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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100장면

[최승희100장면] 39. 수창동 198번지

최준현 일가는 1917년 이래 서대문정1정목 122번지, 수창동 134번지, 옥천동 65번지 등의 가옥에 순차적으로, 혹은 여러 가옥을 동시에 소유하면서 거주했다. 때로는 법적 소유자가 아니더라도 실질적으로 소유했거나 또는 차명으로 거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최승희 일가가 여러 주택을 실질적 소유했으면서도 차명으로 거주했다고 추정된 까닭은 19224월 이전의 최준현 일가는 대단히 부유했으므로, 경제적 사정 때문에 세 들어 살았을 것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 실명 소유자가 아니면서도 특정 주소지에 거주했다면, 최준현 일가가 그 가옥의 명목상의 소유자가 아니더라도 실질적인 소유자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주소지들은 1917년 이후에 최준현 일가와 관련되었으므로 양력 1912211일에 출생한 최승희의 생가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 1917년 이전에도 부친 최준현이 소유했던 가옥이 또 한 채가 발견되었다. 수창동 198번지의 가옥이었다.

 

1912116일에 측정되어 후일 발간된 <토지조사부(1913)>에 따르면 최준현은 수창동 198번지의 51평 가옥의 법적 소유자였다. 그런데 <부동산등기부>에 따르면 최준현이 이 가옥을 매입한 것은 1911617일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이 가옥은 192355일 수창동 372번지에 거주했던 이()모씨에게 매각되었기 때문에, 이 가옥은 19116월부터 19235월까지 약 12년 동안 최준현 일가의 소유였다. 이 기간에는 최승희의 출생(1912211)이 포함된다. 따라서 수창동 198번지의 이 가옥이 최승희의 생가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합리적 추정이기는 하지만 최종 결론이 아닐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시기에 최준현이 소유한 가옥이 수창동 198번지 한 채뿐이었다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시 최준현의 부동산 사고팔기는 대단히 빈번했던 것으로 보이고, 이후에도 1가구 다주택과 차명소유 등의 흔적이 자주 나타난다.

 

예컨대 최승희의 둘째 오빠 최승오의 본적이 경성부 서대문정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 주소는 최준현이 거주했던 서대문정1정목 122번지였을 가능성이 높다. 최승오는 양력으로 19072월생이므로 최준현 일가는 적어도 1907년이나 그 이전부터 서대문정1정목 122번지에 거주했을 수도 있다. 따라서 1902년생인 장남 최승일과 1904년생인 장녀 최영희는 강원도 홍천 출생이더라도, 차남 최승오와 막내 최승희는 경성부 서대문정1정목 122번지에서 출생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최승희의 생가를 밝히는 조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결정적인 증거가 나타나기까지는 수창동 198번지를 최승희의 생가로 잠정 결론을 내리는 것은 합리적이다.

 

수창동이라는 동명은 이후 내자동과 합쳐지면서 내수동으로 개명되었고, 20141월부터 지번 주소제가 폐기되고 거리명 주소제가 도입된 후에는 동명 자체가 사라지고 말았다. 따라서 지금은 1910년대의 주소로 오늘날의 위치를 특정하는 것이 어렵게 됐다.

 

더구나 이 지역은 일제강점기에 비해 극도로 개발된 상태이다. 특히 인근에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면서 기존의 도로망까지 거의 사라진 상태이기 때문에 과거의 지번을 가지고는 현재의 위치를 눈으로 확인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다만 과거의 지도와 오늘날의 지도를 비교하여 수창동 198번지의 오늘날 위치를 특정해 본다면, 오늘날의 광화문 주시경 공원과 경희궁자이아파트 사이의 어느 지점일 것으로 추정된다.

 

 

<부동산등기부>에 따르면, 최승희의 생가로 추정된 수창동 198번지의 가옥은 1932년에 미국인 H.H. 언더우드(H.H. アニダーワト)에게, 1938년에는 정인보(鄭寅普)에게 매각되었다.

 

호러스 호튼 언더우드(Horace Horton Underwood, 1890-1951, 한국어 이름, 원한경(元漢慶))은 연세대학교의 창립자인 호러스 그랜트 언드우드(Horace Grant Underwood, 1859-1916, 한국어 이름, 원두우(元杜尤))의 아들이며 1912년 미국 장로교의 준선교사로 조선에 입국, 선교와 교육 사업을 전개했고, 1934년 연희전문학교의 교장으로도 재직했다.

 

그는 이 시기에 수창동 198번지의 가옥을 매입해 거주하던 중, 1937년 일제의 탄압을 피해 연희전문학교에서 퇴임해야 했던 정인보에게 1938년 이 가옥을 매도했거나 또는 매도를 가장해 증여한 것으로 보인다. (jc, 2026/1/17) 조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