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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100장면

[최승희100장면] 40. 북문동 19통11호

일제가 작성한 <토지등기부>를 조사해 보면 최승희의 일가가 법적으로 소유했던 주소지는 3개였다. 수창동 198번지와 서대문정1정목 122번지, 그리고 옥천동 65번지였다.

 

수창동 198번지는 1911627일 부친 최준현의 이름으로 매입됐다가 192355일 매각됐고, 서대문정1정목 122번지는 1917529일 부친 최준현의 이름으로 매입됐다가 191875일 매각됐다. 옥천동 65번지는 192946일 모친 박용경의 이름으로 매입됐다가 193672일 매각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주소들은 모두 일제강점기의 주소이다. 1911년부터 조선총독부는 대한제국의 <토지대장>을 일본어로 번역해 <토지등기부>를 작성했는데, 이때 대한제국의 주소체계를 일본제국의 주소체계로 변경했다. 당시 서울의 일본식 주소는 부()-()-/(/)-번지의 체계였다면 대한제국의 주소는 부()-()-()-()-()-통호(統戶)의 체계였다.

 

예컨대 일본식 주소 경성부 서부 수창동 198번지의 대한제국식 주소는 한성부 서서 인달방 봉상시계 북문동(漢城府 西署 仁達坊 奉常寺契 北門洞) 185였고, ‘경성부 서부 서대문정1정목 122번지한성부 서서 여경방 장생동계 중방교동(漢城府 西署 餘慶坊 長生洞契 中芳橋洞) 2710,’ ‘경성부 서부 옥천동 65번지의 대한제국식 주소는 한성부 서부 후문동 1568였다.

 

또 최준현이 법적으로 소유한 기록은 없지만 실제로 거주했던 주소지로는 수창동 134번지체부동 137번지가 있었다. 수창동 134번지의 대한제국식 주소는 인달방 내수사계 내수사동 247였고, 체부동 137번지의 대한제국식 주소는 <토지등기부>에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191058일의 <황성신문(3)>에 게재된 다음과 같은 광고문에는 최준현이 거주했던 주소지가 또 하나 등장했다.

 

본면 결둔사건으로 각지주가 회의하고 소원한 일은 경지주 첨위께서도 이미 량실신바, 본인등을 대표로 선정하여 상부에 호소하기 위해 상경하였사오니, 경지주 첨좌는 서부 인달방 북문동 상우대로변 십구통 십일호 최준현씨 집으로 속속 왕의하심을 바랍니다. 강원도 홍천군 금물산면 지주대표인 최정현, 김응식 등 고백.”

 

홍천군 금물산면(=남면)에서 발생한 결둔사건에 대해서는 따로 살펴보겠지만, 적어도 이 광고문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최준현이 19105월에 이미 한성에 정착, 고향의 지주들로부터는 서울 지주(京地主)라고 불리고 있었고, 그의 한성 주소가 한성 서부 인달방 북문동 상우대로변 1911였다는 것이다.

 

인달방 북문동 1911호의 주소는 앞서 살펴본 5개의 최준현 일가의 소유지나 거주지 주소와는 다른 주소이다. 또 이 주소는 19105월 현재 최준현 일가가 거주하고 있던 주소지이기 때문에 최준현과 그의 가족이 경성에 마련한 가장 이른 시기의 주소지이기도 하다.

 

 

1911627일 최준현의 이름으로 매입된 수창동 198번지, 즉 인달방 봉상시계 북문동 185호의 가옥보다 더 이른 시기에 거주하고 있었던 주소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북문동 1911호와 북문동 185호는 같은 동()의 비슷한 통호(統戶)수이므로 서로 인접한 지역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제국의 북문동은 일제강점기의 수창동으로 개명되었으므로 최준현은 19105월 이전에 수창동 지역에 또 하나의 주소지를 마련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북문동 1911호가 일제강점기의 수창동 몇 번지였는지, 오늘날의 주소가 무엇인지 밝혀내기 어렵다. <토지등기부>는 일제시기의 동명을 알아야 신청, 열람이 가능하고, 해방 후에는 2단계에 걸쳐 주소 체계가 변경되어 오늘날의 주소 확인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문동 1911호는 수창동 198번지, 서대문정1정목 122번지과 함께 최준현의 경성 정착 초기의 주소임에 틀림없기 때문에 최승희의 생가를 확인하기 위해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주소라고 생각한다. (jc, 2026/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