.

한편, 1927년 10월 이시이 무용단의 경성 공연에 참가한 단원은 모두 7명이었다. 남성 무용수는 이시이 바쿠(石井漠)와 스기모토 스나오(杉本直)의 2인이었고, 여성 무용수는 이시이 코나미(石井小浪), 이시이 에이코(石井榮子), 이시이 미에코(石井美津子), 야마노 하루에(山野春枝), 그리고 최승희(崔承喜)의 5명이었다.
경성역 가족사진에는 이 7명의 무용수와 무용단의 매니저 겸 해설사인 이시이 야에코(石井八重子)도 등장한다. 맨 왼쪽의 일본식 기모노를 입은 여성이 이시이 바쿠의 아내이자 매니저 이시이 야에코(⑧번)이고, 맨 오른쪽 끝의 세 명의 일본인 무용수가 이시이 에이코(⑨번), 이시이 미에코(⑩번), 야마노 하루에(⑪번)이다.
사진에서 최승희의 부친 최준현의 왼쪽 옆에, 검은색 오버코트를 입고 밝은색의 모자를 쓴 여성이 이시이 야에코의 친동생이자 이시이 바쿠의 무용 파트너 이시이 코나미(石井小浪, ⑫번)이다. 코나미가 두 어깨에 손을 얹고 있는 어린 소녀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여러 문헌을 조사하다가 이시이칸(石井歓)이 집필한 평전 <무용시인 이시이 바쿠(舞踊詩人石井漠)>(1994, 234쪽)에서 다음과 같은 서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역시 최승희가 입문한 무사시사카이(武藏境) 시기의 일이지만, 집에서는 외사촌 시즈코(静子)라는 여자아이를 맡고 있었다. 집에 왔을 때는 아직 아장아장 걷는 어린아이였지만 스튜디오에서 연습하는 제자들의 무용을 보고 세 살쯤부터 보고 흉내 내며 춤을 추게 되었다. 바쿠는 친딸처럼 귀여워했고, 재능을 보고 본격적으로 무용을 시켰다. 우리는 남매처럼 자랐는데, 이 시즈코가 나중에 무용가로 세상에 나온 이시이 칸나(石井カンナ)이다.”
이시이 칸은 이시이 바쿠의 아들이다. 따라서 이시이 칸나가 이시이 칸의 외사촌이라면 어머니 이시이 야에코의 여동생, 즉 이시이 코나미의 딸이다. 다시 말해 이시이 코나미는 경성 공연에 그녀의 딸 시즈코(⑬번)를 동행시켰던 것이다.
사진의 오른쪽에서 다섯 번째 인물은 이시이 무용단의 무용수 중에서 이시이 바쿠를 제외한 유일한 남성 무용수 스기모토 스나오(⑭번)인데 그늘에 가려 얼굴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경성역의 같은 장소에서 무용단원끼리만 찍은 사진에서도 스기모토 스나오는 뒤 열에 숨은 듯이 서 있지만, 이 사진에서는 그의 얼굴이 비교적 또렷하게 보인다.
뒤 열 중앙의 모자와 안경을 쓴 나이 든 남성(⑮번)은 누구인지 알아내지 못했다. 이 남자는 가족사진뿐 아니라 무용단원 사진에서도 포즈를 위한 것을 보면 무용단원의 대표자이거나 혹은 신문 기사가 언급한 이시이 바쿠의 지구(知舊), 즉 오랜 친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름을 알아내기에는 사진과 기사에서 단서를 얻을 수 없었다.

필자의 관심을 가장 끌었던 것은 나머지 한 여성이다. 그녀는 한복 차림이므로 조선인임이 틀림없었고, 모친 박용경보다는 젊지만, 언니 최영희보다는 나이 들어 보인다. 그녀는 누구일까? 최승희는 일본어판 <나의 자서전(私の自敍傳)>(1936, 12쪽)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한 적이 있었다.
“둘째 부인이라고 해도 그의 생활 역시 아버지의 파산으로 평온했던 꿈이 깨지듯 갑자기 산산조각이 나 버렸고, 우리와 마찬가지로 곤경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결국 아버지와 헤어져서 다른 곳에 시집을 가셨습니다. 우리 가족이 점점 더 심한 가난 속으로 빠져들어 가게 된 뒤에도 이 분은 우리에게 친절하셨고 진심 어린 따뜻한 마음을 다해 주셨습니다. 지금은 다른 분과 원만한 가정생활을 하고 계시지만 옛날의 저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조선에 가서 공연을 하게 되면 반드시 뭔가 간단한 선물이라도 가지고 오셔서 변함없이 따뜻한 말과 상냥한 온정으로 나를 꼭 안아 주시곤 하십니다.”
이 여성은 바로 최승희가 “작은어머니” 혹은 “서모”라고 불렀던 최준현의 둘째 부인 이재원(⑯번)이다. 최승희가 무용 유학을 위해 경성을 떠나 도쿄에서 체재한 지 2년 만에 돌아오자, 최준현의 첩이었던 작은어머니도 경성역에 마중을 나온 것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모친 박용경(③번)의 양손이 딸 최영희(⑦번)와 서모 이재원(⑯번)의 손을 나란히 잡고 있다는 점이었다. 최승희는 <나의 자서전>(1936, 12쪽)에서 “그분(=둘째 부인)은 어머니에게 고통스러운 존재임이 틀림없을”었다고 했지만, 이 사진에 나타난 두 모친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최준현의 정실과 후실이 나란히 서서 손을 잡은 채 막내딸 최승희의 귀향을 환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최승희의 가족이지만 이 사진에 등장하지 않은 여성이 있었다. 최승일의 아내이자 최승희의 올케인 마현경이었다. 마현경과 최승일은 1926년 2월에 결혼했고, 1930년 4월부터 12월 사이의 어느 시점에 이혼했으므로, 이 사진이 촬영된 1927년 10월에는 공식적으로 최승희의 가족원 중의 한 명임에 분명했다. 그러나 마현경은 최승희가 2년 만에 집으로 돌아오는 시기에 온 가족이 총동원된 경성역 마중의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 사진은 최승일과 마현경이 결혼한 지 채 2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이미 불화를 겪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 부부의 불화는 더 일찍 시작되었다는 증거도 있다. 결혼 1년 만인 1927년 1월2일의 <중외일보>(2면)에 최승일의 기고문 “신혼생활 제1년의 소감”이 실렸는데, 최승일은 “아기자기한 재미 대신에 싸움만 밤낮 하였”다고 서술했다.

한편, 최승희가 형제자매들과 찍은 가족사진이 있다. 다카시마 유사부로(高嶋雄三郞)과 정병호가 편집해 출판한 사진집 <세기의 미인무용가 최승희>(1994, 부모의 모습은 없지만 당시까지 결혼한 형제들 배우자의 모습은 발견할 수 있는 사진이다. 이 사진이 촬영된 시기는 최승희가 무용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1929년 8월 말 이후, 최승희가 안막과 결혼한 1931년 5월 이전에 촬영되었음이 틀림없다.
또 최승일의 오른쪽 옆의 여성은 그의 세 번째 아내 석금성이다. 최승일과 석금성이 동거하기 시작한 것은 1930년 9월경으로 추정되므로, 이 사진은 1930년 9월부터 1931년 5월 이전에 촬영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뒤 열 맨 왼쪽 끝의 최승오가 겨울용 두루마기를 입은 모습이고, 최승희와 석금성이 두터운 오버코트를 입고 석금성은 장갑까지 낀 점, 그리고 최영희의 딸이 털목도리를 두른 것으로 미루어, 이 사진이 촬영된 것이 비록 실내의 사진 스튜디오라고 하더라도 겨울철이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사진의 촬영 시기는 1930년 11월경부터 1931년 2월경으로 더 좁힐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진의 편집자들은 이 사진이 1929년 겨울에 촬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만일, 이 설명이 사실이라면 최승일이 석금성을 만나 동거하기 시작한 것이 1929년 말로 소급될 수도 있다. 최승희와 석금성은 1929년 12월 초에 찬영회가 주최한 <무용, 극, 영화의 밤>에 함께 출연했으므로, “1929년 겨울”에 최승희의 매니저를 맡았던 최승일이 토월회 여배우였던 석금성을 만났을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만난 지 한 달 만에 동거를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정식으로 결혼하기 전에 다른 형제들과 그들의 배우자들과 함께 이런 가족사진을 찍었으리라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따라서 필자는 이 사진의 촬영 시기가 1930년 말부터 1931년 초의 겨울철이라는 판단을 유지하기로 했지만, 이 역시 단정적인 결론은 아니며, 추가적인 문헌 증거가 나타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 4형제와 배우자들의 사진의 촬영 시기가 1929년 겨울이든, 혹은 1930-1931년의 겨울철이든, 이 당시에는 둘째 최영희가 “경기도 포천 출신의 이근영과 이혼”을 극복하고 “서울의 김성동과 재혼”했음을 알 수 있다. 즉, 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 남성, 즉 최승오와 최승일 사이에 선 남성은 최영희의 두 번째 남편 김성동인 것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최승희의 삶과 춤을 조사하고 해석하고 연구하면서 “언제”와 “어디서”를 파악하는 데에 주력해 왔다. 그것은 “누가 무엇을” 했는지의 시기적, 지리적 배경을 구성하는 요소이다. 그러나 1920년대와 1930년대의 문헌들은 “언제 어디서”를 명시하는 데에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때문에 인물과 사건의 전후 및 인과 관계가 혼란스러워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최승희의 가족사진이 소수이기는 하지만, 각 인물을 파악하고 사진의 촬영 시기를 구체적으로 특정해 가면서 최승희의 가족관계 변화를 추적해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 그렇게 시기적, 지리적 배경이 특정된다면 지금까지 잘 몰랐던 인물들의 이름이 특정될 수 있는 장점도 얻게 된다. (jc, 2026/6/21) ⓒ조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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