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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100장면

[최승희100장면] 36. 체부동 137번지

 

최승희가 경성(=서울) 출생인 것은 분명했다. 최승희의 <나의 자서전(1936)>을 포함한 모든 자전적 회고록에서 그녀는 자신이 경성 출생이라고 밝혔고, 호적과 여권 등의 공문서와 숙명여학교 학적부 등의 공신력있는 사문서들도 그녀의 출생지를 경성이라고 기록했다. 후대의 평전들도 최승희의 경성 출생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최승희가 태어난 집, 즉 생가의 경성 주소는 어디였을까? 최승희가 살았던 집의 주소들을 언급한 평전들이 있었다. 정병호의 <춤추는 최승희, 1995, 23)>는 최승희의 올케 석금성(石金星, 1907-1995, 큰오빠 최승일의 아내)의 증언을 인용해 최승희가 소학교 시절에는 수운동에 살았으나 가세가 기운 후 체부동으로 이사했다고 서술했다.

 

 

소학교에 다닐 때에는 돈화문과 단성사 사이에 있는 수운동의 기와집에서 살 정도로 여유 있는 생활을 했으나 가세가 급격하게 기울어져 숙명 여학교를 다닐 무렵에는 서울 종로구 체부동 137번지 초가집으로 옮겨 살았다고 한다.”

 

일본인 소설가 니시키 마사아키(西木正明, 1940-)도 최승희 전기 소설 <떠돌이 무희(さすらいの舞姬, 2010, 28)>에서 체부동 137번지를 언급했다.

 

그날 밤 늦은 시간, 경성부 체부동 137번지의 최씨 집에서는 약간의 소란이 일었다. 거실에 아버지 최용현(崔濬鉉)과 어머니 박용자(朴容子), 큰 오빠 최승일(崔承一), 둘째 오빠 최승오(崔承五), 언니 최영희(崔英喜)가 막내 딸 최승희를 둘러싸고 앉았다.”

 

<떠돌이 무희>에 나오는 최승희 부모의 이름은 사실과 다르다. 소설이기에 일부러 이름을 바꾼 것이거나 고증 오류일 것이다. 최승희의 언니와 오빠들 이름이 사실과 부합되는 것으로 미루어 고증 오류일 가능성이 높다. 종로구청에서 열람한 최준현의 호적등본에 따르면 부친의 이름은 최준현(崔濬鉉), 모친의 이름은 박용경(朴容卿)이었다.

 

 

니시키 마사아키는 체부동 137번지의 주소를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1926325일의 <경성일보>는 최승희를 체부동 137 최준현 영애 최승희(16)’라고 소개했다. 니시키 마사아키는 아마도 일본어로 발행되었던 <경성일보>의 이 기사를 읽었을 것이다.

 

체부동 137번지가 서울의 삼계탕 전문점 <토속촌> 자리임을 처음으로 서술한 것은 강준식이다. 그의 <최승희 평전(2012, 9)>은 그가 삼계탕을 먹으면서 일본인 기자로부터 <토속촌>이 최승희가 살던 집이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이 대화 당시, 2010년 이전에는 그 일본인 기자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1983년에 개업한 <토속촌>의 지번 주소는 체부동 85-1번지였다. 이후 <토속촌>은 번창해서 인근의 85-2번지와 86-1번지, 그리고 96-2번지까지 매입해 매장을 확장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최승희가 살았던 집은 <토속촌>의 일부로 포함되지 않았다.

 

<토속촌>이 체부동 96-2번지의 골목 건너편 체부동 137번지를 사들인 것은 2015년경이다. 손님이 늘어나면서 주차장이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체부동 137번지는 <토속촌>의 주차장이 됐다. 강준식의 일본인 친구의 예언은 약간의 시차를 두고 실현된 셈이다.

 

 

그러나 체부동 137번지가 최승희의 생가는 아니다. 석금성과 정병호, 니시키 마사아키와 강준식이 모두 인정하듯이, 이 주소는 최승희의 숙명여고보 재학 당시의 주소이다. 1922년경 최승희 집안은 급속히 몰락했고, 그 때문에 체부동의 초가집으로 이사해야 했다.

 

체부동 137번지의 초가집은 부친 최준현의 소유도 아니었다. 1913년에 작성된 <토지조사부>에 따르면 이 가옥의 소유주는 김()씨였고, 소유주 본인이 그 주소지에 거주하고 있었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이 주소지의 가옥은 1935년에 이()모씨에게 매각됐다.

 

 

따라서 최승희 가족은 이 집을 구매한 적이 없고, 거주할 때에도 주인이 살고 있는 상태에서 가옥 일부에 세를 들어 살았던 것이다. (jc, 2026/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