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희의 가족사진은 몇 장이나 남았을까? 각 가족사진에서 이름만 전하는 최승희 가족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까? 이 사진들은 어째서 심층적으로 연구되지 못했을까?
최승희의 가족사진은 모두 3장이 전해진다. 2명 이상의 가족이 촬영된 사진이라면 모두 가족사진이겠지만, 이글에서 가족사진이란 최승희의 부모와 형제자매가 포함된 확대가족의 사진으로만 한정해 보기로 했다.

첫 번째 가족사진은 1919년 최승일의 결혼식 기념사진이다. 이 사진은 광주미술관에 소장된 하정웅 컬렉션에 포함되어 있는데, 2002년 광주시립미술관 개관 10주년을 기념하는 <춤꾼, 최승희 사진전>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그 후 2011년 최승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불꽃처럼 바람처럼, 무희 최승희> 사진전에도 이 사진이 다시 전시되었으나, 아쉽게도 이 사진에 대한 자세한 해설은 없었다.
하정웅 컬렉션의 최승희 아카이브에는 이 사진의 작품 번호가 PH-H1548, 제목이 “최승희 가문의 여러사람들”이라고 붙여져 있고 촬영 연도는 1920년대, 촬영자는 미상(未詳)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사진의 크기는 가로가 약 85센티미터 세로가 약 60센티미터로 상당히 큰 사진인데, 이는 원본 사진의 크기인지 전시회를 위해 확대한 크기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광주미술관의 최승희 아카이브에는 이 낡은 가족사진의 제목이 “최승희 가문의 여러 사람들”이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 여기에는 최승희 가문의 사람들만 등장한 것은 아니다. 이 사진은 장남 최승일의 첫 번째 결혼사진이기 때문에 첫 아내 한영명과 그의 가족들도 등장한다.
이 사진이 최승일의 결혼식 사진이라고 단정한 것은 그가 사모관대 차림으로 촬영되었기 때문이다. 신부 한영명은 앞에서 세 번째 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에 상반신만 보이는 인물인데 머리에 족두리를 쓴 모습이 보인다.

이 사진의 인물 배치를 보면 왼쪽이 신랑 측의 인물들, 오른쪽이 신부 측의 인물들이다. 맨 앞줄의 왼쪽 첫 번째가 최승일의 부친 최준현(1번)이고, 최승일의 오른쪽이 모친 박용경(2번), 최승일과 모친 박용성 사이의 뒤편에 선 인물이 언니 최영희(3번)이다. 최승일의 앞에 오른쪽으로 비켜 앉은 소년이 최승오(4번)이고, 최승희는 모친 박용경의 오른쪽 앞에 서 있는 소녀(5번)이다.
사진의 오른쪽 절반에 배치된 신부 측의 인물들은 족두리를 쓴 신부 한영명을 제외하면 누가 누구인지 알아보기가 어렵다. 첫 부인 한영명이나 그의 가족에 대해 기록한 문헌이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사진의 오른쪽 절반이 훼손되어 있다. 일부러 훼손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신부 측 인물들의 모습만 흐려져 있는 데다가, 중앙에 있는 최승희의 모습이 함께 훼손되어 있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는 사진이다.
이 사진이 촬영된 시기는 언제일까? 이 사진이 최승일의 첫 번째 결혼사진이 맞다면, 이는 1919년에 촬영되었을 것이다. 부친 최준현의 호적에 나타난 최승일과 한영명의 결혼일이 1919년 8월 8일이기 때문이다. 당시 최승일은 삼일 만세운동에 참여했다는 혐의로 배재고등보통학교에서 퇴학당했고, 일본 유학을 준비하고 있던 시기였다. 아마도 최승일의 부모는 그가 일본으로 떠나기 전에 혼인을 시키기 위해 서둘렀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이 사진의 촬영 시기를 1919년으로 추정하는 데에는 약간의 의문이 있다. 최승일의 첫 결혼이 호적대로 1919년 8월 8일이라면 최승일의 나이는 17세, 최영희는 15세, 최승오는 13세, 최승희는 7세이다. 그런데 최승희는 7세 아동치고는 너무 작아 보인다.
또 최승일의 실제 결혼일과 호적상의 결혼일에는 항상 차이가 있었다. 둘째 부인 마현경과는 1926년 2월 6일에 결혼했으나 호적상의 혼인 일은 1928년 10월 27일이었다. 셋째 부인 석금성과는 1930년 9월경에 사실혼을 시작했으나 호적상의 혼인신고 일은 1931년 6월 24일이었다.
따라서 최승일의 호적상의 첫 결혼일이 1919년 8월 8일이더라도 실제의 결혼일은 1917년이나 1918년경이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렇다면 최승희가 5~6세의 취학 전 아동으로 보이는 모습이 이해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같은 추정을 뒷받침할 다른 문헌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 한, 이 사진의 촬영 날짜가 1919년 8월 8일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비교적 합리적인 추정일 것이다.

하정웅 컬렉션에 포함되고 광주미술관에서 두 차례나 전시되었으면서도 이 사진은 자세히 조사되거나 연구되지 않았다. 광주미술관의 사진 설명에 촬영 시기가 잘못되어 있고, 제목도 모호하게 붙여져 있는 것이 그 반증이다.
다행히 사진 속의 최승일과 한영명의 모습이 신랑·신부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이 사진이 두 가족의 결혼 기념사진임을 알 수 있었고, 부친 최준현의 호적 기록을 참고하면서 사진 속 인물들의 성별, 나이별 모습을 살피면, 적어도 최승희 가족의 인물들은 구별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호적 기록대로 최승일의 첫 결혼이 1919년 8월 8일이라고 단정할 경우 최승희의 모습이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이는 것을 설명할 수 없고, 비교 검토할 다른 자료들이 없어 최준현의 직계 가족 이외의 신랑 측의 다른 인물들을 구별해 낼 수 없었다.
더구나 자료 부족의 이유로 신부 측 대부분의 인물을 구별해 낼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어째서 이 사진에서 신부 측 인물들의 모습이 대부분 훼손되어 있는지도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jc, 2026/6/21) ⓒ조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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