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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100장면

[최승희100장면] 37. 수창동 134번지

최승희의 숙명여학교 학적부에 따르면 그녀가 입학한 것은 1922415, 졸업한 것은 1926323일이었다. 입학 직후에 작성되었을 이 학적부에 처음으로 기재된 최승희의 주소는 수창동 134번지였다.

 

이 주소 오른쪽에 다른 필체로 서대문정 1정목 122번지라는 주소가 더해졌다. 이 주소가 추가된 것은 최승희가 숙명여학교에 입학한 이후 새로운 가옥이 주소지로 추가되었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당시 최승희의 가족은 2개의 가옥을 소유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학적부의 비고난에는 또 하나의 주소가 기입되었다. “이주소(理住所) 체부동 137번지가 그것이다. 이 주소를 쓴 잉크 색깔과 필체는 주소난서대문정 1정목 122번지주소의 잉크 색깔과 필체와 같다. 이는 그 당시에 수창동과 서대문정의 주소 외에 또 다른 주소지가 있었다는 뜻이겠는데, 그렇다면 당시 최승희 가족은 1가구 3주택이었던 셈이다.

 

더 나중에 완전히 다른 잉크와 필체로 수창동 주소가 지워졌고, 그 왼쪽 옆에 체부동 137번지의 주소가 기입되었다. , 수창동 134번지의 가옥은 더 이상 최승희 가족의 주소지가 아니지만, 서대문정 주소와 체부동 주소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니시키 마사아키(西木正明, 1940-)는 최승희 전기 소설 <떠돌이 무희(さすらいの舞姬, 2010, 27-28)>에서 수창동과 서대문정의 주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최씨 집안은 원래 한반도 북부의 부농(豪農)이었고 신분은 양반이었지만, 일제강점으로 토지를 거의 잃고 경성으로 올라왔다. 수창동(需昌洞) 134번지, 서대문정(西大門町) 122번지를 전전한 후에 현재의 주소로 이사해 왔다. 막내딸 승희는 19111124일 수창동에서 태어났다.”

 

니시키 마사아키의 서술에는 정확하지 않은 점이 포함되어 있다. 부친 최준현이 태어난 곳은 한반도 북부가 아니라 한반도 중동부의 강원도 홍천이었고, 그가 부농의 양반이었다가 토지를 잃은 것은 맞지만 그 원인은 빚보증과 토지사기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가 토지를 잃은 시점은 19224월 이후이므로 경성으로 이주하기 전이 아니라 후였다. 그리고 최승희의 생년월일은 19111124일이 아니라, 음력으로는 19111224, 양력으로는 1912211일이었다.

 

 

니시키 마사아키는 체부동 137번지 이전에 최승희 가족이 거주했던 2개의 주소를 제시하면서 그 두 곳을 전전했다고 서술했으나, 사실은 그 두 주소지가 모두 최준현의 소유였을 가능성이 더 높다. 더구나 후에 더해진 체부동 주소까지 합치면 1가구 3주택이었다. 당시에는 최준현 일가가 부유했기 때문에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최승희는 <나의 자서전(1936, 5)>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내가 태어난 곳은 경성이었지만, 아버지는 시골의 토지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어 농사를 짓게 하는 이른바 부재지주의 한사람으로서 어린 시절부터 남에게 굽히거나 의지할 필요 없는 생활이 몸에 배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경성에서도 매우 활발하고 호기로운 생활을 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최승희 가족이 매우 활발하고 호기로운 생활을 영위했다는 사실은 경성의 중심부에서 동시에 3개 주택을 소유했던 것으로 넉넉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수창동 134번지의 가옥은 건평이 114평이나 되는 큰 집이었다.

 

 

정병호는 <춤추는 최승희, 1995, 23)>에서 최승희의 올케 석금성(石金星, 1907-1995, 큰오빠 최승일의 아내)의 증언을 인용해 최승희가 소학교 시절에 돈화문과 단성사 사이에 있는 수운동의 기와집에서 살았다고 서술했다. 석금성이 증언한 수운동수창동의 잘못일 것이다. 그러나 석금성의 말대로 이 집이 기와집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 수창동 134번지의 가옥은 건평 114평의 널찍한 기와집이었다.

 

이상한 것은 이 수창동 134번지의 기와집이 최준현의 소유였다는 기록이 없다. <토지조사부(1913)>에 따르면 이 주소지는 김()모씨의 소유였고,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이 가옥은 1914년에 방()모씨, 1919년에는 이()모씨, 그리고 1923년에는 다른 이()모씨가 이를 매입했다. , 최준현은 수창동 134번지의 기와집을 매입한 적이 없다는 뜻이다.

 

최승희의 학적부에 따르면 수창동 134번지가 일차적인 주소지였으므로, 숙명여학교 보통과의 전 시기와 고등과에 입학한 이후 적어도 19224월까지는 그곳에 실제로 거주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수창동 134번지의 가옥은 최준현 일가가 세 들어 살았거나, 혹은 다른 사람의 명의로 매입해 놓았지만 실제로는 최준현 가족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숙명여학교 학적부와 <토지조사부>, <부동산등기부>를 조사한 결과 최승희 가족은 1922년 당시에 수창동 134번지에 거주하고 있었지만, 그밖에도 서대문정1정목 122번지와 체부동 137번지의 주택도 소유했거나 적어도 연락처의 주소로 사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수창동 134번지의 114평 기와집이 최준현의 법적 소유였던 것은 아니며, 아마도 차명 소유의 가옥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jc, 2025/1/16) 조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