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최승희100장면

[최승희100장면] 33. 생가

최승희 리서치를 시작하면서 언제어디서를 목표로 삼았다. 10여권에 달하는 평전과 수십 권의 연구서를 읽어보면, 그녀와 관련된 사안의 누가무엇을은 대체로 파악되어 있었고, ‘어떻게도 짐작되어 있었다. 그런데 언제어디서가 불분명한 경우가 많았다.

 

최승희의 출생부터 그랬다. 그녀가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가 확정되지 않았다. 그녀의 출생일을 확증하는 데에 약 5년이 걸렸다. 5년은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자료의 시간이었다. 유럽과 아시아와 미주에서 수집한 다양한 자료들이 최승희의 생년월일이 음력으로 신해년 섣달 스무 나흗날’, 혹은 양력으로 ‘1912211임을 밝혀주었다. 최승희의 생년월일이 잘못 알려져 왔었기 때문에 그녀의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가 잘못된 해, 잘못된 날에 열렸다.

 

 

최승희가 출생지를 살피는 데에도 그만큼의 시간이 걸렸고, 수천 건의 신문잡지의 기사와 수백 회의 공연 프로그램과 수십 권의 평전과 연구서들이 필요했다. 많은 자료들은 때로 혼란을 가중시키기도 했는데, 자료들이 상충된 서술을 제시하곤 했기 때문이다.

 

평전들은 최승희가 경성 출생이라고 서술했지만, 연구서들은 그녀가 홍천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했다. 각 주장은 나름의 근거를 제시했지만 그 근거의 진위나 신뢰도는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 최승희가 경성이나 홍천의 어느 주소지에서 출생했는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탁월한 문학인과 예술가들의 출생지와 생가를 확인하고, 그곳에 기념관이나 박물관을 세우는 일은 중요한 일이다. 그곳은 관광객들의 관심을 끌 수도 있지만, 젊은이들의 상상력에 불을 붙여주기 때문이다. 미국의 젊은이들이 일리노이주 오크팍의 헤밍웨이 생가를 방문하고, 러시아의 학생들이 우파 강변의 툴라에 자리 잡은 톨스토이의 생가 야스나야 폴랴나에 수학여행을 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최승희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중국의 무용가 메일란 팡의 생가는 베이징 시청구의 후궈쓰거리 9호에 세워진 <메일란팡 기념관>이 되었고, 이사도라 던컨의 출생지인 샌프란시스코 테일러가 501번지에는 그녀의 출생을 알리는 기념패가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한민족이 낳은 탁월한 무용가 최승희는 생가는커녕 출생지가 어디인지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세계적으로 존경받던 인물이 고향에서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데, 최승희가 그랬다.

 

 

최승희의 출생지와 생가를 확인하기 위해 필자는 각종 문헌이 최승희의 거주지나 생가라고 주장한 11개의 주소지를 조사했다. 강원도 홍천군 남면 제곡리 237번지와 238번지와 244번지, 경성부 체부동 127번지, 수창동 134번지, 서대문정1정목 122번지, 수창동 198번지, 옥천동 65번지, 익선동 56-8번지, 가회동 31-55번지, 재동 46-8번지가 그것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승희의 출생지는 강원도 홍천이 아니라 경기도 경성이었고, 그녀의 생가는 수창동 189번지이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최승희의 가족이 홍천에서 경성으로 이주해 온 과정을 시기별로 정리하고, 이를 각 주소지와 관련시켜 분석한 결과였다.

 

 

서울 지방법원 중부등기소에서 확인한 등기부에 따르면 최승희의 부친 최준현은 191167일에 수창동 189번지 가옥을 매입했고, 192343일에 이를 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제강점기의 공문서이므로 이 날짜는 모두 양력날짜이다. 최승희의 출생일은 양력 1912211일이므로 이 주소지가 그녀가 태어난 곳이라고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최승희의 생가 주소를 확인하지 못하고 추정하는 데에 그친 것은 다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10년대에 부친 최준현은 부유했기 때문에 여러 채의 가옥을 소유하고 있었고, 수창동 189번지가 그중의 하나에 불과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승희의 생가의 주소는 아직 확정되지 못했다. 그러나 최승희의 출생지에 대한 질문에는 거의 대답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아직도 최승희의 생가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를 발굴할 수 있다고 믿고 있지만, 그때까지는 경성부 수창동 189번지를 유력한 후보지로 간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jc, 2026/5/17) 조정희