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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100장면

[최승희100장면] 34. 홍천 출생설

최승희 리서치를 시작하면서 생일과 생가부터 조사한 것은 그녀가 살았던 시대적, 지리적 배경, 그리고 가족 배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생일과 생가는 그 세 가지 배경을 이해하기 위한 첫 단추였다.

 

 

수년 전까지도 최승희의 생일과 생가는 불명확했다. 이미 알려진 날짜와 장소들도 의문의 여지가 있거나 논란에 싸여 있었다. 세계적으로 감탄과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조선인 무용가의 생일과 생가조차 불확실한 것은 이례적이다. 조선의 슬픈 근대사와 한국의 참혹한 현대사 때문이지만, 그녀가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조차 불분명하다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최승희의 생년월일을 밝혀낸 직후 필자는 그녀의 출생지와 생가 조사에 착수했다. 모든 평전은 최승희가 경성(=서울)에서 출생했다는 점에 이의가 없었고, 잡지에 기고된 최승희의 회고문과 자서전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일부 연구서와 신문잡지의 기사가 홍천 출생설을 주장했다.

 

 

최승희의 출생지가 서울이 아니라 강원도 홍천이라는 주장이 처음 나온 것은 1989년경이지만 본격적인 주장은 2006<강원도민일보>의 기자 함광복이 쓴 우린 왜 '최승희의 홍천'을 찾아야 하는가라는 장문의 글이다. 원고지로 125매에 달하는 이 글에서 함광복은 최승희가 홍천에서 출생했다는 근거로 세 개의 문헌과 많은 증언을 제시했다.

 

 

첫 번째 문헌 증거는 <신한민보>(193823, 2)였다. 이 기사는 최승희를 강원도 홍천군의 최준현씨의 영애라고 소개했다. 두 번째는 1982720일 홍천군이 발간한 잡지 <홍천의 맥()>이다. 이 잡지 26쪽에 실린 내 고장을 빛낸 사람들편에 최승희는 남면이 고향이라고 서술되었다고 한다. 끝으로 1989<강원일보>가 발행한 <월간 태백(太白)> 4월호가 그녀의 출생지는 의외로 홍천군 남면 제곡리(諸谷里)로 밝혀졌다고 서술했다고 전한다.

 

한편 함광복은 최승희의 5촌 조카 최경희(崔敬姬)씨와 손자벌인 최재경(崔在慶)씨 등을 비롯해 홍천과 춘천의 주민 수십 명의 증언을 종합, 최승희가 홍천군 남면 제곡리 244번지 혹은 237-4번지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함광복의 문헌 증거와 증언에는 미흡한 점이 있다. 우선 그가 인용한 증언들은 함광복에 의해서만 문헌화되었고 다른 기록이나 증언으로 교차 검증되지 못했다. 또 이 문헌과 증언은 최승희가 태어나 활동했던 때로부터 시간적, 지리적 거리가 너무 멀어서 신빙성이 낮다.

 

친척과 지인들의 증언은 최승희가 태어난 지 90, 사망한 지 40년 이상이 지나서 나온 것이다. <홍천의 맥><월간 태백>의 기사도 최승희의 출생으로부터 70년 이상 지나서 나타난 것이다. 더구나 이 두 잡지는 소장처를 찾지 못해 함광복의 인용에만 의존해야 했다.

 

 

<신한민보>의 기사는 1938년의 보도이므로 시기적으로 근접하지만 경성이나 홍천에서 1Km 떨어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발간된 교포신문이다. “홍천군의 최준현씨의 영애라는 표현도 최준현이 홍천 출신이라는 뜻일 뿐, 딸 최승희가 홍천에서 출생했다는 증거가 되기 어렵다.

 

그런데 함광복의 주장을 검증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었다. 그가 특정한 최승희의 생가 홍천군 남면 제곡리 237번지나 238번지, 혹은 244번지의 소유주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조선총독부는 19165월에 홍천의 토지조사를 진행, <토지조사부><지적원도>로 발간했다. 각 주소지의 소유자는 <등기부>에도 기재되어 있다. 최준현 일가가 “1918년쯤 서울로 이주했다는 함광복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해당 주소지는 최준현의 소유로 기록되어 있어야 했다.

 

 

<토지조사부><지적원도>, 그리고 <등기부>에 따르면 남면 제곡리에 소재한 최준현 소유의 부동산은 모두 48건이었으나, 237번지와 238번지, 그리고 244번지는 최준현의 소유가 아니었다. 제곡리 237번지와 238번지의 소유주는 최, 244번지의 소유주는 강()모씨였다.

 

 

따라서 통계학의 표현을 빌자면 최승희의 출생지가 강원도 홍천이라는 함광복의 가설은 기각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최승희의 홍천 출생설은 다른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한 재론될 가치나 여지는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jc, 2026/1/15) 조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